Present is Present

방금 나를 지나간 그 바람은 어떤 바람 됐을까

분류 전체보기 376

걸으면 해결된다

"걸으면 해결된다" 김기석 목사님은 안식월에 들어가면서 아브라함에 대해서 설교를 했다. 그분의 설교 중에 어거스틴의 말이 인용됐다. "걸으면 해결된다." 나는 이 말을 아내와 자동차 여행 중에 아내의 권유로 듣게 됐다. 격하게 공감한다. 오늘 아내 없이 홀로 강변을 거닐다 다시 그분의 설교를 들었고, 그 문장이 다시 내 귀에 꽂혔다. "걸으면 해결된다." 이 말은 두 가지 의미에서 모두 옳다. 실제로 '걷기'는 여러모로 훌륭한 인간의 행동이다. 걷기는 성찰과 기도를 통합시킨다. 과거와 미래를 바로 지금 여기에서 하나로 엮어준다. 걷기는 집중하여 생각하는 시간이고, 걷기는 생각이 기도로 승화되는 멋진 선물이다. 또다른 의미에서 걷기는 훌륭한 비유이다. 인생은 '길을 걸어가는 것' 아닌가. 인생은 가나안 땅..

아내와 행복한 걷기

아내와 행복한 걷기 아내가 제주도에서 부름을 받아 강의를 한다고 했다. 제주도에 가게 된 아내가 묘수를 냈다. 주일에 먼저 강의를 가고, 하루 일과를 마친 내가 주일 밤에 가서 만난다. 그리고 그 다음날 종일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아이들 없이 둘이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결혼 15주년을 맞아 시간을 내서 한 번 도전해 보았다. 제주 사려니숲을 근 두시간 반 가량 아내와 걸었다. 그냥 좋았다. 해야 할 일 걱정 안해서 좋았고, 완전히 망가진 체력이었지만 조금이나마 운동이 된다고 생각하니 좋았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야생 수국이 지천에 깔려 있는 게 신기하고 예뻤다. 쭉쭉 뻗은 삼나무 숲 길, 붉은 흙을 밟으며, 음악을 들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걷고 또 걸었다. 좋았다. 마냥 그렇게 걸었으면 했다...

왜 실행하지 않는가

누가복음 6장 46절 1. 개역개정: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내가 말하는 것을 행하지 아니하느냐 2. 공동번역: "너희는 나에게 '주님, 주님!' 하면서 어찌하여 내 말을 실행하지 않느냐? 3. 새 번역: 어찌하여 너희는 나더러 '주님, 주님!' 하면서도, 내가 말하는 것은 행하지 않느냐? 왜 실행하지 않느냐? 내가 예수님을 주님(Lord)으로 믿는다면, 정말 그러하다면, 주님께서 하신 말씀들을 '실행'하는 자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기 위해선, 1) 성경을 읽고, 예수님의 말씀을 배우라. 2) 한 귀로 흘려 보내지 말고, 마음에 새기고 실천하라. 3) 예수님을 닮는 것이 목적이고, 성령으로 충만하는 것이 방법임을 잊지 말라.

렉시오 디비나 2014.06.22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목적

존 스토트 목사님께서 쓰신 그분의 마지막 책, 에는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목적에 대한 그분의 설명이 나온다. 존 스토트는 이렇게 말한다. "그것은,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그리스도처럼 되기를 바라신다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다."(35)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 이것이 나를 향한 하나님의 목적이며, 하나님을 향한 내 인생의 목적이라는 것이다. 어떻게?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그리스도처럼 되는 것이며, 하나님의 방법은 우리를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시는 것이다."(45)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 이것보다 더 중요한 목적이 없다.성령으로 충만하게 사는 것, 이것보다 더 좋응 방법은 없다. 그러므로, 오직 내 관심은 성령으로 충만하여 그리스도를 닮는 것이다.

지금 여기, 눈부신 7시 12분

지금 여기, 눈부신 7시 12분 초대형 베스트셀러 에서 저자는 ‘인생시계’라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는 자신의 책상 위에 죽은 시계를 올려 두고 1년이 지날 때마다 18분씩 옮깁니다. 인간이 80세까지 산다고 가정하고 하루 24시간에 맞춰보면, 18분은 1년에 해당되기 때문입니다. 자, 계산 한 번 해볼까요? 스무 살은 새벽 6시, 서른 살은 오전 9시가 되겠지요! 점심시간인 오후 12시는 마흔이고, 퇴근 시간인 저녁 6시는 예순입니다. 그렇다면 대학을 갓 졸업한 스물네 살 젊은이는 몇 시일까요? 오전 7시 12분! 와우! 아직 출근 전이군요. 저자가 ‘인생시계’라는 비유를 들려준 이유는 젊은 청춘들에게 ‘동년배 친구들보다 취업과 성공이 조금 늦는다고 절망하지 마라. 긴 인생에 비하면 그리 늦은 건 아..

기고/양화진 2014.01.31

행복한 목회자

두 어 사람이 묻는다. "행복하십니까?" 행복합니다! 라고 혀가 재빠르게 돌아가지 않는다. 마음에도 없는 말을 쉽게 하지 못하는 까닭이다. 그래, 행복하지 않다. 도대체 행복합니다, 라고 선듯 대답할 목회자가 얼마나 많을까? 속으로 되물어본다. 다른 사람은 그렇다 치고, 그럼, 나는 왜 행복하지 않은 걸까. 묘한 이중성이 있다. 나는 "설교자"의 자의식이 있다. 나는 설교를 충분히 준비하고, 설교를 만족스럽게 하고, 설교에 대한 좋은 피드백을 받으면 행복하다. 이 세 가지가 다 갖춰지면 너무 행복하고, 셋 중에 하나만 충족되도 그럭저럭 행복하다. 그런데 이 일을 예전에는 매주 3~5차례 하던 것을 지금은 한 달에 2~3번 정도만 하다보니, 행복하다는 느낌을 가질 때가 줄어든 것 아닌가 싶다. 행복한 느낌..

2013년 8월 18일 4부 예배 기도문

2013년 8월 18일 4부 예배 기도문 부름의 말씀 후 기도 부름의 말씀: 시편 48편 1-2절 1 여호와는 위대하시니 우리 하나님의 성, 거룩한 산에서 극진히 찬양 받으시리로다. 2 터가 높고 아름다워 온 세계가 즐거워함이여 큰 왕의 성 곧 북방에 있는 시온산이 그러하도다. 아멘. 한 뼘밖에 되지 않는 우리 마음조차 다스릴 줄 모르면서, 한 주먹밖에 되지 않는 우리 머리조차 통제하지도 못하면서, 한 치 앞도 내다볼 지혜도 없으면서, 하나님 없이 만용을 부리며 살아온 우리들을 감히 하나님의 성, 거룩한 산 위로 다시 불러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태양을 만들고, 바다를 지으시고, 우주를 창조하신 위대한 하나님 앞에, 바람처럼 사라지고 풀처럼 스러지는 연약한 인생들이 세상의 신을 벗고, 겸허히 머리를 조아려..

공부

성경, 신학, 신앙에 관한 성도들의 질문에 명쾌하게 다 대답할 수 없음을 안다. 내가 신학박사도 아니고, 기껏해야 신학대학원 3년이 전부이지 않은가. 그것도 엄청나게 많은 과목을 수박 겉핥기 식으로 공부했으니, 심층적인 문제에 대해선 모르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신학대학원을 졸업한 지 벌써 4년이 넘었다. 목회에만 코를 박고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물론 성도들이 질문할 때 모르면 모른다고 말하고, 공부하면 된다. 그러나 나이를 먹어가면서, 목회 경력이 쌓여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신앙의 기초지식조차, 가령 구원이란 무엇인지, 삼위일체 하나님은 무엇인지, 세상의 종말과 그 이후 부활은 무엇인지 등에 관한 질문조차 속시원하게 답을 못주고 있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목사라 불리는 것은 여전히 어색하고..

다시 글을 쓰며

분명 쓸 말이 있었는데, 컴퓨터 앞에 앉아 흰 화면을 바라보면 머리 속 언어들이 다 꼬여버린다. 분명 엮어 낼 아이디어가 있었는데, 검은 자판 위에 손가락을 올려 놓으면 두뇌 기능이 정지해 버린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2011년, 그 해 봄부터 그랬던 것 같다. 글을 좀 쓰려고 하면 대부분의 아이디어와 통찰들이 다 시시하게 보이는 것이다. 정서를 스쳐 지나간 바람의 색깔을 잡아보려고 하면, 죄다 우울증 환자의 넋두리 같기도 했다. 글쓰기가 곧 구원의 길로 인도하리라는 확신 때문에 의지로 버텨가면서 글을 써보면 초등학생의 낙서가 따로 없다. 그래서 지난 2년 간 내가 썼던 글들은 설교문이 대부분이었다. 물론 내 일기장엔 '시편' 같은 정직한 기도문들이 채워졌고, 주일 예배 인도시 사용될 '성시' 세 편이 매..

뼈에 닿자

열왕기하 13장 20-21절 엘리사가 죽으니 그를 장사하였고 해가 바뀌매 모압 도적 떼들이 그 땅에 온지라 마침 사람을 장사하는 자들이 그 도적 떼를 보고 그의 시체를 엘리사의 묘실에 들이던지매 시체가 엘리사의 뼈에 닿자 곧 회생하여 일어섰더라 내일 한솔이를 떠나보낸 지 1주년을 맞아 정읍에 내려간다. 원래는 9일(수)이지만, 5일(토)이 공휴일이라 아이들을 데리고 가게 되었다. 몇 사람이 모일지 모르지만 혹 예배를 드리게 된다면 혹 말씀을 전하게 된다면 위의 말씀을 나누려고 한다.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는 죽어 장사되어 몸이 썩고 뼈만 남았다. 그런데 사람들이 시체를 엘리사의 묘실에 던지자 그 시체가 엘리사의 뼈에 닿자 생명이 되살아났다. 하나님께서 이 일을 통해 여전히 하실 말씀이 있으셨나보다. 점차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