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바람

방금 나를 지나간 그 바람은 어떤 바람 됐을까

세미한 소리를 듣다 33

닉네임을 똑바로 부르라!

스타벅스 e카드를 선물 받았다. 보통 e카드 선물 받으면 다른 사람들에게 흘려보낸다. 스타벅스를 잘 가지 않기 때문이다. 어제는 강남에서 2시간 정도 아내를 기다려야 해서, 처음으로 e카드를 써보기로 했다. 밀크티를 주문한다. 앞에 한 5~6명 기다리고 있다. 닉네임을 불러준다. 오래전에 스타벅스 앱을 깔고, 닉네임을 '신의피리'로 저장해 뒀다. '신의피리'는 이중적 의미가 있다. 하나. 정신실의 김종필(피리) 둘. 하나님이 내게 세미한 바람소리로 말씀하시면 나는 그분의 피리가 되어 삶으로 연주한다. 아무래도 스타벅스에서 불림당할 닉네임이 좀 부적절한 느낌이 들어서, 다음에는 바꿔야겠다 생각하고 있던 찰나, 알바 여학생이 영수증과 나를 번갈아보면서 살짝 미소를 지으며 큰소리로 호명한다. "신의파리님!" ..

한예종 기독교 연합 개강예배 소회

외부에서 설교하는 일이 거의 없다. 요청하는 사람도 거의 없고, 어쩌다 있다 하더라도 왠만하면 거절한다. 지금 내 교회일로만도 벅차기 때문이다. 캄보디아 단기선교 귀국 이틀 후, 한예종 기독인 연합 개강예배 설교를 하게 됐다. 마침 안식월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젊은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설교를 해본지가 오래됐다. 청중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경험도 없어서 본문을 정하기가 어렵다. 전도사 시절에 했던 설교 중에 그래도 청년들이 많이 반응했던 본문을 정했다. 마침 사순절 기간이라, 베드로가 세 번 부인한 본문을 잡았다. 설교 중에 느낌이 올 때가 있다. 뭔가 헛도는 느낌이다. 말씀이 청중들 마음에 쑥 들어가지 않고 겉도는 느낌이다. 예배를 마치고 친교와 나눔 시간을 갖는다. 4개의 동아리 연합이다보니 서로들..

현존을 생각하다

흐리멍덩하다 정신이 맑지 못하고 흐리다. 집중이 되지 않아, 율동공원 한 바퀴를 돌았다. 걸으면서 ‘현존’을 생각한다. 지나간 일이 졸졸 따라와 마음 쓰리게 하고, 다가올 일에 대비가 되지 않아 불안불안하다. ‘현존’은 구원이다. ‘현존’은 성화다. ‘현존’은 성숙이다. ‘현존’은 지금 여기 임재한 그 나라에 거함이다. ‘현존’은 영원과 잇대어지는 순간이다. 정신이 흐리멍덩한줄 알았는데, 영혼이 흐리멍덩했구나.

등불 성경

등불 성경 돌아보면 발자국마다 주님의 은총이었다. 내가 걸어온 길이 그저 우연의 연속으로 이루어진 듯보이나, 실상 주님의 '섭리'로밖에 해석이 안되는 경우가 참 많다. 그래서 지금도, 앞으로도 주님께서 그리 인도해 가시리라 믿게 된다. 얼마전 '양화진청년학교'에서 강의를 했다. '말씀과 동행하는 삶'이라는 주제도 정해져 있었다. 얼떨결에 강의 수락은 했지만, 막상 어떤 내용을 전해야 할 지 조금 막막했다. 2박3일 간 강원도 태백에 있는 예수원으로 피정을 다녀왔다. 그곳에서 내가 주력했던 것 중에 하나는 양화진청년학교 강의 내용이다. '말씀묵상'으로는 처음 강의를 해 본다. 늘상 하는 거라 쉽게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이 들었지만 가만 생각해보면 의외로 사람들은 말씀묵상을 잘 안한다. 하려고 해도 그게 ..

걸으면 해결된다

"걸으면 해결된다" 김기석 목사님은 안식월에 들어가면서 아브라함에 대해서 설교를 했다. 그분의 설교 중에 어거스틴의 말이 인용됐다. "걸으면 해결된다." 나는 이 말을 아내와 자동차 여행 중에 아내의 권유로 듣게 됐다. 격하게 공감한다. 오늘 아내 없이 홀로 강변을 거닐다 다시 그분의 설교를 들었고, 그 문장이 다시 내 귀에 꽂혔다. "걸으면 해결된다." 이 말은 두 가지 의미에서 모두 옳다. 실제로 '걷기'는 여러모로 훌륭한 인간의 행동이다. 걷기는 성찰과 기도를 통합시킨다. 과거와 미래를 바로 지금 여기에서 하나로 엮어준다. 걷기는 집중하여 생각하는 시간이고, 걷기는 생각이 기도로 승화되는 멋진 선물이다. 또다른 의미에서 걷기는 훌륭한 비유이다. 인생은 '길을 걸어가는 것' 아닌가. 인생은 가나안 땅..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목적

존 스토트 목사님께서 쓰신 그분의 마지막 책, 에는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목적에 대한 그분의 설명이 나온다. 존 스토트는 이렇게 말한다. "그것은,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그리스도처럼 되기를 바라신다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다."(35)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 이것이 나를 향한 하나님의 목적이며, 하나님을 향한 내 인생의 목적이라는 것이다. 어떻게?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그리스도처럼 되는 것이며, 하나님의 방법은 우리를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시는 것이다."(45)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 이것보다 더 중요한 목적이 없다.성령으로 충만하게 사는 것, 이것보다 더 좋응 방법은 없다. 그러므로, 오직 내 관심은 성령으로 충만하여 그리스도를 닮는 것이다.

행복한 목회자

두 어 사람이 묻는다. "행복하십니까?" 행복합니다! 라고 혀가 재빠르게 돌아가지 않는다. 마음에도 없는 말을 쉽게 하지 못하는 까닭이다. 그래, 행복하지 않다. 도대체 행복합니다, 라고 선듯 대답할 목회자가 얼마나 많을까? 속으로 되물어본다. 다른 사람은 그렇다 치고, 그럼, 나는 왜 행복하지 않은 걸까. 묘한 이중성이 있다. 나는 "설교자"의 자의식이 있다. 나는 설교를 충분히 준비하고, 설교를 만족스럽게 하고, 설교에 대한 좋은 피드백을 받으면 행복하다. 이 세 가지가 다 갖춰지면 너무 행복하고, 셋 중에 하나만 충족되도 그럭저럭 행복하다. 그런데 이 일을 예전에는 매주 3~5차례 하던 것을 지금은 한 달에 2~3번 정도만 하다보니, 행복하다는 느낌을 가질 때가 줄어든 것 아닌가 싶다. 행복한 느낌..

공부

성경, 신학, 신앙에 관한 성도들의 질문에 명쾌하게 다 대답할 수 없음을 안다. 내가 신학박사도 아니고, 기껏해야 신학대학원 3년이 전부이지 않은가. 그것도 엄청나게 많은 과목을 수박 겉핥기 식으로 공부했으니, 심층적인 문제에 대해선 모르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신학대학원을 졸업한 지 벌써 4년이 넘었다. 목회에만 코를 박고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물론 성도들이 질문할 때 모르면 모른다고 말하고, 공부하면 된다. 그러나 나이를 먹어가면서, 목회 경력이 쌓여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신앙의 기초지식조차, 가령 구원이란 무엇인지, 삼위일체 하나님은 무엇인지, 세상의 종말과 그 이후 부활은 무엇인지 등에 관한 질문조차 속시원하게 답을 못주고 있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목사라 불리는 것은 여전히 어색하고..

다시 글을 쓰며

분명 쓸 말이 있었는데, 컴퓨터 앞에 앉아 흰 화면을 바라보면 머리 속 언어들이 다 꼬여버린다. 분명 엮어 낼 아이디어가 있었는데, 검은 자판 위에 손가락을 올려 놓으면 두뇌 기능이 정지해 버린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2011년, 그 해 봄부터 그랬던 것 같다. 글을 좀 쓰려고 하면 대부분의 아이디어와 통찰들이 다 시시하게 보이는 것이다. 정서를 스쳐 지나간 바람의 색깔을 잡아보려고 하면, 죄다 우울증 환자의 넋두리 같기도 했다. 글쓰기가 곧 구원의 길로 인도하리라는 확신 때문에 의지로 버텨가면서 글을 써보면 초등학생의 낙서가 따로 없다. 그래서 지난 2년 간 내가 썼던 글들은 설교문이 대부분이었다. 물론 내 일기장엔 '시편' 같은 정직한 기도문들이 채워졌고, 주일 예배 인도시 사용될 '성시' 세 편이 매..

뼈에 닿자

열왕기하 13장 20-21절 엘리사가 죽으니 그를 장사하였고 해가 바뀌매 모압 도적 떼들이 그 땅에 온지라 마침 사람을 장사하는 자들이 그 도적 떼를 보고 그의 시체를 엘리사의 묘실에 들이던지매 시체가 엘리사의 뼈에 닿자 곧 회생하여 일어섰더라 내일 한솔이를 떠나보낸 지 1주년을 맞아 정읍에 내려간다. 원래는 9일(수)이지만, 5일(토)이 공휴일이라 아이들을 데리고 가게 되었다. 몇 사람이 모일지 모르지만 혹 예배를 드리게 된다면 혹 말씀을 전하게 된다면 위의 말씀을 나누려고 한다.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는 죽어 장사되어 몸이 썩고 뼈만 남았다. 그런데 사람들이 시체를 엘리사의 묘실에 던지자 그 시체가 엘리사의 뼈에 닿자 생명이 되살아났다. 하나님께서 이 일을 통해 여전히 하실 말씀이 있으셨나보다. 점차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