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ent is Present

방금 나를 지나간 그 바람은 어떤 바람 됐을까

기고 143

하나님의 꿈이 나의 비전이 되고

시니어매일성경 7-8월호 두 교우가 교회를 떠나겠다는 문자를 보내왔다. 한 분은 교회가 좀 더 진보적인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교회는 사회적인 약자들 편에 서야 할 뿐만 아니라 불의에 항거하는 목소리를 내야 하는데, 우리 사회의 비민주적인 행태에 대해서 교회가 지나치게 침묵하고 있다는 것이다. 목사인 내가 설교에서 적극적으로 피력하지 않는 것 같아 실망스럽다고도 했다. 다른 한 분은 십일조 폐지를 주장했다. 십일조는 구약 유대인들에게 주어진 율법으로써 예수님의 오심으로 인해 이제는 십일조를 지킬 의무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십일조는 목사들이 자기 목회 성공을 위해 악용하기 쉽고 성도들에게 위화감을 조성할 수 있으므로 당장 폐지해야만 한다고 여러 차례 요구해 왔다. 두 분의 주장은 ..

부족함이 없는 삶

시니어매일성경 5-6월 호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독감에 걸렸다. 가래가 끓고 삭신이 쑤신다. 초기에 잡겠다는 일념으로 병원 문이 열리기도 전에 가서 대기한다. 한 시간여만에 진료실로 들어간다. 앳되어 보이는 젊은 의사는 친절한 듯한데 에이아이(AI)처럼 대답한다. 마치 매뉴얼을 보고 질문하는 것 같다. 한 5분 정도 걸렸을까. 의사와 환자 사이에 정서적 교감과 인격적 교류는 단 1초도 발생하지 않는다. 이럴 거면 정말 AI 의사에게 진단을 받아도 될 것 같다.독감 때문에 주일 설교를 포기했다. 그러자 증상은 더 악화된다. 삭신을 공격하던 바이러스는 이번엔 장염을 유발한다. 기침할 때는 기관지가 뽑혀 나올 것 같더니 이제는 대장이 다 뽑혀 나올 기세다. 위아래로 진격해오는 질병에 기운이 달린다. ..

천국을 향한 기다림

시니어매일성경 2025년 3-4월호 기고 잠들다 죽는 게 가장 큰 은혜 삶 저 너머 영원에 속한 무언가가 순식간에 여기 일상으로 넘어와 번쩍일 때가 있다. 무료하게 반복되는 일상을 뚫고 기쁨이라는 유전이 솟구치며 터져 나오는 순간이다. 2018년 6월의 싱그러운 어느 날, 7, 80대 어르신들 여덟 분을 모시고 교회에서 나들이를 갔었다. 숲속 나무 테이블을 가운데 두고 둥그렇게 앉아 담소를 나누었다. 일상과 영원이 잇대어지며 기쁨이 솟구치는 잊지 못할 순간이 되었다. “나이를 먹으니까, 귀가 안 들려. 근데 그거 좋은 거야. 그 권사는 너무 잘 들려서 괴롭대. 좀 안 들어도 되는 것까지 자세하게 다 들린대. 난 잘 안 들리니 얼마나 좋아~”“늙으면 죽어야 하는데, 죽는 것도 사는 것도 내 맘대로 안 돼...

나의 담임 목사님, 달라스 윌라드

*  2025년 1-2월호부터 시니어매일성경에 연재를 시작(당)했다. 두 달에 한번씩 부들부들 떨며 글을 쓴다. 학교 다닐 때 쓴 과제물과 설교문 외에 이렇게 각 잡고 긴 글을 써보기는 처음이다. 과연 몇 번을 더 쓸 수 있을지...   나의 담임 목사님, 달라스 윌라드 너는 목사로서 이런 것들을 알지 못하느냐목사인 나는 금요일 오후가 되면 속절없이 불안 지수가 높아진다. 한두 마디 일상적인 말을 하는데도 에너지가 들고 하릴없이 서성거리게 된다.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최선을 다해 준비해도 금요일 오후만 되면 마법에 걸린 것처럼 영혼이 시름시름 앓는다. 주일 설교까지 생각하면 암담하기 그지없다. 어느 금요일, 성경을 연구하다 기분 전환도 할 겸 저녁 무렵 산책하러 나갔다. 돌아오니 어느새 날은..

공동체

21교구 소식지 마지막호. 2015/12/13 교구소식지 마지막호, ‘공동체’ 지난 여름 지리산 종주를 하다가 불현 듯 ‘교구소식지’가 떠올랐다. 세 가지 이유 때문이다. ‘연결’에 대한 갈망이다. 우리는 서로 연결되고 싶은 욕구가 있다. 타인의 얼굴에서 나와의 공통점을 찾고, 그래서 안전을 느끼고 힘을 얻고 싶어 한다. 그 연결망을 설치하여 서로서로 잇대게 하고 싶은 마음이 첫 번째 이유였다. 두 번째는 ‘공동체’에 대한 갈망이다. 실은 이것은 첫 번째 갈망이 실현된 결론일 것이다. 다들 외딴섬처럼 따로따로 각자 자신만의 마을을 이루고 있는 12개의 구역이 실은 하나의 공동체였음을 어떻게 경험하게 할 수 있을까? 그 질문에 대한 하나의 대답으로 ‘교구소식지’가 발행되었다. 세 번째는 내 자신의 정체성에..

기고/양화진 2018.06.08

K에게

21교구 소식지 9호. 2015/12/06 K에게 K! 파르르 떨리는 입술, 그렁그렁한 네 눈물이 잊혀지지 않는구나. 얼마나 마음 아팠으면 꾹꾹 참았던 눈물이 주르륵 흐를까. 꼬옥 안아주고 싶었다만, 그러질 못해 내내 미안했구나. 생각해보니 나도 네 나이 때쯤이 인생 중 제일 아픈 순간이었지 싶다. 타인에게 내 진심 가 닿지 않고, 내 앞에 놓인 길의 방향은 흐릿하기만 하며, 서 있는 내 품세는 어정쩡하기만 하니, 그저 내 신세 처량하기만 했었지. 하나님께 젊음 바쳐 애써온 것의 대가가 이런 것인가 싶어 하소연만 나왔었고. 내 몰골이 이런데 내가 무슨 사람 섬긴다고 앞에 서 있을까 하는 자격지심만 한없이 커졌었지. 그래, 그래서 멋지게 잠적하고 싶은 충동이 참 많이 일어났었구나. K! 네가 네 자신을 평..

기고/양화진 2018.06.08

비교의식 내려놓기

21교구 소식지 7호. 2015/11/08 비교의식 내려놓기 내 내면에 ‘비교의식’이라는 것이 언제 처음 태동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나보다 키가 한 뼘은 더 크고 좌우로 가늘게 찢어진 눈에 광대뼈가 심하게 튀어나온 ‘진표’라는 친구에게 은근한 열패감을 느끼곤 했었다. 목소리 큰 진표의 기세에 눌려 지내던 나는 어느날 그 친구를 바닥에 눕히고서는 배 위에 올라타 양 팔을 무릎으로 누르며 ‘항복해!’라며 소리 지른 기억이 있다. 내 힘이 더 셌고, 나는 승리감으로 우쭐거렸다. 그렇지만 내 인생 중에 그렇게 우쭐거린 순간은 많지 않았다. 움츠러든 순간이 백배는 더 많을 것이다. 매사 우월감의 순간을 지향했지만 대개는 열등감에 빠져 허우적대기 일쑤였다. 내면의 전쟁이 다 끝난 듯 보였던 신..

기고/양화진 2018.06.08

복면가왕

21교구 소식지 4호. 2015/10/18 복면가왕 집에 TV 없이 산 지 17년째다. 결혼할 때 아내와 TV 없이 신혼 1년을 살아보자고 결심한 게 벌써 17년이 되었다. 지금이야 종종 스마트폰으로 인터넷 세상에 들락날락 하니 심심할 날이 없지만, 신혼 초엔 어찌 지냈나 모르겠다. 어쨌든 목표는 이랬다. 소중한 저녁 시간에 TV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대신 서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자는 게 우리의 바램이었다. 그 선택을 한 번도 후회해 본적이 없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종종 TV 타령을 한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테블릿 PC를 통해 일주일에 딱 한 번 온가족이 모여 ‘개그콘서트’를 본다. 아이들이 하도 하소연을 하다 보니, 시청하는 프로그램이 서너개 더 늘었다. 아이들은 ‘런닝맨’, ‘무한도전’을 ..

기고/양화진 2018.06.08

그분의 자리, 그분의 마음

그분의 자리, 그분의 마음김종필 100주년기념교회 목사 어느 해 겨울 2박 3일의 피정(避靜)을 맞아 강원도 산골짜기에 있는 를 방문했다. 은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현대 도시인들이 침묵과 노동 속에서 그리스도를 깊이 묵상하기에 좋은 곳이다. 많은 이들의 오랜 기도가 흰 눈과 더불어 수북이 쌓여 있었던 까닭인 지, 예수원의 뜰을 밟는 것만으로도 세속의 때가 말끔히 씻기는 듯한 기분이었다. 삐걱대는 마룻바닥에 방석을 깔고 살포시 무릎을 꿇으면 침묵을 깨는 순명(順命)의 기도가 흘러나오고, 성경을 펼치면 주목하는 활자마다 마치 돋보기를 통해 보이듯 또렷하고 굵은 문자로 도드라지게 보인다. 추위에 얼어붙은 딱딱한 산길을 따라 오롯이 걷다 보니 성령님께서 중요한 미션을 막 귀띔해 주실 것 같은 거룩한 신비감에 휩..

내 발에 등, 내 길의 빛

내 발에 등, 내 길의 빛100주년기념교회 김종필목사 또 한 해가 저물어간다. 화사했던 봄, 짙푸르렀던 여름, 고즈넉한 가을을 지나 쓸쓸한 겨울을 또다시 맞는다. 한 해의 끝자락에 이르니 자연스럽게 걸어온 길을 반추하게 된다. ‘지금의 내 모습은 일 년 전 내가 꿈꿔왔던 그 모습일까?’, ‘지금의 내 삶은 젊은 날에 내가 꿈꿔왔던 그 미래였을까?’ 그렇지 않다. 내 계획은 처음보다 많이 빗나갔다. 내 계획대로 된 것이 별로 없다. 몸무게는 줄지 않았고, 관계는 그다지 개선되지 않았고, 믿음은 생각만큼 진보하지도 성숙해지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래도 괜찮다. 여전히 주님과의 소통이 끊어지지 않았고, 되돌아올 말씀의 자리가 있으니, 이 정도면 최악은 아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