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ent is Present

방금 나를 지나간 그 바람은 어떤 바람 됐을까

세미한 소리를 듣다

다시 글을 쓰며

신의피리 2013. 5. 15. 15:10

분명 쓸 말이 있었는데, 컴퓨터 앞에 앉아 흰 화면을 바라보면 머리 속 언어들이 다 꼬여버린다.

분명 엮어 낼 아이디어가 있었는데, 검은 자판 위에 손가락을 올려 놓으면 두뇌 기능이 정지해 버린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2011년, 그 해 봄부터 그랬던 것 같다.

글을 좀 쓰려고 하면 대부분의 아이디어와 통찰들이 다 시시하게 보이는 것이다.

정서를 스쳐 지나간 바람의 색깔을 잡아보려고 하면, 죄다 우울증 환자의 넋두리 같기도 했다.

글쓰기가 곧 구원의 길로 인도하리라는 확신 때문에 의지로 버텨가면서 글을 써보면 초등학생의 낙서가 따로 없다.

 

그래서

지난 2년 간

내가 썼던 글들은

설교문이 대부분이었다.

 

물론 내 일기장엔 '시편' 같은 정직한 기도문들이 채워졌고,

주일 예배 인도시 사용될 '성시' 세 편이 매달 한 번씩 탄생했다.

그래도 글은 일상이 아니었다.

그냥 세월의 흐름을 타기로 했다.

그런데 글을 쓰지 않으니, 글을 더욱 쓸 수 없을 지경까지 가는 것 같다.

통찰도 사라지고, 타성에 젖는다.

진정성도 의심스러워지고, 모든 언어가 다 '정치어'가 되어 가는 것 같다.

 

블로그이든 페이스북이든 나는 누군가와 대화하려고 글을 쓰지 않는다.

그렇다고 일기장에나 끄적여 놓을 낙서같은 글을 쓰지도 않는다.

내 실존을 스쳐간 바람,

그 바람의 색깔을 찾고,

그 바람이 휘감고 지나간 후의 변화된 내 면모를 살펴보고,

나를 더 깊은 곳으로, 더 높은 곳으로, 더 넓은 곳으로 고양시키려는 선한 열망의 바람을 좇고,

나를 더 얊은 곳으로, 더 낮은 곳으로, 더 좁은 곳으로 축소시키는 악한 욕정들의 정체를 확인하기 위해

나는 그런 이유로 대개 글을 써 왔다.

그런데 그렇게 쓴 글들은

구질구질한 자기 연민처럼 보일 때가 있나 보다.

나는 나우웬처럼 성찰하고, 아파하고, 기도하고, 하나님나라를 맛보고 싶었는데 말이다.

 

정확히 1년 만에 다시 블로그로 되돌아 왔다.

일상에서 성찰을 자주 하는 이가 설교도 메말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진리 때문에.

일상을 놓치지 않으려고, 다시 글을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