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ent is Present

방금 나를 지나간 그 바람은 어떤 바람 됐을까

세미한 소리를 듣다 36

공부

성경, 신학, 신앙에 관한 성도들의 질문에 명쾌하게 다 대답할 수 없음을 안다. 내가 신학박사도 아니고, 기껏해야 신학대학원 3년이 전부이지 않은가. 그것도 엄청나게 많은 과목을 수박 겉핥기 식으로 공부했으니, 심층적인 문제에 대해선 모르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신학대학원을 졸업한 지 벌써 4년이 넘었다. 목회에만 코를 박고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물론 성도들이 질문할 때 모르면 모른다고 말하고, 공부하면 된다. 그러나 나이를 먹어가면서, 목회 경력이 쌓여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신앙의 기초지식조차, 가령 구원이란 무엇인지, 삼위일체 하나님은 무엇인지, 세상의 종말과 그 이후 부활은 무엇인지 등에 관한 질문조차 속시원하게 답을 못주고 있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목사라 불리는 것은 여전히 어색하고..

다시 글을 쓰며

분명 쓸 말이 있었는데, 컴퓨터 앞에 앉아 흰 화면을 바라보면 머리 속 언어들이 다 꼬여버린다. 분명 엮어 낼 아이디어가 있었는데, 검은 자판 위에 손가락을 올려 놓으면 두뇌 기능이 정지해 버린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2011년, 그 해 봄부터 그랬던 것 같다. 글을 좀 쓰려고 하면 대부분의 아이디어와 통찰들이 다 시시하게 보이는 것이다. 정서를 스쳐 지나간 바람의 색깔을 잡아보려고 하면, 죄다 우울증 환자의 넋두리 같기도 했다. 글쓰기가 곧 구원의 길로 인도하리라는 확신 때문에 의지로 버텨가면서 글을 써보면 초등학생의 낙서가 따로 없다. 그래서 지난 2년 간 내가 썼던 글들은 설교문이 대부분이었다. 물론 내 일기장엔 '시편' 같은 정직한 기도문들이 채워졌고, 주일 예배 인도시 사용될 '성시' 세 편이 매..

뼈에 닿자

열왕기하 13장 20-21절 엘리사가 죽으니 그를 장사하였고 해가 바뀌매 모압 도적 떼들이 그 땅에 온지라 마침 사람을 장사하는 자들이 그 도적 떼를 보고 그의 시체를 엘리사의 묘실에 들이던지매 시체가 엘리사의 뼈에 닿자 곧 회생하여 일어섰더라 내일 한솔이를 떠나보낸 지 1주년을 맞아 정읍에 내려간다. 원래는 9일(수)이지만, 5일(토)이 공휴일이라 아이들을 데리고 가게 되었다. 몇 사람이 모일지 모르지만 혹 예배를 드리게 된다면 혹 말씀을 전하게 된다면 위의 말씀을 나누려고 한다.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는 죽어 장사되어 몸이 썩고 뼈만 남았다. 그런데 사람들이 시체를 엘리사의 묘실에 던지자 그 시체가 엘리사의 뼈에 닿자 생명이 되살아났다. 하나님께서 이 일을 통해 여전히 하실 말씀이 있으셨나보다. 점차로..

영혼이 느껴지지 않는 설교

새벽 설교를 마치고 자리에 앉자마자 자괴감이 들었다. "영혼이 느껴지지 않았어." 불현듯 그 상황 속에서 개그콘서트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꺾기도. - 모든 상황 속에서 뜬금없이 꺾어 공황 상태에 빠트리는 기술. 김준호가 제자들의 다람쥐를 호되게 질책하며 말한다. "너희들의 다람쥐에는 영혼이 느껴지지 않는다..." 얼마전 첫 주례를 준비하면서 매뉴얼을 살피다가 한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결혼 서약 순서 중 서약문 낭독에 대해 이렇게 써있다. "읽지 말고 서약하라." 신랑 신부가 하는 서약에도 영혼이 느껴지는 서약이 있고 그렇지 않은 서약이 있다. 개그맨들의 연기에도 영혼이 느껴지는 연기가 있고 그렇지 않은 연기가 있다. 설교에도 영혼이 느껴지는 설교가 있고, 그렇지 않은 설교가 있다. 복음을 말하고, 사..

주석서를 꽂아둔 이유

새교회, 새자리, 새책상 어떻게 자리를 꾸밀까 고민끝에 주석을 좌우에 꽂아두기로 했다. 사실 여기서 나는 설교 할 일이 별로 없다. 수요설교 1년 1회, 새벽설교 1달 1회, 금요기도회 1년 2회, 2030예배 3개월 1회. 도합 16회! 그리고 심방할 때마다 5분여 정도 설교를 할뿐이다. 책상에 앉아 전화를 하고, 행정문서에 기입하고, 각종 회의에 참석하고, 이런저런 일에 몸으로 봉사한다. 나는 누구인가? 자칫 교회일을 회사일하듯 성과위주의 일을 처리하는 사람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스친다. 물론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내 자신을 목회자, 그것도 '설교'를 매개로 성도를 섬기고, 교회를 섬기는 목회자로 규정하고 싶다. 아니 좀 더 좁혀서 나는 설교자이기를 원한다. 설교를 준비할 때가 가장..

양화진 묘지기

-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 눈이 내리면 100주년기념교회 교역자들은 새벽 5시에 모여 묘원 경내에 쌓인 눈을 쓴다. 묘원 눈치우기는 교역자들의 주요한 일이다. 2005년 7월 10일, 교회 창립예배 때 담임목사님은 청빙을 수락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양화진 묘지기'로 규정했다. 20여년간 양화진묘원 담벼락 옆에 살면서 묘원을 뜨락 삼아 거닐고 기도하고 사색하며 그분이 품었던 묘원에 대한 애정은 분명 남다르기에, '양화진 묘지기'란 말에서 풍기는 깊고 무거운 역사적 책무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이다. 부교역자들도 종종 기도와 설교 중에 자신을 '양화진 묘지기'로 묘사한다. 그 때의 그 단어의 무게감은 담임목사님과 비교할 수 없다. 나 역시 이 곳 양화진과 전혀 별개의 삶을 살다가 영문도 모른 채 이 교회 ..

주의 징벌을 당하며

여호와여 주의 징벌을 당하며 주의 법으로 교훈하심을 받는 자가 복이 있나니 시편 94편 12절 아버지께서 지난 6월7일(화) 오후 3시30분 즈음, 마지막 숨을 거두셨다. 그 화요일 오후가 마지막일 줄은 몰랐다. 아무도 몰랐다. 지난 4월 27일(수), 병원 검사 결과를 누나가 통곡하며 전화해왔다. 암 말기란다. 그리고 불과 40여일인데, 그렇게나 일찍 아버지는 우리 곁을 떠나가셨다. 아산병원을 모시고 다니며 검사 받으시던 나날이 눈에 선하다. 한 달 밖에 사실 수 없다는 의사의 말이 귀에 쟁쟁하다. 집을 떠나 호스피스병동으로 옮겨 가시던 그 절망의 날이 아직 또렷이 기억난다. 목요일 입원하시자마자 아버지는 거의 잠만 주무셨다. 우라질...그 몰핀 때문이다... 3주를 거의 못주셨기에, 우리 가족은 그냥..

난 내가 싫다

이거...참... 너무 오랜만에 로긴하다보니 들어올 때마다 패스워드가 생각 안 나 애 먹는다... 우라질... 확 날려 버릴까... 요즘, 내 자신, 김종필이라는 한 사람, MBTI로 치며 INTJ, 에니어그램으로 치면 5번. 이 사람 정말 맘에 안 든다. 나 같으면 이런 사람과 친구 안 하겠다. 매사 대화를 머리로만 하려고 한다. 가슴이 안 느껴진다. 너무 재고, 너무 신중한 척 하고, 너무 시간에 얽매여있고, 너무 뭔가에 쫓기는 듯하다. 사람이 넉넉치 못하고, 안 그런 척 하면서 얼마나 말이 재미없고 많은 지 모르겠다. 가만 들어보면 죄다 변명이고 합리화같다. 말이 행동보다 훨씬 앞서는 건 기본이고, 생각해 보니 말에 무게가 없다. 말한대로 실천하는 게 별로 없다. 말만, 그것도 재미없는 설교투의 말..

나는 누구인가?

1945년 초, 본회퍼가 옥중에서 쓴 시. 나는 누구인가? 남들은 가끔 나더러 말하기를 감방에서 나오는 나의 모습이 어찌나 온화하고 명랑하며 확고한지 마치 자기 성곽에서 나오는 영주 같다는데 나는 누구인가? 남들은 또 나에게 말하기를 감시원과 말하는 나의 모습이 어찌나 자유롭고 친절하고 분명한지 마치 내가 그들의 상전과 같다는데 나는 누구인가? 남들은 또 나에게 말하기를 불우한 날들을 참고 지내는 나의 모습이 어찌나 평온하게 웃으며 당당한지 마치 승리만을 아는 투사와 같다는데 남의 말의 내가 참 나인가? 아니면 나 스스로 아는 내가 참 나인가? 새장에 갇힌 새처럼 불안하고 그리워하며 약한 나, 목에 졸린 사람처럼 살고 싶어 몸부림치는 나, 빛과 꽃과 새소리에 주리고 친절한 말 따뜻한 말동무에 목말라 하고..

멋진 우연을 위하여

"멋진 우연은 내가 준비되지 않았을 때보다 준비되었을 때 더 많이 일어난다" -, p121 영감이 넘치는, 환상적인 일을 만날 때가 있다. 그것은 내가 이룬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선물'이다. 다시 연출해 보려고 똑같은 과정을 반복해 보아도, 같은 결과를 얻지 못하는 것을 보면, 선물임이 분명하다. 1907년 평양 대부흥은 조선 땅에 떨어진 '벼락같은 축복'이었다. 지난 겨울 TNT수련회에 부어진 은혜 역시 내 인생 최고의 하나님의 선물이었다. 간혹 설교 시간에 예상치 못한 '은혜'가 임할 때가 있다. 내가 준비한 것 이상으로 내 설교 행위는 큰 열정에 의해 위로 이끌린다. 청중도 평소와 다르게 적극적으로 반응하고, 기도에 자신의 의지를 쏟아붓는다. 그러나 바로 그 다음 주에 나는 바닥으로 곤두박질 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