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ent is Present

방금 나를 지나간 그 바람은 어떤 바람 됐을까

세미한 소리를 듣다 36

설교, 그 이후

어김없이 주일 밤이 찾아왔다. 거룩한 강단 '위'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설교를 했고, 지금은 강단 '아래'에 내려와 있다. 지금 이 시간은 힘들다. 내 입을 통해서 쏟아져 나온 '말씀의 칼 끝'이 나를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은 마음이 편치 못하다. 그렇게도 경계했던 일을 저지르고 말았기 때문이다. '설교'를 하다가 하나님의 말씀을 빙자해서 내 불편한 감정이 묻어나 있는 오염된 말을 섞지 않겠다던 내 맹세가 깨지고 말았기 때문이다. 나는 준비된 말씀 이외의 (잔소리 같은) 말을 즉흥적으로 하지 않겠다고 오래전부터 맹세했건만, 오늘은 금지의 선악과를 따먹고 말았다.ㅠ 예배 인원의 4분의 3 이상이 지각을 한다. 설교 도중에 들락날락 하는 사람들이 여럿 된다. 조는 거야 생리적인 현상이니 그건 뭐라 ..

내 인생의 나우웬

삶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 좀 더 내실있게 살고 싶어서, 성찰적 글쓰기, 즉 블로그를 다시 시작하기로 작정했다. 결정하고 나니 더욱 생각의 고삐를 단단히 잡게 된다. 잘 한 일이다. 아내, 그리고 쥐순희와 챙, 굥화, 뮨진짱의 댓글과 응원도 한몫했다. 그나저나 뭘 쓸까? ㅋ 내 블로그의 타이틀은 "The Wounded Healer" 다. 헨리 나우웬이 내가 태어난 해인 1972년에 쓴 책 제목이며, 그의 삶과 사역과 사상을 대표하는 말이기도 하다. 나는 이 문구를 접하는 순간, 필이 팍 꽂혔다. 동시에 나우웬의 사진에서 진리의 세계를 힐끗 보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그래서 내 블로그의 타이틀도, 사진도 다 나우웬의 것이 되고 말았다. 내가 왜 나우웬의 글을 좋아하게 되었을까? 나는 객관적 세계를 관찰..

좌불안석 횡설수설

"당신은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좇아가느라 너무 바빠서, 잠시 멈춰 당신이 그것을 해야 하는지 스스로 물어본 적이 한 번도 없소" -영화 에서, 과학자 이안 말콤이 공원 창설자에게 한 말. 나는 항상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낀다. 그래서 매사 '현재'에 머물지 못한다. 빨리 그 일을 마치고, 다음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매사 내가 한 일이 흡족하지 못하다. 꼼꼼이 읽지 못했고, 면밀히 살피지 못했고, 치밀하게 구성하지 못했고, 완벽하게 되내이지 못했다. 돌아보면 대개 다 어설펐다. 그리고 또다시 시간에 쫓겨 매 순간순간을 미래에 대한 염려와 과거에 대한 후회로 점철된 어설픈 역사를 만든다. 아내가 지속적으로 지적해 줘서 알게 되었다. 지금 현재에 충실함으로써 구원을 얻으라 한다. (그렇게 느꼈다..

비상

한영교회 청년 빛소금공동체(TNT.com) 첫 여름수련회! 비상, 悲傷, 非常, 飛上 나는 느즈막하게 신학생이 되었고, 저들을 지도하는 목회자가 되었다. 저들과 함께 한 두 번째 수련회, 첫 여름수련회. 성령의 바람이 지나갔다. 그 바람을 따라 좇아간다. 수련회는 저들에게 무엇을 남겼나? 내게는 무엇이 남았나? 경쟁 사회 속에서 뒤쳐지고, 넘어지고, 깨지고, 울더라도.. 청년들이여! 속히 일어나라. 바람을 타고 일어나서 바람을 타고 예배 속으로 흘러 들어오라. 마침내 바람을 타고 그대들 삶 속으로 흘러 들어가라. 빛이 되고 소금이 되어라. 나, 그대들 위해 미약하나마 불쏘시개가 되리라.

드디어 청년부를 섬기다

청년부 사역을 시작했다. 이런저런 꿈들이 꿈틀거린다. 아직 천안에, 학교에, 묶여 있다는 게, 참 갑갑하다. 어쩌면 다행인지도 모르겠다. 하나님은 사람의 꿈을 미워하신다. 공동체를 향한 사람의 꿈은 필경 자기의 이상일 가능성이 높다. 부푼 꿈들을 식힐 필요가 있다. 청년부를 지도하면서, 내가 얼마나 유능한 사람인지, 사람들로부터 얼마나 칭찬과 인정을 받을 수 있을지, 내가 매만지고 있는 '꿈'을 이용해서 나는 교묘하게 그걸 노리고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러니 참 다행이다. 지금은 내가 할 수 있는게 별로 없다. 서두르지 말고 부르심의 본질에 충실하고 섬길 청년들의 꿈과 좌절, 두려움과 희망을 생각하며 그들에게 하나님의 이야기를 어떻게 들려줄 건지 그들을 어떻게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워줄 건지 그걸 기대하며 ..

낮은 곳으로

최병성 목사님이라는 분을 알고 있다. 그분은 충현교회의 부교역자 자리를 내려놓고 '영성'의 세계로 여행을 떠났다. 돌아온 그는 이슬 속에 비친 자연의 아름다움을 사진과 글로 소개하고 있다. 더불어 그 자연을 오염시키는 자들과 투쟁을 벌이고 있다. 그래서 그의 개인 블로그는 뉴스 이상의 가치를 가진다. 그의 독특한 영성을 접할 때마다 무색무취의 내 영성이 들통난 느낌이다. 이러다가는 대한민국의 뻐~한 먹사가 될 것이다. 한 가지 내 맘 속에 맴도는 생각이 있다. "낮은 곳으로 가라" 예수님의 삶을 한 마디로, 나우웬은 '하향 지향적 삶'으로 규정했다. 그리고 그도 하향 지향적 삶으로 뛰어들었다. 대학교수에서 장애 공동체의 일원으로... 전도사로서 나는 지금 상당히 높은 자리에 있음을 느낀다. 여기가 가장 ..

피랍, 죽음, 목회자, 기도...

지난 밤, 쉬이 잠들지 못했다. 어린이 수련회에 다녀온 후, 여독이 풀리지 않은 탓도 있었지만, 탈레반에 의해 첫 희생자 소식을 접했기 때문이다. 가슴이 먹먹하다. 몇년 전 갑작스럽게 돌아가신 고모님의 죽음의 소식을 들었을 때처럼 무력감과 공포감이 순차적으로 가슴을 짓누른다. 돌아가신 분은 배형규 '목사'라고 한다. 죽음 앞에서 그분은 어땠을까? 천국의 소망 때문에 담담하고 담대했을까? 인솔해 간 팀원들의 건강과 생명을 염려하며 말씀으로 잘 격려했을까? 목회자로 살아온 것에 대해 후회는 없었을까? 그분의 죽음을 지켜본 팀원들에게 그 목사님의 죽음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목사님의 '순교'의 소식이 이 나라와 전세계에 어떤 메시지로 울려퍼질까? ... 피랍된 분들 명단에 보니 3학년 유경식(55세) 전도사님..

설교준비

갑작스럽게 새벽설교를 하게 되었다. 이틀 전에 통보받았다. ㅠㅠ 수련회를 한 주 앞두고 온통 정신이 그리로 쏠려있는데, 목사님께서 한 번 더 하라 하셨다. 지난 겨울 수요예배 때 처음 강단에 서보고, 이번 새벽기도회에 두 번 강단에 섰다. 이상하다. 그리도 그리던 설교단이었고, 그리도 떨리던 설교단이었는데, 이번엔 별로 떨리지 않는다. 오히려 얼른 강단 위로 뛰어올라가고 싶은 마음이 든다. 처음이라 그런가? 설교준비하는 것처럼 행복한 일을 별로 경험해 본적이 없는 것 같다. 이 마음 한결같이 죽는 그 날까지 계속 가야할텐데...

첫 설교 후기

1. 어느 새벽, 교회당 뒷구석에 앉아 기도하고 있을 때, 불현듯 현재 내가 하는 기도는 '기도'가 아니라, 곧 하게 될 '설교'를 재구성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 마음 기저에는 역시 사람들로부터 '좋은 설교를 잘 했다는 칭찬을 받아야 한다'는 강박이 숨어있었다. 2. '설교'란 무엇일까? 도대체 내가 누굴 가르칠 자격이나 있나? 하는 생각에 이르자, 구상하고 있던 모든 것이 시시하게 느껴졌다. 그리고는 곧 당당하게 물 위를 걷다 물 속으로 빠져들어가는 베드로의 공포가 떠올랐다. 나도 두려웠다. 가르칠 게 없고, 가르칠 자격이 없는 사람이 '설교자'가 되어 곧 '설교'를 하게 된다는 사실이 두려웠다. 3. 말씀을 읽다가 말씀이 나를 읽어 버린 게 있다면, 그걸 드러내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내 설교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