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ent is Present

방금 나를 지나간 그 바람은 어떤 바람 됐을까

세미한 소리를 듣다 36

박수근미술관, 뿌리 깊게 한 세계를 깊이 파고드는 것

박수근미술관을 다녀왔다. 오래전부터 한번 가봐야지 생각했는데, 마침 숙소에서 그리 멀지 않다.  미술을 볼 줄 아는 눈이 부족하다. 미술작품이 왜 훌륭한지 그 이유를 잘 모른다. 그림의 종류도, 도구의 종류도 거의 아는 바가 없다. 그동안 가봤던 대부분의 전시회는 다소 지겨운 일이었다. 흥미를 유발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박수근미술관은 손가락 안에 들 정도의 즐겁고 유익한 관람 아닌가 싶다. 미술관 건물 자체도 매우 건축학적으로 특이했다. 무엇보다도 박수근의 작품들은 하나하나 시선을 잡아끌었다. 30~60년대 가난했던 우리 주변의 흔하디 흔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그린 작품들이다. 울퉁불퉁한 표면에 검은색 굵은 선이 단순하면서도 착한 심성들을 드러낸다. 작가가 어떤 사람이었을지 궁금해진다.   나더러 똑..

강원도 인제, 그 쓸쓸함에 대하여

강원도 인제에 대한 내 감정은 복잡다단하다. 쓸쓸함이라고 해야 할까, 애달프고 구슬프다. 1993년 1월 8일, 눈 덮인 인제에 첫 발을 내디뎠다. 1월 5일 강원도 춘성 102 보충대에 입소하고 3일 후 22사단을 배정받아 버스를 타고 고성으로 출발했다. 앞으로 펼쳐질 군생활에 대한 두려움, 홀로 감당해야 할 쓸쓸함, 고향으로부터 가장 먼 곳으로 떠난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나는 잔뜩 겁에 질려 있었다. 출발하는 날 눈이 내렸다. 크고 넓은 소양강을 구불구불 돌아 마침내 고개 하나 넘으니 마녀가 살 것 같은 산속 마을이 나타났다. 잠시 버스에서 내려 화장실을 다녀왔는데, 그땐 거기가 어딘지 몰랐고, 나중에야 인제라는 것을 알았다. 강원도 깊숙한 산골 훈련소로 가던 길 중간, 잠시 쉬었던 곳이 인제였다. 처..

고통에 의미가 있는가

팔당물안개공원에서 양귀비를 보았다. 빨간 꽃잎 안에 검은 십자가가 선명하게 보인다. 이게 마약 성분이 있는 건지 아닌지 난 잘 모르겠다. 마약 성분이 있는 거라면 재배 금지 식물이다. 사람들 왕래가 잦은 공원 길가에 한 송이 피어 있다면 마약 성분이 없을 가능성이 높다.  지천에 들꽃이 널렸다.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진다. 형형색색의 들꽃 보는 재미가 있다. 산책이 부른다. 그러다가 오늘 우연히 양귀비를 보았다. 다른 꽃들에게 미안하지만 도드라지게 예뻤다. 양귀비는 매혹적인 만큼 치명적인 성분을 품고 있다. 그 부조화의 조화에 수긍이 간다.    몇 주 전, 제주 곶자왈 숲을 걷다 탱자나무를 보았다. 연푸른 숲속에 하얀 솜같이 하얀 꽃이 나무 위에 걸려 있었다. 그런데 사진을 찍으려고 가까이 들여다보니 ..

닉네임을 똑바로 부르라!

스타벅스 e카드를 선물 받았다. 보통 e카드 선물 받으면 다른 사람들에게 흘려보낸다. 스타벅스를 잘 가지 않기 때문이다. 어제는 강남에서 2시간 정도 아내를 기다려야 해서, 처음으로 e카드를 써보기로 했다. 밀크티를 주문한다. 앞에 한 5~6명 기다리고 있다. 닉네임을 불러준다. 오래전에 스타벅스 앱을 깔고, 닉네임을 '신의피리'로 저장해 뒀다. '신의피리'는 이중적 의미가 있다. 하나. 정신실의 김종필(피리) 둘. 하나님이 내게 세미한 바람소리로 말씀하시면 나는 그분의 피리가 되어 삶으로 연주한다. 아무래도 스타벅스에서 불림당할 닉네임이 좀 부적절한 느낌이 들어서, 다음에는 바꿔야겠다 생각하고 있던 찰나, 알바 여학생이 영수증과 나를 번갈아보면서 살짝 미소를 지으며 큰소리로 호명한다. "신의파리님!" ..

한예종 기독교 연합 개강예배 소회

외부에서 설교하는 일이 거의 없다. 요청하는 사람도 거의 없고, 어쩌다 있다 하더라도 왠만하면 거절한다. 지금 내 교회일로만도 벅차기 때문이다. 캄보디아 단기선교 귀국 이틀 후, 한예종 기독인 연합 개강예배 설교를 하게 됐다. 마침 안식월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젊은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설교를 해본지가 오래됐다. 청중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경험도 없어서 본문을 정하기가 어렵다. 전도사 시절에 했던 설교 중에 그래도 청년들이 많이 반응했던 본문을 정했다. 마침 사순절 기간이라, 베드로가 세 번 부인한 본문을 잡았다. 설교 중에 느낌이 올 때가 있다. 뭔가 헛도는 느낌이다. 말씀이 청중들 마음에 쑥 들어가지 않고 겉도는 느낌이다. 예배를 마치고 친교와 나눔 시간을 갖는다. 4개의 동아리 연합이다보니 서로들..

현존을 생각하다

흐리멍덩하다 정신이 맑지 못하고 흐리다. 집중이 되지 않아, 율동공원 한 바퀴를 돌았다. 걸으면서 ‘현존’을 생각한다. 지나간 일이 졸졸 따라와 마음 쓰리게 하고, 다가올 일에 대비가 되지 않아 불안불안하다. ‘현존’은 구원이다. ‘현존’은 성화다. ‘현존’은 성숙이다. ‘현존’은 지금 여기 임재한 그 나라에 거함이다. ‘현존’은 영원과 잇대어지는 순간이다. 정신이 흐리멍덩한줄 알았는데, 영혼이 흐리멍덩했구나.

등불 성경

등불 성경 돌아보면 발자국마다 주님의 은총이었다. 내가 걸어온 길이 그저 우연의 연속으로 이루어진 듯보이나, 실상 주님의 '섭리'로밖에 해석이 안되는 경우가 참 많다. 그래서 지금도, 앞으로도 주님께서 그리 인도해 가시리라 믿게 된다. 얼마전 '양화진청년학교'에서 강의를 했다. '말씀과 동행하는 삶'이라는 주제도 정해져 있었다. 얼떨결에 강의 수락은 했지만, 막상 어떤 내용을 전해야 할 지 조금 막막했다. 2박3일 간 강원도 태백에 있는 예수원으로 피정을 다녀왔다. 그곳에서 내가 주력했던 것 중에 하나는 양화진청년학교 강의 내용이다. '말씀묵상'으로는 처음 강의를 해 본다. 늘상 하는 거라 쉽게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이 들었지만 가만 생각해보면 의외로 사람들은 말씀묵상을 잘 안한다. 하려고 해도 그게 ..

걸으면 해결된다

"걸으면 해결된다" 김기석 목사님은 안식월에 들어가면서 아브라함에 대해서 설교를 했다. 그분의 설교 중에 어거스틴의 말이 인용됐다. "걸으면 해결된다." 나는 이 말을 아내와 자동차 여행 중에 아내의 권유로 듣게 됐다. 격하게 공감한다. 오늘 아내 없이 홀로 강변을 거닐다 다시 그분의 설교를 들었고, 그 문장이 다시 내 귀에 꽂혔다. "걸으면 해결된다." 이 말은 두 가지 의미에서 모두 옳다. 실제로 '걷기'는 여러모로 훌륭한 인간의 행동이다. 걷기는 성찰과 기도를 통합시킨다. 과거와 미래를 바로 지금 여기에서 하나로 엮어준다. 걷기는 집중하여 생각하는 시간이고, 걷기는 생각이 기도로 승화되는 멋진 선물이다. 또다른 의미에서 걷기는 훌륭한 비유이다. 인생은 '길을 걸어가는 것' 아닌가. 인생은 가나안 땅..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목적

존 스토트 목사님께서 쓰신 그분의 마지막 책, 에는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목적에 대한 그분의 설명이 나온다. 존 스토트는 이렇게 말한다. "그것은,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그리스도처럼 되기를 바라신다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다."(35)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 이것이 나를 향한 하나님의 목적이며, 하나님을 향한 내 인생의 목적이라는 것이다. 어떻게?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그리스도처럼 되는 것이며, 하나님의 방법은 우리를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시는 것이다."(45)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 이것보다 더 중요한 목적이 없다.성령으로 충만하게 사는 것, 이것보다 더 좋응 방법은 없다. 그러므로, 오직 내 관심은 성령으로 충만하여 그리스도를 닮는 것이다.

행복한 목회자

두 어 사람이 묻는다. "행복하십니까?" 행복합니다! 라고 혀가 재빠르게 돌아가지 않는다. 마음에도 없는 말을 쉽게 하지 못하는 까닭이다. 그래, 행복하지 않다. 도대체 행복합니다, 라고 선듯 대답할 목회자가 얼마나 많을까? 속으로 되물어본다. 다른 사람은 그렇다 치고, 그럼, 나는 왜 행복하지 않은 걸까. 묘한 이중성이 있다. 나는 "설교자"의 자의식이 있다. 나는 설교를 충분히 준비하고, 설교를 만족스럽게 하고, 설교에 대한 좋은 피드백을 받으면 행복하다. 이 세 가지가 다 갖춰지면 너무 행복하고, 셋 중에 하나만 충족되도 그럭저럭 행복하다. 그런데 이 일을 예전에는 매주 3~5차례 하던 것을 지금은 한 달에 2~3번 정도만 하다보니, 행복하다는 느낌을 가질 때가 줄어든 것 아닌가 싶다. 행복한 느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