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사진첩을 보면 꽃밭에서 찍은 사진이 많다. 죄다 아버지께서 찍어 주신 사진이다. 얼마 전 형과 같이 양평 분원리로 드라이브를 갔다. 물안개공원 초입 꽃밭에서 어머니 사진을 여러 장 찍어줬다. 여기에 앉아보세요, 저기에 서 보세요, 요청하니 거절 않고 잘도 포즈를 취한다. 어머니와 단둘이 가평 제이드가든에 들렸다. 연신 다리가 아프다 불평이 끊이지 않으면서도 사진을 찍어준다고 하면 바로 모델 포즈로 들어간다. 젊어서부터 아버지께서 사진을 많이 찍어주신 티가 난다.
"어머니는 무슨 꽃 좋아하세요?"
제이슨가든에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물어봤다.
"장미! 빨간 게 예쁘잖아"
어머니는 꽃 이름을 잘 모른다. 그래도 좋아하는 꽃을 물어보니 0.1초 주저하지도 않고 대답하신다.
드디어 입원하는 날이 왔다. 형과 함께 입원수속을 마치고 병실로 들어가셨다. 나는 1층에서 인사를 했다. 한번 안아드려리고 했는데, 엘리베이터 앞에 다른 환자들이 너무 많아서 그냥 손만 흔들었다.
집에 와서 다른 일로 다른 사진을 찾다가 우연찮게 옛날 사진 몇 장이 나타났다. 아마도 채윤이가 할머니 집 앨범에서 찍은 걸 내가 받아 두었던 모양이다. 두 장의 사진이 눈에 담긴 후 잔상이 사라지지 않는다.
언제 어디에서 찍었는지 나는 도통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 얼굴을 보니 아직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 같다. 그렇다면 어머니는 서른을 갓 넘은 삼십 대 초반이다. 옛날 사진인데 저런 수영복을 입으셨다니.... 저렇게 어린 두 아들이 50대가 되어 늙은 어머니를 입원시키고 둘 다 말없이 헤어졌다. 인생이 좀 서글프다. 하나님의 은혜가 목마르다.
장미꽃 뒤에 한 남자가 있다. 잘 생긴 저 젊은 사람은 내 아버지다. 아버지 나이는 지금의 나보다 어리다. 40대 중반을 됐을 게다. 나도 처음 보는 사진이다. 우리 집은 길가에 있는 3층짜리 상가건물 3층이었다. 1층과 2층은 상가였다. 3층에 집이 있었는데 작은 마당도 있었다. 거기에 이런저런 화초가 있었던 듯싶긴 한데, 저렇게 장미가 피어있는 줄 몰랐다.
두 장의 사진을 눈에 담고, 마음에 걸고 밖으로 나와 걷는다. 마음이 아프다. 병원에서 입원수속을 밟는 어머니를 모신 형과 내 모습이 어릴 때 어머니와 함께 찍은 사진과 오버랩된다. 장미꽃을 좋아한다는 어머니 말씀과 아버지 사진이 오버랩된다. 문득 궁금해졌다. 저 3층 집 마당에 저 장미를 누가 심었을까? 누가 가꾸었을까? 어머니는 분명 아니다. 그럼 아버지였던 건가? 무색무취한 삶을 사셨다고 생각한 아버지께서 마당에 저런 장미를 심고 가꾸신 건가? 왜 여태 난 그걸 몰랐을까? 장미꽃 뒤에 앉은 아버지를 과연 누가 찍어줬을까? 어머니였던가? 너무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가 그립기도 하고, 아버지를 몰라도 너무 몰랐던 것이 죄송하다. 늙어서 고생하는 어머니를 잘 돕지 못해 마음이 아프다. 부모의 삶과 내 삶이 아주 찐하게 연결된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