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中年)이라는 시기를 지나고 있다. 거의 끝자락에 다다른 듯하다. 사춘기(思春期)도 시작과 끝이 있듯이, 중년기도 그렇지 않을까 싶다. 얼른 끝내고 축하파티라도 하고 싶지만, 순리대로 가야 한다. 매일을 살아내고, 순간을 정직하게 마주하다 보면, 어느새 나도 모르게 중년기가 끝날 것이다. 그럼 조금 더 성숙해질까? 조금 더 여유로워질까?

내 중년은 아버지의 죽음에서부터 시작됐다. 내 나이 서른아홉이었다. 16년을 다녔던 교회를 떠났다. 내 청년기의 가장 중요한 것들을 나는 그 교회에서 만났다. 첫 직장인 기윤실에서 간사가 되었고, 신학교에 입학하여 목회자가 되었다. 그리고 아내를 만나 결혼하여 두 자녀를 낳았으며, 공동체를 체험했다. 뜨거운 시기였다. 열정이 뿜어져 나오던 그 시기에, 나는 죽음을 간접 경험했다. 아버지는 암판정 이후 40여 일 만에 돌아가셨다. 교회와 목회자에게 견딜 수 없는 분노와 섭섭함이 쌓이던 차 교회를 사임하고 이사를 했다. 일주일동안 열가지 재앙이 내 몸과 마음을 휩쓸었다. 그리고 100주년기념교회에서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내 삶을 끌어가던 ‘열정’은 사라졌다. 처음엔 신앙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기도의 게으름 때문이라 생각했다. 아무도 없는 교회당에서 홀로 앉아 몸부림을 쳤다. 그러나 30대의 열정은 다시 오지 않았다. 겉으로 돌아가는 목회의 일과는 정신없이 바빴지만, 내 마음의 조종실엔 뭔가 알 수 없는 무기력이 지배했다.
무기력의 늪에서 헤어 나올 기회들이 종종 있었다. 사람들의 칭찬과 인정이었다. 예배를 인도하고 설교를 하고 나면, 누군지 모르는 성도들로부터 문자가 왔다. 은혜를 받았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살아 있음을 느꼈다. 그럴수록 더욱 성도들의 반응에 관심을 쏟기 시작했다. 그러다 반응이 없으면 무가치함이라는 쓸쓸한 정서가 나를 힘겹게 했다. 사람들의 칭찬과 인정을 받는 방법도 알 듯했다. 그것을 좇으면 어떤 결과가 올지도 알았다. 그 길 위에서 나는 우왕좌왕 했다. 대한민국 40대 남자의 성공욕구를 극대화 할 것인지, 하나님 앞에서 끝없이 성찰하며 십자가의 낮은 길로 갈지, 상승의 유혹과 하강의 은혜가 내 안에서 끝없는 전쟁을 벌였다.

그 즈음, 안셀름 그륀의 <내 나이 마흔>이란 책을 읽었다. 아내가 먼저 읽고 내게도 권했다. 사십 줄에 들어서 생긴 이 무기력이 중년의 과정이란 것을 알게 됐다. 열정이 식은 것은 후퇴가 아니었다. 내면의 무기력은 숨길 일도 아니었다. 그냥 그 과정을 통과하고 있음을 알고 인정하면 될 일이었다.
중년을 앓는 동안, 나의 성격, 성향, 성품을 깊이 성찰하게 됐다. MBTI와 에니어그램 전문가인 아내 덕에 나를 객관적으로 보는 일이 좀 더 가능해진 것이다. 나를 객관적인 눈으로 보고 인정하는 작업은 극도로 고통스러운 일이다. 자칫 자기 정죄와 혐오에 빠질 수도 있다. 언젠가 아내가 청년들과 함께 1박2일동안 에니어그램 세미나를 진행했다. 나는 사람을 번호로 규정하여 분류하고 설명하는 방식이 못마땅했지만 겉으로는 모든 것을 수용하는 척하며 세미나를 지켜봤다. 아내가 에니어그램 5번을 설명할 때였다. 갑자기 수치심이 올라왔다. 나도 스스로 잘 인식하고 있지 않았던 나 자신, 깊이 숨겨두었던 나 자신, 나 자신이 모두에게 까발려진 것만 같았다. 벌거벗은 것같은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나는 내가 매우 합리적인 사람이고, 공정하고 온화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논리적인 사람이고, 객관적인 사람이기 때문에, 주관적인 자기 고집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내 판단은 늘 괜찮았다. 내 주장은 수준이 있었다. 나는 치우친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런 내 자의식이 드리운 그늘을 본 것이다. 늪에 빠졌다. 허우적댈수록 더 깊이 빠졌다. 내 중년은 그렇게 허우적대는 시간이었다.
아내와 대화할 때마다 추임새처럼 하는 말이 있었다. “지금 여기 현존해!” 듣기 싫은 말이었다. 그런데 정말 내겐 심각한 영적 버릇이 있었다. 오롯이 여기 머물지 못하고 끝없이 미래로 생각과 감정이 벗어나서 배회했다. 아내와 대화할 때도 그 대화에 머물지 못하고 내 존재는 항상 미래를 근심했다. 시계를 보는 버릇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평생 어떤 미지의 미래를 희미하게 꿈꾸며 사는 사람이었다. 내겐 현재가 없었다. 오늘이라는 것이 없었다. 늘 미래였다. 성공한 사람들에 대한 부러움이었고, 현재 나 자신에 대한 못마땅함이었다.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을 갈구하는 내 영혼이 반응하던 방식이었다. 비전이라는 말은 내 욕망을 거룩하게 포장한 말과 다름없었다.
바로 그 즈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죽음이라는 실체가 드디어 나를 방문한 것이다. 죽음은 먼 개념이 아니라, 가까운 실체였다. 나도 언젠가는 죽을 것이고, 내일이라도 죽을 수 있는 존재다. 죽음을 묵상한다. 죽음은 미래의 일이기도 하지만, 현재의 일이기도 하다. 죽음, 그 너머도 생각하게 된다. 죽음이 서서히 인식되어 간다. 죽음이 두렵지 않다. 죽는다는 것이 두려워지지 않았다. 죽음 그 이후에 대한 희망이 생겼다. 그것은 아버지 돌아가신 후 읽은 스캇 펙의 <저 하늘에서도 이 땅에서처럼> 영향이 크다.
중년으로 진입하며 한 문장이 내 가슴으로 들어왔다. “오늘이 선물이다” (Present is present) 나는 비로소 ‘지금 이 순간’을 주목하며 거기에 머무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죽음 앞에서 그 일이 시작됐고, 에니어그램에 비춘 성찰에서 그 일이 시작됐다. 바쁘게 일하는 것이 얼마나 해악인지 알게 됐다. 천천히 걸었다. 천천히 먹었다. 길가에 핀 들꽃을 들여다보며 쭈그리고 앉는 일이 잦았다. 벤치에 앉고, 홀로 카페에 가 앉았다. 타인의 평가와 시선에 매달리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이런 노력은 시작에 불과했다. 아직 중년의 진짜 훈련은 더 남아 있었다.

코로나가 터졌을 때, 네 식구가 함께 식사하는 일이 많아졌다. 그때 아내는 사랑하는 어머니를 잃었다. 극도로 슬프고 고통스러운 재난이었다. 아들은 사춘기를 지나고 있었고, 딸은 성년기로 진입하고 있었다. 가족들에게 나는 좋은 남편, 좋은 아빠이기를 바랐고, 기도했고, 그렇게 살았다. 허용적이었고, 정죄하지 않으려 했고, 지지하는 사람이기를 바랐다. 그런데 내 의지와 노력과 상관없이, 언제부턴가 식사 자리에 앉으면 나는 계속 가족들에게 상처 주는 일원이 됐다. 내 생각에 평범한 내 말은 가족들에게 방망이가 됐다. 내 성향에 충실한 원인-결과식 대화는 심문과 정죄의 구도를 만들어냈다. 허용적이고 독립적인 내 성향은 무관심과 공감 없는 사람이 됐다. 말을 해도 상처를 주고, 말을 안해도 상처를 남겼다. 내 존재 자체가 모두에게 상처를 주는 것 같았다. 아내의 진단은 내 부실한 존재를 더 아프게 해부하는 것 같았다. 하루도 빼놓지 않고 가족들과 불화하는 일이 이어지는 듯했다. 하루는 아내와, 하루는 딸과, 하루는 아들과 불화했다. 억울하고 슬프고 화가 났다. 삶의 의욕이 사라졌다. 가족에게 인정받는 것이 내 삶의 가장 큰 소망이었는데, 그게 무너지니 삶이 무너졌다. 이선균이 드라마에서 한 말이었던가, “이번 생은 망했다.”

아내가 매우 좋아하는 리처드 로어 신부님이 쓴 <위쪽으로 떨어지다>를 읽었다. 매우 어려웠지만 세 번 읽으면서, 나는 중년기의 구렁텅이에서 나오는 법을 발견한 것 같다. 중년기에 깨달아야 할 가장 중요한 것 하나는 ‘방어적인 태도’를 인식하고 버리는 것이었다. 이 말이 무기력한 내 영혼을 깨운 것 같다. 나름 논리적이고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온 나는 지금, 한없이 방어적인 태도로 살고 있었다. 아내가 서운해하면 내가 일부러 그런 거 아니라고 방어한다. 딸이 화를 내면 내겐 그런 의도가 없었다고 방어한다. 아들이 속상해하면 다른 아빠들에 비해 내가 얼마나 훌륭한 아빠인지 설명하며 나를 방어한다. 집에서 그러니 밖에서는 오죽하랴. 가장 사랑하는 가족들에게도 그러니 친구들과 동료들, 그리고 교우들에게 오죽하랴. 방어적인 태도와 말을 내려놓기로 마음먹었다. 더 이상 해명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속으로는 억울해서 욱 할 때도 있지만, 점점 ‘알겠어’라는 말을 하게 된다. 처음엔 억지로 했다. 아니 지금도 의지를 다해 그렇게 말한다. 해명하는 것은 나를 방어하는 것이고 타인을 아프게 하는 것이며 공감이 없는 자의 변명이 된다. 해명하기를 그치면 내 성격의 그늘을 인식하게 된다. 내가 내 생각보다 훨씬 더 부족한 존재였으며,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사고뭉치나 꼰대가 될 수 있는 존재임을 깨닫게 된다. 해명하기를 그치면 은혜를 찾게 된다. 해명하기를 그치면 팽팽한 긴장이 풀리고 관계가 이어진다. 해명하기를 그치면 너그러워진다. 해명하기를 그치면 말도 줄어들고, 귀가 활성화하게 된다. 리처드 로어는 나이 오십까지는 자기 집을 지으며 살지만, 그 이후엔 그 안을 담는 일, 즉 떨어져야 한다고 했다. 그 추락이야말로 위쪽으로 오르는 유일한 길이라 했다.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다. 내 느낌에 해명하기를 그치면 나는 한없이 추락하는 것 같은 실패감을 느낀다. 나는 사라진 것이다. 내 모든 것이 허물어진 느낌이다. 그러나 그 추락이 상승이다. 나는 매일 추락하는 것을 허용했다. 적극적으로 추락하려고 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추락이 두려워서 말과 논리와 언어와 자아를 붙드는 순간, 나는 겉으로는 상승한 것 같으나 영적으로는 추락한다.

오십견이 왔다. 축도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아팠다. 제주도에서 한달살이 하는 동안 오십견이 나아졌다. 이유를 알 수 없는 후비루 증상은 실은 심리적인 이유였다. 아주대 이비인후과에서 받은 진단이다. 그냥 받아들이고 산다. 설교와 성경공부와 기도회를 인도한 후에 집에 오면 수치심이 몰려온다. 그러나 이젠 사람들의 시선을 덜 의식할 것이다. 물론 잘 하고 싶다. 그러나 너무 잘하려고 스트레스를 받진 않을 것이다. 하나님 품에서 나답게 하려고 한다. 말로 실수하면 즉각 인정하려고 한다. 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하면서 죄책감이 나를 사로잡을 때마다, 거리를 둔다. 사실을 받아들인다. 그러면 금세 숨을 쉬게 된다. 피하지 않고 직면하면 도리어 마음이 편해진다. 내게 주어진 숙명이다. 받아들이면 괜찮아진다. 주님께서 하실 일을 내가 하려고 하면 안 된다..
사람들의 시선에 매이지 않으려고 한다. 나답게 살고 싶다. 말을 가급적 안 했으면 싶다. 이건 정말 어렵다. 그러나 실패해도 계속 전진할 것이다. 침묵과 고독을 사랑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모든 상황을 감사의 관점으로 보고 싶다. 그러면 더 만족감이 생길 것이다. 상처난 감정을 그냥 덮어버리기보다는 소중하게 여기고 잘 표현되게 하려고 한다. 다른 이들에게 나를 방어하려는 모든 태도는 버리고 버린다. 계속 버린다.

중년의 끝자락에 다다른 것 같다. 그 다음은 뭘까. 또다른 새로운 열정일까. 새로운 열정 다음엔 또 다른 위기가 올까. 노년의 위기일까. 큰 질병의 위기일까. 잘 모르겠다. 아무튼 중요한 것은 오늘이 선물이라는 사실이다. 아, 그리고 나는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한다. 좋은 글인지 안좋은 글인지 그것도 타인의 시선을 너무 의식하지 않으련다. 얼마전 복음과상황 기자가 아내를 찾아왔고, 함께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나의 중년기’에 대해서 한번 정리해 보고 싶어졌다. 물론 나는 그날 너무 말을 많이 했다. 어쩔 수 없다. 그래도 다시 전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