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금 걷고 왔다. 걷기 전에는 마음이 무거웠는데, 걷고 나니 마음이 가벼워졌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점심을 먹고 소화도 시킬 겸 율동공원 쪽으로 걷는다. 한바퀴를 걷고 돌아오면 5km는 족히 될 것이다. 습관을 따라 걷던 도중 갑자기 발걸음을 멈춘다. 지난 9년 간 지나다니던 길이었는데 낡은 아파트 담벼락 옆에 숲을 향한 작은 오솔길이 눈에 보인다. 뭐든 새로운 것을 좋아하는 나는 본능적으로 숲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대강 길을 예상하면서 4월 초 잿빛으로 가득한 숲을 걷는다. 홀로 숲을 걸을 때 마음이 편안해진다. 나는 걷기를 사랑한다. 아무 방해 없이 오로지 사유에 골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사유의 흐름은 중구난방이다. 이 생각 저 생각이 동시다발적으로 머릿속으로 들어온다. 가히 생각의 춘추전국시대다. 설교를 앞두고 있다면 설교 준비를 위한 생각이 제왕이 된다. 꽤 오랫동안 걷고 있는 몸의 두뇌를 지배할 수 있다. 방금 한 10여분 동안 내가 걷기를 왜 사랑하는지에 관한 생각이 걷는 내 몸을 지배했다. 꽤 유익한 일이다.
3월 말 4월 초의 동네 산들은 묘한 매력이 있다. 완벽한 100%의 잿빛이 아니다. 약 2~3% 정도 뭔가 푸른 색이 가미되어 있다. 무엇보다도 기가 막히게 좋은 건 보라색 진달래의 향연이다. 산비탈 여기저기 진달래가 피어오른다. 흑백 영화에서 칼라 영화로 전환되는 과정처럼 보인다. 온 산이 다 진달래로 뒤덮인 모습도 짜릿한 장관이겠지만, 드문드문 봄을 알리는 진달래도 나름 아름답다. 조금더 올라가니 노란 생강나무도 꽃을 피웠다. 산수유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생강나무가 꽃잎이 좀더 풍성하다. 잠시 서서 사진을 찍는다. 무슨 목적을 가지고 찍는 건 아니다. 물론 매번 어떤 명작을 상상하며 사진을 찍지만, 대개는 그냥 내 사진 폴더에 저장된 채로 있다. 가끔 딸내미가 내 휴대폰에 저장된 사진을 보면서 킬킬 웃으며 이 사진을 왜 찍었느냐고 묻기도 한다. 그냥 예뻐서 찍었다. 뭐 작품 하나 나오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없진 않고.
사진을 찍는데 어디선가 푸석푸석 낙엽 밟는 소리가 들린다. 소리가 점점 커지고 빨라진다. 멀리 아래쪽에서 고라니 한 마리가 펄쩍 뛰어 지나간다. 나를 보자 삥 둘러 멀리 달린다. 마침 사진을 찍고 있던 터라 비디오 모드로 전환해서 영상을 찍는다. 성공이다! 지난 겨울에 새로 이사한 동네 산책을 나갔다가 세 번이나 고라니를 봤다. 매번 촬영에는 실패했다. 카메라를 드는 순간 이미 저 멀리 달아나고 없다. 사람 많이 사는 동네 뒷산에 고라니들은 무얼 먹고 사는 걸까? 이렇게 사람 많이 지나다니는 동네 산에서 고라니들은 사람들 시선을 피해 잘 살 수 있나? 고라니가 어디로 사라졌는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또다시 숲길을 걷는다. 그냥 평평한 숲길이면 좋으련만 등산길이다. 그래도 괜찮다. 높은 산이 아니다. 오늘은 호수 공원이 아니라 숲길을 통해 뒷산을 한바퀴 돌게 생겼다. 이것도 괜찮다. 이런 일에 내 인생을 빗댄다. 예상치 못한 사건들, 그 사건들을 해내며 나가다가 또다른 일들이 새로운 국면을 만든다. 여전히 계속 오르막길이고, 나는 혼자다. 그래도 괜찮다. 이 자체가 좋은 일 아닌가. 어디로 가든 여하튼 나는 만족할 것이다.
숲길의 끝은 내가 예상한 곳이었다. 아니 처음부터 예상한 것은 아니다. 우연히 다른 길로 들어섰고, 진달래와 생강나무에 심취해서 사진을 찍다가 숲으로 숲으로 들어왔고, 그 때 그 길의 끝을 예상한 것이다. 그리고 그 길의 끝에 다다랐다. 낮은 곳에서 시작했는데 높은 곳으로 나왔다.
'무얼 걱정하는가. 왜 걱정하는가. 내일 일은 내일 걱정하면 되지 않는가. 바로 지금 여기, 오늘에 잇댄 영원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감사한 일 아닌가. 그러면 된 거 아닌가. 오늘 내가 할 일을 하면 되는 일이다. 내일 일은 내일 가서 하면 될 일이다. 내일 일을 잘하기 위해서 오늘 내내 염려한다고 항상 더 잘 하는 것도 아니다.'
"오늘이 선물이다." "Present is present:"
뜻하지 않게 뒷산을 올라갔다 오니 다리가 살짝 무거웠다. 그렇지만 마음이 가벼워졌다. 내가 걷기를 사랑하는 이유다. 이것이 걷기가 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