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교구 소식지 7호. 2015/11/08


비교의식 내려놓기

 

내 내면에 ‘비교의식’이라는 것이 언제 처음 태동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나보다 키가 한 뼘은 더 크고 좌우로 가늘게 찢어진 눈에 광대뼈가 심하게 튀어나온 ‘진표’라는 친구에게 은근한 열패감을 느끼곤 했었다. 목소리 큰 진표의 기세에 눌려 지내던 나는 어느날 그 친구를 바닥에 눕히고서는 배 위에 올라타 양 팔을 무릎으로 누르며 ‘항복해!’라며 소리 지른 기억이 있다. 내 힘이 더 셌고, 나는 승리감으로 우쭐거렸다. 그렇지만 내 인생 중에 그렇게 우쭐거린 순간은 많지 않았다. 움츠러든 순간이 백배는 더 많을 것이다. 매사 우월감의 순간을 지향했지만 대개는 열등감에 빠져 허우적대기 일쑤였다.

 

내면의 전쟁이 다 끝난 듯 보였던 신학교 시절, 나는 주목받는 학생이었다. 늦깎이 신학생이었기 때문에 동기들한테 형님 대접을 받았고, 지식과 경험을 나눠줄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어느날 나보다 예닐곱 살은 적은 동료가 수업시간에 멋지게 발표를 했는데, 그 친구는 우레와 같은 박수와 칭찬세례를 받았다. 그런데 그순간 정말 도깨비에 홀린 듯 이상한 일이 내 안에서 벌어졌다. 내 마음이 시궁창같이 되고 만 것이다. ‘나는 왜 저만큼 못할까?’, ‘나는 왜 매력이 없는가?’, ‘나는 사람들로부터 주목받지 못하는가?’ 말도 안되는 생각들이 마음속을 헤집어 놓았고, 이내 통제 불능상태가 되었다. 다른 사람이 자신의 재능과 능력 때문에 칭찬받는데 왜 내가 침울해지는 것일까? 그날의 경험은 그날로 끝이 나지 않았다. 그 이후로도 정도는 덜했지만 마치 사울이 악신에 사로잡히듯 종종 그렇게 시달리곤 했다.

 

자기 안에 악신의 정체를 발견하고 그 악신과 싸우는 과정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십여년이 넘었건만 내면의 영적 전쟁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그러나 악신이 잠시 난동을 부릴 수는 있어도 금세 제압하는 방법을 터득한 지는 꽤 되었다. 거룩한 꿈이라는 명목의 ‘비전’이라는 말은 실은 (목회)성공을 위한 야망의 다름 아닌 트릭이다. 야망이라는 악신은 때때로 ‘비전’이라는 가면을 쓰고, ‘부흥’이라는 이름의 우상을 숭배하도록 나를 유혹할 때가 있다. 비전과 부흥은 내가 쟁취해 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시는 것이다. 내 노력으로 얻어내는 것이 아니라, 언약을 반드시 이행하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의 긍휼로 값없이 주어지는 것이다. 이 사실이 내 안에 비전, 부흥, 성공이라는 야망을 내려놓게 했다. 비교가 얼마나 무익한 일인지 깨닫게 한다. 이미 값없이 얻은 은혜에 주목하고 그 은혜에 머무는 일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 지를 절감하게 된다. 도대체 비교한들 내 성숙을 위한 한줌의 도움이라도 되겠는가!

 

비교는 인생살이에 피할 수 없는 장애물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은 각각 자신의 길이 있고, 나도 나의 길이 따로 있다. 설령 세상이 일렬로 줄을 세워 평가를 할지라도 나에게는 나만의 길이 있다. 그러니 나보다 더 잘하는 이들을 보면 칭찬하면서 내게 없는 걸 찾아 배우면 된다. 또한 나는 나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되, 내게 주어진 그 모든 자원은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여기며 항상 겸손해야 한다. 어쩌면 신앙의 성숙은 자기 내면의 악신인 비교의식과의 싸움의 지난한 과정인지도 모른다. 

Posted by 신의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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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하쁨이 2018.07.18 15: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습관이 답이다’ 라는 책을 검색하다 우연히 들어오게 되었는데 글을 다르쓰셔서 다른 글도 읽다갑니다. 비교의식에 대한 솔직한 글 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