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ent is Present

방금 나를 지나간 그 바람은 어떤 바람 됐을까

기고/시니어매일성경

나의 담임 목사님, 달라스 윌라드

신의피리 2024. 12. 18. 12:47

*  2025년 1-2월호부터 시니어매일성경에 연재를 시작(당)했다. 두 달에 한번씩 부들부들 떨며 글을 쓴다. 학교 다닐 때 쓴 과제물과 설교문 외에 이렇게 각 잡고 긴 글을 써보기는 처음이다. 과연 몇 번을 더 쓸 수 있을지... 

 


 

나의 담임 목사님, 달라스 윌라드

 

너는 목사로서 이런 것들을 알지 못하느냐

목사인 나는 금요일 오후가 되면 속절없이 불안 지수가 높아진다. 한두 마디 일상적인 말을 하는데도 에너지가 들고 하릴없이 서성거리게 된다.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최선을 다해 준비해도 금요일 오후만 되면 마법에 걸린 것처럼 영혼이 시름시름 앓는다. 주일 설교까지 생각하면 암담하기 그지없다. 어느 금요일, 성경을 연구하다 기분 전환도 할 겸 저녁 무렵 산책하러 나갔다. 돌아오니 어느새 날은 캄캄해졌고, 아무도 없는 교회 예배실이 말할 수 없이 적막했다. 갑자기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사가 예배실에 있는데 무섭다니 이게 무슨 말인가. 아무도 없는 캄캄한 동산에서 외롭게 사투를 벌이신 겟세마네의 예수님도 그러하셨을까? 말할 수 없는 두려움과 외로움이 밀려왔다. 예배당 맨 앞자리에 앉아 기도하기 시작했다. 밀려드는 내 안의 어둠을 몰아내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기도였다. 조금은 평안해진 상태로 서재로 들어가 아무 책이나 빼 들었다. 누군가, 무엇엔가 도움을 받아야 할 것 같았다.

제목은 기억나지 않지만, 달라스 윌라드가 쓴 책인 것은 분명하다. 그의 책 몇 권을 오래전에 읽었으나, 크게 흥미를 느끼지는 못했었다. 다소 어렵게 느껴졌고, 제대로 이해한 것 같지도 않다. 그런데 서재에 서서 읽은 이야기 한 토막이 내 마음을 치고 들어왔다. 내용은 단순했다. 밤중에 예수님을 찾아온 바리새인인 니고데모 이야기이다. 당대 최고 엘리트였던 니고데모는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는 예수님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때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것들을 알지 못하느냐?”(3:10) 달라스는 오늘날 목회자들의 상태가 율법 학자인 니고데모와 다르지 않다고 했다. 그 말을 읽는 순간, 니고데모에게 하신 그 말씀이 또렷한 음성으로 내 안에서도 울렸다.

 

너는 교회의 목사로서 구원과 성령, 하나님 나라에 관한 이러한 것들을 알지 못하느냐?”

 

알지 못하느냐? 알지 못하느냐?... , 모르는 것 같습니다.’ 그랬다. 알지 못했다. 신학 이론을 모르는 건 아니었다. 말로 설명할 수 있는 지식은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와 복음의 능력은 알지 못한다. 그런 것 같다. 소소한 체험을 종종 하지만, 하나님 나라를 전인격으로 매일 누리지는 못했다. 지금 여기 임한 하나님 나라를 사는 즐거움과 능력과 공급하심이 내 안엔 없었다. 신학적 지식이 어떨망정, 영적으로 무지했다. 부끄러워졌다. 마음에 가득한 어두움과 불안이 부끄러움이 되었다. 그리고 한없이 가난한 마음이 되었다. , 나는 영적 거지구나! 서재 앞의 이 짧은 순간이 내 목회와 인생을 새로운 차원으로 바꾸어 놓았다.

 

동료 목사들이 모이면 교인들 앞에서 꼭꼭 숨겨 두었던 무신론적 의문과 목회적 회의감이 마구 쏟아져 나온다. 잠 못 자가며 설교 준비할 필요가 있느냐? 설교로 성도들이 바뀌더냐? 하나님과 그분의 나라 이야기를 전하는 특권을 가진 설교자들이 앉아서 설교 무용론을 떠벌인다. 더 나아가 영적인 변화나 영적 성숙 자체에 냉소를 품기도 한다. 생활과 인격이 비례하고, 성품에서 예수님의 향기가 나는 교회 원로를 찾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 회의론과 무신론의 신앙을 품은 채 기도회를 인도하려고 하니, 얼마나 괴로운 일이었겠는가. 확신에 차고 넘치는 열정을 가져도 모자랄 판에, 복음의 능력을 삶으로 살아내지 못하고, 하나님의 임재를 삶으로 보여주지 못하는 목회자가 과연 성도에게 무슨 변화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책을 내려놓고 예배당으로 다시 가 앉아 회개했다. 처음 예수님을 내 마음에 모셔드리기로 결단한 청소년 시절 어느 날보다 더 절절하게 회개했다. 그리고 물었다. “주님,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당신의 임재 안에 날마다 머물며, 바람 같이 오시는 당신의 영의 인도하심을 따라 목회할 방법이 있을까요? 방법이 있다면 그러고 싶습니다.” 이때로부터 달라스 윌라드의 저작을 읽기 시작했다. 그냥 읽은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몸으로 따라가며 읽었다. 이 시대 목회자들을 니고데모라 진단했던 달라스 윌라드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것들을 알지 못하느냐?” “너는 목사로서 이러한 것들을 알지 못하느냐?” 가슴을 뒤흔드는 소리로 들었다. 마침 그 무렵, 나를 위한 것인 양, 달라스 윌라드(게리 W. , 복있는사람) 전기가 출간되었고, 이 책을 시작으로 내게는 새로운 목회 수업이 시작되었다. 이 책을 그냥 눈으로 읽지 않았다. 달라스 윌라드의 일생을 마음으로 몸으로 함께 따랐다. 컴퓨터로 구글 지도를 띄어놓고서는 지명이 나오는 대로 죄다 찾아보았다. 그의 일생 동선을 하나도 빠짐없이 추적해보았다. 그의 신앙과 지성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그의 영성이 누구와의 만남으로 깊어지게 되었는지 확인해 보았다. 그리고 현격한 수준 차이는 있으나 나와 결이 비슷하여 여러 번 동질감을 느끼게 된 인생의 스승을 만난 것 같은 환희가 찾아왔다.

달라스 윌라드는 2살 때 어머니를 여의었고, 얼마 후 아버지는 새장가를 갔다. 어려서 이집 저집으로 옮겨 다녔다. 폴 투르니에는 부모로부터 사랑과 돌봄을 받지 못한 고아가 그 상실을 어떤 분야의 창조성으로 승화시키는 일에 대해 말한 바 있는데, 달라스 윌라드가 그런 경우였다. 그는 남다른 독서광이 됐다. 미국 중부 보수 침례교 부흥주의에 심취하여 이른 나이에 목사가 되어 역량을 발휘했다. 그러나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대학에 들어가 그의 지성과 영성은 깊어지고 넓어졌다. 하나님 나라 신학에 눈을 떴고, 그리스도교의 영성사에 연결되었다. 무엇보다도 그는 앎과 삶, 지성과 영성, 신앙과 인격의 통합을 추구하는 이였다. 그는 철학자이자 신학자였으며 공부하는 학자이자 기도하는 신앙인이었다. 또한 학생과 목회자들의 변화와 성장을 돕는 진정한 선생이었다.

달라스 윌라드의 가까운 동역자였던 리처드 포스터는 운이 좋다면 우리는 평생에 한 번 번쩍이는 인간 초신성의 존재를 만날 수 있다고 하며, 자신에게는 달라스 윌라드가 그런 초신성이었다고 밝혔다. 그를 가까이에서 본 적이 없어 그런 표현이 낯설긴 하나, 분명히 그의 전기를 몸으로 마음으로 읽으며 느낀 내 감정도 비슷한 것이다. 전기를 읽으며 그의 평생을 따라다니는 내내 마음이 뜨거워졌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가 실제로 내 마음에 실재하는 순간이 있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도제가 되어 변화되고 성화 되어가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확신하게 됐다. 이후 달라스 윌라드를 내 마음의 목회 멘토, 우리 교회 담임목사님으로 모시기로 마음먹었다. 달라스 윌라드는 나의 담임목사님이다. 매일 아침 그와 만나 목회 수업을 듣는 것이 출근 후 하루 업무의 시작이 됐다.



달라스 윌라드에게 배우다

2년 가까이 거의 매일 달라스 윌라드의 글을 읽었다. “너는 목사로서 이러한 것들을 알지 못하느냐?”는 질문을 잊지 않았다. 지금 여기 임한 하나님 나라를 삶으로, 체험적으로 알 때까지 읽고 묻기를 계속했다. 어느 금요기도회를 인도하던 날에 성도들 앞에서 고백했다. ‘하나님 나라를 내 삶에 가져와 그 나라의 능력과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충만하게 누리고, 그 나라를 여러분에게 보여드리지 못해서 죄송하다, 부끄럽다라고 했다. 변화되고 싶었다. 지긋지긋한 회의와 무기력의 다람쥐 쳇바퀴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영적인 변화 없이 종교적 행사와 프로그램돌리는 목회가 아니라, 복음의 능력으로 변화시키는 목회를 하고 싶었다. 그러려면 나부터 변해야 했다. 내 안에 하나님 나라가 실재해야 했다. 실재하는 하나님 나라의 위력을 내가 먼저 체험해야 했고, 그렇게 체험을 통해 얻은 앎이 설교와 기도의 원천이 되어야 했다.



훈련받는 목사, 수련하는 목사

달라스 윌라드의 책에서 내가 가장 먼저 주목한 것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자세이다. 달라스는 영성 훈련(은성)에서 훈련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훈련은 오해를 많이 사는 단어다. 행위 구원을 연상시키는 율법적 단어라고 폄훼되기도 한다. 은혜를 받으면 행위가 저절로 따라오기 때문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경건 훈련에 힘을 써 본 어떤 사람들은 지쳐서 말하기도 한다. 마치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를 거꾸로 타고 올라가는 것처럼 아무리 반복 훈련해도 제자리라는 것이다. 그러다 지쳐 잠시라도 걷기를 그만두면 순식간에 후퇴한다. 어쩌면 성도들은 반복되는 고된 훈련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살다가 교회에 와서 만큼은 그냥 은혜 안에서 편히 쉬고 싶은지도 모른다. 교회에 와서까지 훈련받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그러나 달라스의 말처럼 훈련은 은혜의 반대 개념이 아니다. 구원은 은혜로 받되, 훈련은 변화와 성장을 위해 필요하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11장에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고 초청하셨다. 그때 예수님은 자신에게 오는 자들의 모든 짐을 대신 짊어줄 테니 너희들은 그저 내 안에서 쉬기만 하라고 하지 않으셨다.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고 하셨다. 예수님을 따라가는 제자의 삶이란 그분이 주시는 멍에를 메는 것에서 시작한다. , 우리는 신뢰해야 한다. 예수께서는 당신이 주시는 멍에는 분명 쉽다고 하셨다.

 

코로나 기간, 모든 모임이 셧다운되었을 때, 네이버 밴드에 말씀 묵상 방을 개설했다. 그것 외에 달리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매일 정해진 본문을 읽고 묵상하고 기도한 것을 올렸다. 사계절이 지나고 한 해 두 해 지나 만 4년하고도 절반이 지났다. 말씀 묵상 방에는 단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말씀을 올린다. 성도들도 하나둘 참여하기 시작하더니, 이젠 성도의 절반이 참여한다. 휴가를 갈 때는 성실하게 참여하는 성도 몇 사람에게 맡긴다. 말씀의 등불 지기가 되어 불을 밝히게 했다. 4년 반을 하루도 쉬지 않고 공동체가 말씀 묵상 나눔을 함께 했다는 사실이 가져다준 결과에 나는 날마다 놀란다. 묵상과 나눔의 질이 나날이 달라진 것이다. 4년 반 동안 매일 나눔을 하는 성도의 글에서 변화가 감지된다. 평생 고착된 자신의 왜곡된 신앙관이 말씀에 비추어 교정된다. 말씀 해석을 통해 자신의 지식을 뽐내던 이가 자신의 교만을 고백한다. 요약만 하던 이가 자신의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는말씀의 위력 앞에 회개한다. 공동체가 함께 훈련하면 반드시 변화가 일어난다는 사실이 기쁘기 그지없다.

달라스 윌라드는 매일 밤, 잠들기 직전에 시편 23편을 암송한다.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부족함이 없는 삶을 살아낸 영적 거장답다. 나도 4년째, 이 훈련을 한다. 잠드는 순간의 내 영혼의 상태가 밤 중 내 마음을 지배하고 다음 날 맞이하는 새벽을 질적으로 바꿀 수 있다는 희망 때문이다. 또한 잠드는 것은 죽는 것의 연습이므로 시편 23편의 이미지 안에서 날마다 잠드는 것은 영원한 생명으로 들어가기 위한 최고의 방법일 수밖에 없다. 하나님께서 나의 목자라 하시니, 무슨 부족함이 있을 수 있겠는가. 부족하게 느껴진 하루일지라도 주님께서 나의 목자라는 고백 안에서 모든 것이 은혜의 관점으로 뒤바뀐다. 이젠 참 희한한 일이 됐다. 매일 밤 시편 23편을 암송하는 것보다 하지 않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이 되어가고 있다.



기도시키는 목사가 아니라 기도 하는 목사

달라스 윌라드 목사님과 매일 목회 대화를 나누며 깨닫고 변화된 또 하나는 기도 생활의 즐거움이다. 달라스는 신앙적 확신을 명료하게 인식하고 설명하기 위해 철학을 전공했다. 그는 독일 철학자 후설의 전기 현상학과 형이상학적 실재론을 통해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그분 나라가 우리 삶에 실재한다고 확신했다. 또한 인식 주체는 인식 대상인 객체와 직접적 접촉이 가능하다는 인식론적 실재론을 바탕으로, 측정 불가능한 하나님과 그분의 나라를 우리의 인식을 통해 체험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 나라를 향한 갈망을 가지고, 정기적인 훈련을 꾸준히 반복하면 그리스도인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 안에서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저서 하나님의 음성(IVP)은 우리가 그분의 음성을 들으며 그분의 인도함을 따라 살아가는 삶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분이다. 당연히 우리를 향해 말씀하시기에 우리는 들을 수 있다. 물론 그분의 음성은 우리 인간이 내는 음성과 다르기에, 세심한 분별이 필요하다. 나는 이 지점에서 내 영혼이 왜 불확실성과 혼미함 속에 있었는지를 깨달았다. 내 안에 깨달음으로 찾아오는 그분의 음성을 듣는 일에 매우 서툴렀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요청만 할 뿐, 그분의 뜻을 세심하게 감지하고 그분의 인도하심을 확신하며, 그분과의 사귐 속에서 풍성한 생명을 누리며 사는 법을 잘 몰랐던 것이다. 이렇게 영적으로 빈곤한 채 어떻게 그리스도인으로 살아왔는지가 기이한 일이었다.

 

달라스 윌라드를 읽는 동안 상당히 느긋해졌다. 내가 해야 할 일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종종 짊어지는 걱정과 두려움, 그리고 불안에 사로잡히지 않게 되었다. 하나님께 내 사정을 아뢰고 결과를 맡겨드리며, 그분이 인도하실 것을 신뢰할 때 정말 하나님께서 기이한 방식으로 공급해 주셨다. 금요일 오후에 더는 두려움에 사로잡히지 않게 되었다. 두려움이 오면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로 방향을 돌릴 신호로 알아들었기에 도리어 그분의 마음으로 들어가는 문이 되었다. 성경을 묵상하다 내 한계를 절감할 때면 책을 덮고 주님께 지혜를 구한다. 혼자 끝까지 해결하려 끙끙대지 않고, 소소한 일상의 일들을 한다. 천천히 호흡을 인식하며 나의 현존에 머문다. 산책하고, 필요한 전화를 돌리며, 행정적인 일을 담담히 처리한다. 그렇게 하다 보면 얼마 후 내 의식 속에 특유의 무게와 정신과 내용을 지닌 개념이나 생각이 떠오른다.’(하나님의 음성, 338p) 대개 그것들은 하나님의 음성과 연결되고, 내 안에 깨달음이 되어 신선한 아이디어가 되거나 지혜가 된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존재에서 흘러나오는 평화와 기쁨이 내 영혼을 충만하게 만든다. 내가 달라스로부터 배운 영적 습관, 일상의 기도이다.



가르치는 설교, 열어 보여주는 설교

달라스 윌라드 목사님의 책을 탐독하던 중에 나는 설교가 달라졌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설교에 힘이 느껴지고, 뭔가 사람이 달리진 것 같다는 피드백이었다. 무엇이 나의 설교, 나라는 사람을 변화시킨 것일까? 하나님의 모략(복있는사람)은 달라스 윌라드의 입문서다. 그는 마태복음에 나타난 하나님 나라의 실재성을 다룬다. 그의 해석은 매우 독특하다. 전형적인 신학과 해석의 기법을 넘어선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가 어떻게 우리 사이에 실재하는지를 논하며, 산상수훈을 통해 어떤 가시적 모습으로 우리에게 나타나는지 보여준다. 수많은 산상수훈 해설서를 읽어봤지만, 달라스 윌라드처럼 마음을 뜨겁게 하는 글을 읽어 본 적이 없다. 그의 해석을 따라가다 보면 성경 본문 사이사이에 있었던 하나님 나라가 내 안팎에 내려앉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그것은 분명 그 자신이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살면서 그 나라를 체험했고, 실재하는 그 나라를 우리 삶에서 경험할 수 있다는 확신 속에서 말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해설하는 사람이 아니다. 하나님 나라를 열어 보여주는 사람이다. 나도 그러고 싶다. 해설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 나라를 경험하여 가져와 보여주는 설교자가 되고 싶다.

 

내 마음의 혁신, 내 인생의 책 한 권

달라스 윌라드의 책들은 사실 어렵다. 그의 책들을 혼자 끝까지 정독한 사람을 거의 만나 본 적이 없다. 동료 목회자들과 마음의 혁신(복있는사람) 읽기 모임을 진행했다. 연이어 평신도 포함 그룹과도 다시 읽었다. 이 책은 새로운 스타일의 인간론이다. 인간을 구성하는 각 부분을 순서대로 다룬 이 책에는 돈 주고 살 수 없는 영성의 보화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 무인도에 가지고 갈 책 10권을 꼽으라 한다면, 이 책은 상위 순위다. 여러 번 읽는 동안 나는 내가 영혼(soul)의 존재라는 것을 명료하게 깨달았다. 예수 믿어 죄 사함을 받고, 죽어 천국 갈 때 물질 아닌 어떤 부분으로서의 나 자신인 영혼이라는 개념은, 작아도 너무 작다. ‘주어진 모든 순간 내 삶을 움직이는 것은 내 영혼이다.’(마음의 혁신, 345p) 내가 영혼을 가진 존재이기에, 생명의 시냇물이 내 의식과 마음 사이를 흐르며 생기를 불러일으키고, 삶을 의미와 생명으로 꽃피우게 한다. 영혼을 잃으면 모두를 잃게 된다. 모두를 얻은들 영혼을 잃으면 아무 유익이 없다. 달라스 윌라드를 만난 그 금요일 밤, 하마터면 나는 영혼을 잃을 뻔했다. 영혼이 소생되면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에 관한 이 모든 것들이 우리 삶 주변에 반짝이며 넘실대듯 존재하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