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바람

방금 나를 지나간 그 바람은 어떤 바람 됐을까

세미한 소리를 듣다

내 인생의 나우웬

신의피리 2009. 10. 1. 11:06

삶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 좀 더 내실있게 살고 싶어서, 성찰적 글쓰기, 즉 블로그를 다시 시작하기로 작정했다. 결정하고 나니 더욱 생각의 고삐를 단단히 잡게 된다. 잘 한 일이다.

아내, 그리고 쥐순희와 챙, 굥화, 뮨진짱의

댓글과 응원도 한몫했다. 그나저나 뭘 쓸까? ㅋ

내 블로그의 타이틀은 

"The Wounded Healer"

다. 헨리 나우웬이 내가 태어난 해인 1972년에 쓴 책 제목이며, 그의 삶과 사역과 사상을 대표하는 말이기도 하다. 나는 이 문구를 접하는 순간, 필이 팍 꽂혔다. 동시에 나우웬의 사진에서 진리의 세계를 힐끗 보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그래서 내 블로그의 타이틀도, 사진도 다 나우웬의 것이 되고 말았다. 내가 왜 나우웬의 글을 좋아하게 되었을까?

나는 객관적 세계를 관찰하기 보다는 세계가 내게 주는 의미를 탐구하는 게 더 자연스럽다. 내 밖에서 벌어지는 '팩트'를 다루기보다는 내 안에서 일어나는 주관적 "의미"를 분석하길 좋아한다. 왜 그럴까? 난 아직도 그 이유를 모르겠다. 그냥 그렇게 타고났다고 밖에... 그런데, 나우웬의 글들은 대개 나우웬 자신의 경험, 그것도 그의 내면에서 벌어지는 사건과 의미를 대상으로 삼아 글을 쓴다. 그는 로저스의 주장처럼,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보편적인 것"

이라는 신념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고백하듯이 이야기해준다. 그런데 그의 그 실패감, 버림받음, 낙심, 불안, 고독, 상처....가 이상하게도 내게 희망을 준 것이다. 내 빈 속을 '생명'으로 그득하게 배부르게 해준 것이다. 나우웬은 이 진리를 진작 알고 그걸 겨냥해서 글을 쓴 것일까?

"고통을 통해 얻은 상처가 다른 사람을 치유하는 원천으로 이용되는 방법을 사역자가 깊이 이해하지 못한다면, 진정한 사역이 이루어질 수 없을 것입니다." <상처입은 치유자>, 머리말에서..


내 안에 지독한 불안감들, 꼬인 감정들, 우유부단함들...지워지지 않는 10-20대의 암울했던 내면과 거기서 들려오는 부정적 소리들이 나로 하여금 사역자의 길을 주저하게 만들었다. 아주 오랫동안 발목을 잡았다. 그러다가 나우웬을 만나면서 나는 서서히 밝고 건강해지기 시작했다. 나우웬의 이야기를 즐겨 들었고, 한 때는 그와 대화하지 않고서는 잠을 자지 않을 정도였다. 어떤 날은 새벽기도 시간에 기도할 힘도 없고 기도의 언어도 잊어버리고, 한숨과 신음만 반복할 때, 불현듯 나우웬 신부님께 기도를 드린 적이 있었다.(설마 이런 표현 때문에 이단 시비가 일지는 않겠지. ㅋ) 아니, 기도를 했다기 보다는, 역사 속의 인물과 대화를 했다고 해야겠다. ^^

"신부님, 당신도 저처럼 지쳐서 무기력해서 기도할 수 없었을 때가 있었죠? 매일 한 시간씩은 규칙적으로 기도하시면서, 이럴 때 어떻게 그 시간들을 보내셨나요? 당신이 발견한 진리를 제게도 조금 나눠 줄 수 없나요? 저도 기도는 너무 하고 싶고, 깊이 기도의 세계에 빠지고 싶고, 기도 속에서 하나님을 체험하고 싶고, 대화하고 싶은데, 아무리 해도 기도는 어렵고, 기도의 언어는 진전이 없어요. 의심의 구름이 저를 덮고, 육신의 약함이 저를 유혹하죠. 어떻게 해야 하죠? 주님은 멀게 느껴지고 당신은 가깝게 느껴져서 그래요. 당신을 따라, 주님께 더 가까이 가고 싶어요."


한동안 아내는 나우웬과 대화하지 않고 지냈다. 그러다가 애니어그램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그 길 어디선가 잊었던 선생을 다시 만난 듯싶다. 그러더니 요샌 나보다 더 나우웬과 대화를 많이 한다. 심지어 카페를 할 꿈을 꾸면서 이름을 Cafe Nouwen이라 짓겠다 한다. 카페하겠다는 말에 시큰둥 하며 반응했는데, 나우웬이라고 이름을 짓겠다고 하는 순간 나도

"어쩌면 저 꿈이 현실이 될 지도 몰라"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다시 성찰적 글쓰기를 시작하면서 나우웬의 책을 하나 꺼내들었다. 매일성경 플러스 매일나우웬(^^;;)을 할까 한다. 내 영성의 스승이니, 그분과 참된 영성에 대해, 참된 인생에 대해, 바른 사역에 대해, 기도, 고독, 공동체, 세상...에 대해 자주 대화를 할 참이다. 그와의 깊이있고 의미있는 대화를 기대하며 '방'을 하나 마련해 놓으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