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ent is Present

방금 나를 지나간 그 바람은 어떤 바람 됐을까

기고/TNT 107

용사 모집

2009년! 바야흐로 최후 결전의 날이 오고야 마는가! 지난 겨울의 전투는 이미 승리가 예고된 싸움에 불과했다. 전장에 나서기 전에 우리 아군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 듯했다. 이들의 함성소리에 적은 이미 뒤꽁무니를 뺄 태세를 갖췄고, 우리는 춤추며 노래하며 용문 골짜기로 진군했을 뿐이다. 이렇게 싸움이 쉽기만 하다면야... 그렇게 모든 전쟁이 끝이 난 듯, 잠시 평화의 노래 소리가 흐르는 듯 했으나, 그 새 적은 모든 병력을 끌어 모았고, 스파이를 보내 우리를 교란에 빠트리기 위해 장수 몇몇을 공략하기 시작했다. 천하를 호령하던 우리 장수들은 적의 자폭 테러 때문에 심한 손실을 감수해야 했다. 여기저기 테러를 자행하던 적들의 교묘하고도 끔찍한 도발들 때문에 우리가 누리던 평화에도 서서히 암운이 드리워졌고,..

기고/TNT 2015.05.28

최한솔 형제를 생각하며

한솔 형제를 처음 본 것은 그가 고등학교 2학년 때입니다. 10년도 더 전이지요. 조용하고 두문불출 형으로 기억됩니다.(^^) 그 때나 지금이나 왕성한 입활량(=믿음)으로 공동체를 이끌던 최항석 형제와는 달리, 한솔 형제는 그 때에 비해 지금은 완전 다른 사람이 되었지요. 공동체에 꼭 필요한 좋은 선배로 성장하여 "TWO CHOI" 시대의 한 축을 맡고 있는 것은 우리 모두의 자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그가 뜻하지 않은 병을 얻었습니다. 이유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 소식이 전해지자 교회는 함께 울었지요. 그의 고통의 만분의 일도 공유할 수 없는 우리지만, 그동안 치유의 소망의 끈을 붙들고 기도하고 또 기도하였습니다. 머지않아 완치의 소식이 있으리라 믿고, 그가 이 고통의 과정을 지금까지 잘 견뎌내며 오..

기고/TNT 2015.05.28

제 사랑엔 차별이 있습니다.

제가 청년 공동체에서 누구를 가장 사랑할까요? 당신의 상상이 틀렸습니다. 전 모든 사람을 다 똑같이 사랑합니다.(^^) 에이~ 거짓말쟁이~? 사실 저는 이 글을 쓰기 전까지 모두를 “똑같이” 사랑해야겠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여러 상황에서 각각의 경우에 따라 최.선.을. 다해왔을 뿐이랍니다. 이건 믿어주셔야 합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사랑을 더 많이 쏟아 부은 사람들이 있긴 있습니다. 더 사랑해서가 아니란 걸 이해하시죠? 더 많은 사랑이 필요해서 일 뿐이고, 장기적으로 저는 여러분 각각에 부어질 사랑의 각 총량에는 균등의 원리를 적용하려고 노력할 생각입니다. 암튼, 그동안 제가 더 자주, 더 강도 높게, ‘애정’(?)을 표시한 사람들은 있습니다. 누구일까요? 당신의 상상이 맞습니다. 전 ..

기고/TNT 2015.05.28

사랑하라, 그리고 마음대로 하라

“그대는 단 한 가지 짤막한 계명을 받았다. 사랑하라, 그리고 마음대로 하라(Dilige, et quod vis fac). 입을 다물어도 사랑으로 하고 말을 해도 사랑으로 하라. 나무라도 사랑으로 나무라고 용서해도 사랑으로 용서하라. 마음 속 깊이 사랑의 뿌리를 내려라. 그 뿌리에선 오직 선만이 싹트리라.” - 성 아우구스티누스, 에서 - 어디 이뿐인가요! 하늘을 두루마기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다 기록할 수 없는 하나님의 드넓은 사랑을 날마다 누리십시오. 그 사랑의 단비로 그대들의 영혼이 날마다 젖어있게 하십시오. 그리고 비록 남루하고 비천하기 그지없는 우리의 비루한 영혼일지라도, 가진 것 탁탁 털어 하나님께 그대들의 사랑을 드리고 또 드리십시오. 인간들과의 사랑을 목말라하기 이전에 하나님과 사랑에..

기고/TNT 2015.05.28

“나는 아직도 목마르다”

김지하 시인의 “타는 목마름으로”란 시가 있습니다. 한동안 잊고 있었는데, 요즘 들어 이 시로 만든 노래를 부르고픈 ‘타는 목마름’이 생기는군요. 운동권에 대한 경험은 없지만, 자유에 대한 목마름은 누구에게나 본능적인가 봅니다. 지난 2002년 한일 월드컵 16강전 진출 후 이탈리아 전을 앞두고 한국의 히딩크 감독은 인터뷰 도중 “나는 아직도 목마르다”고 했지요. 수 십 년간 월드컵 본선진출을 기다렸던 우리 국민들은 16강에 진출한 것만으로도 덩실덩실 춤을 추며 기뻐했는데, 히딩크는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우리 예수님도 십자가 위에서 모진 고통을 감내하며 그 수치와 모멸감 속에서 “내가 목마르다” 하셨습니다. 시인이 민주주의를 그토록 목말라 한 것과, 축구 감독이 우승을 그토록 목말라했던 ..

기고/TNT 2015.05.28

사울, 아나니아를 만나다

간증을 듣다보면 공통점이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가장 감동적인 것 중에 하나는 허무한 인생을 살아온 못된 자신을 위해 오래 기다려주고, 기도하면서 복음을 소개해준, 교회로 안내해준 그 ‘단 한 사람’에 대한 감사를 전할 때입니다. 그런 감사를 받는 이가 누리는 행복은 얼마나 큰 지!(못 받아본 사람은 말을 하지 마세요. ^^) 사도행전을 읽다보면 사도 바울이 교회를 핍박하다가 부활한 예수님을 만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후에 바울은 이 사건을 두 번에 걸쳐 사람들 앞에서 간증을 합니다. 자신이 어떻게 예수님을 믿게 되었는지, 어떻게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되었는지, 자신의 삶이 얼마나 행복한 지를 적대자들 앞에서 간증하게 됩니다. 그 때 바울의 간증에 꼭 등장하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바울이 눈..

기고/TNT 2015.05.28

이제는 꽃이 필 때

교육관 길 건너편 담장 위로 개나리가 만개했습니다. 매일 아침 출근할 때마다 노란 개나리가 시야에 들어오는 순간 심장 박동이 더 강렬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노란 작은 꽃들이 ‘함께’ 모여 자신만의 색깔과 향기를 뽐내듯이 풍길 때마다, 저는 일순간 ‘호모쑤마돈’을 느낀답니다.(^^) 저는 이 맘 때쯤이면 늘 생각나는 노래가 있습니다.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 개나리를 비롯해 벚꽃, 목련, 진달래, 라일락, 철쭉 등이 연이어서 피어나는 것을 상상하는 것은 이루 말 할 수 없는 행복입니다. 마치 완벽한 하모니를 이루는 교향악이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의 지휘 하에 연주된다고나 할까요? 일 년에 딱 한 번만 연주되는 이 장엄한 교향악의 프렐류드가 시작된 요즘, 저는 우리 현승이가 파워레인저 방송을..

기고/TNT 2015.05.28

편집부장의 리더십

요즘 리더십은 강한 카리스마를 가진 리더십보다는 서번트 리더십이 대세다. 위에서 군림하면서 진두지휘하는 리더십의 시대는 지나갔다. 아래로 내려가 함께 참여하고, 자신의 여림을 열어 보여주고, 자신의 상처를 통해 타인을 치유하는 여림의 리더십이야말로 팔로우들의 마음을 진정으로 움직이게 하는 힘이라 할 수 있다. 사실 서번트 리더십의 원형은 예수님이다. 세상도 이젠 안다. 그들이 차용한 서번트 리더십, 그건 새로운 것도 아니고, 본래 리더십이란 섬김이어야 함이 마땅하다. 요새 편집부장의 리더십에 매료되는 사람들이 점점 느는 모양이다. 아예 드러내놓고 그(녀)의 리더십을 열광하는 추종자(?)들도 여럿 되는 걸로 알고 있다. (나도 그중 하나다. ^^) 왜 우리는 편집부장의 리더십에 주목하게 되는 것일까? 가냘..

기고/TNT 2015.05.28

희한한 사람들

주일 2부 예배 시간(11시)이 되면 교회당 뒤 화평실에 젊은이들 몇 사람이 모입니다. 왜 모일까요? 예배는 아닙니다. 봉사도 아닙니다. 그저 맘에 맞는 사람들이 시간이 남아돌아 만나서 잡담이나 하려고 모였을까요? 가만 보아하니 직장인도 있고 학생도 있더군요. 집에서 늘어지게 잠을 자도 부족할 텐데, 친구들과 어울려 영화를 보거나 운동을 해도 괜찮을 텐데, 도대체 이들은 그 고귀한 시간에 왜 애써 모였을까요? 이들은 하나의 공통된 열망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 삶의 중심을 잡아줄 무언가를 기대하고 있고, 더 확실한 길, 더 선명한 진리, 더 뜨거운 생명을 발견하고 싶어 자신의 시간을 쪼개 모이는 것을 전혀 아까워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길, 진리, 생명, 그게 무엇일까요? 사람들은 자신을 멋..

기고/TNT 2015.05.28

TNT 공동체(Light and Salt Community)의 비전

저는 비전이라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아니, 사실은 매우 좋아하지만 스스로 그 단어를 많이 경계하고, 때론 일부러 조롱하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대개 내가 꿈꾸는 거룩한 비전 이면에는 야망이 들어붙어 있기 때문입니다. 비전 운운할수록 야망도 커져 결국엔 명목상으로는 하나님 영광을 외치지만, 결과적으로는 박수갈채에 집착하는 제 자신을 발견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비전이라는 말을 가급적 쓰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저 주어진 현재를 소박하게 사랑하면서 만족하는 것이 더 안전하다고 여기는 편이지요. 오랫동안 이 단어를 아껴왔는데, 요샌 하나님의 비전이 내 비전이 되게 해달라는 기도를 자주 하는 것 같습니다. 실의와 실패로 점철되는 이 시대 젊은이들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이 내 마음이 되게 해달라는 기도..

기고/TNT 2015.05.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