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28:23-29
23 너희는 귀를 기울여서, 나의 목소리를 들어라.
주의 깊게 내가 하는 말을 들어라.
24 씨를 뿌리려고 밭을 가는 농부가,
날마다 밭만 갈고 있겠느냐?
흙을 뒤집고 써레질만 하겠느냐?
25 밭을 고르고 나면, 소회향 씨를 뿌리거나
대회향 씨를 뿌리지 않겠느냐?
밀을 줄줄이 심고,
적당한 자리에 보리를 심지 않겠느냐?
밭 가장자리에는 귀리도 심지 않겠느냐?
26 농부에게 밭농사를 이렇게 짓도록 일러주시고
가르쳐 주신 분은, 바로 하나님이시다.
27 소회향을 도리깨로 쳐서 떨지 않는다.
대회향 위로는 수레바퀴를 굴리지 않는다.
소회향은 작대기로 가볍게 두드려서 떨고,
대회향도 막대기로 가볍게 두드려서 떤다.
28 사람이 곡식을 떨지만,
낟알이 바스러지도록 떨지는 않는다.
수레바퀴를 곡식 위에 굴릴 때에도,
말발굽이 그것을 으깨지는 않는다.
29 이것도 만군의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것이다.
주님의 모략은 기묘하며, 지혜는 끝없이 넓다.
이사야 선지자는 불 같은 심판의 메시지로 이스라엘과 유다를 때렸다가도, 다시 싸매어주기를 반복합니다. 지금 그들에게 닥친 위기와 환난의 성격을 가르쳐주기 위함입니다. 불신과 불순종이 이 모든 환난의 원인이었습니다. 수많은 나라들 간의 전쟁과 폭력 또한 하나님께서 기대한 창조질서를 깨뜨린 결과였습니다. 선지자는 백성들과 지도자들이 이 모든 일의 원인을 깨닫고 다시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다시 하나님과의 언약으로 되돌아오기를 기대했습니다.
이제 선지자는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를 향한 심판의 본 의미를 부연설명합니다. 그것은 마치 농부의 농사와 유사한 일입니다. 심판을 타작에 비유합니다.
지혜로운 농부들은 이런 농법으로 타작합니다.
“소회향을 도리깨로 쳐서 떨지 않는다.
대회향 위로는 수레바퀴를 굴리지 않는다.
소회향은 작대기로 가볍게 두드려서 떨고,
대회향도 막대기로 가볍게 두드려서 떤다.”(27)
타작의 목적은 곡식의 이삭을 떨어서 낟알을 거두는 것입니다. 작물마다 타작 방식이 다릅니다. 어떤 작물은 세게 떨어야 합니다. 어떤 작물은 약하게 떨어야 합니다. 어떤 작물은 도리깨로 쳐야 하고, 어떤 작물은 작대기로 두드려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낟알이 상하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앗시리아를 막대기 삼아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를 타작 합니다.. 그러나 남은 자들까지 다 날려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의 기가 막힌 지혜요, 어쩌면 우리를 원래의 자리로 되돌리기 위한 깊고 심오한 하나님의 모략입니다.
여기저기 펀치가 날아옵니다. 처음엔 날렵하게 이리저리 잘 피했는데, 한 대 두 대 맞다보니 정신을 못 차립니다.. 어디서 펀치가 날아오는지,, 왜 내게 날아오는지 잘 헤아리지도 못하고, 그저 맞는 게 억울하기만 합니다. 남과 비교하면 더 억울합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 비춰 보니, 낟알을 얻기 위한 농부 하나님의 타작일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때론 약하게 막대기로 두드리고, 때론 도리깨로 세게 내리치십니다. 내 몸에 덕지덕지 붙은 겉 껍데기들을 다 벗으라는 뜻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가볍고 즐겁게 살기엔 너무 불필요한 것들을 잔뜩 짊어지고 있기에 다 내려놓으라는 뜻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그 복음과 생명을 위한 것이 아닌, 내 자신의 안락한 삶을 위한 수단들은 다 벗어던지라는 뜻입니다. 주님께서 그것들을 거둬내시고자 타작을 하십니다.
주님, 주님의 모략은 기묘하고, 주님의 지혜는 끝없이 넓습니다. 제게 닥친 타격들이 제 중심을 넘어뜨릴 수 없습니다. 제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주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고, 주님의 목소리를 청종하여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이요, 열매를 맺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