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ent is Present

방금 나를 지나간 그 바람은 어떤 바람 됐을까

책에서 만난 문장

<이처럼 사소한 것들>, 클레어 키건

신의피리 2025. 1. 29. 11:30

 

작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선행을 비범한 시선으로 묘사하여 위대하게 만든다. 그의 얇은 중단편 소설 두 권을 연달아 읽었는데, 왠지 매우 감동적인 설교를 들은 것 같은 느낌이다. 내 안에 선한 바람을 일으킨다. 나도 선한 사람이 될 수 있겠다 싶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에는 두 종류의 생각이 충돌한다. 평범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평범성을 다소 이기적으로, 그러나 소시민적으로 지키려는 생각이다. 적당히 타인의 불행에 무관심하는 태도다. 

 

주인공 펄롱의 아내 아일린의 생각이 그렇다. 펄롱이 수녀원에서 본 여자 아이들의 불행한 형편에 대해서 넌지시 이야기하자, 아일린은 왠지 모를 방어적 태도로 남편을 제지하려 한다. 

"이런 생각 해봤자 무슨 소용이야?" 아일린이 말했다. 
"생각할수록 울적해지기만 한다고." 아일린은 초조한 듯 잠옷의 자개 단추를 만지작거렸다. "사람이 살아가려면 모른척해야 하는 일도 있는 거야. 그래야 계속 살지."(55-56p)

 

케호 식당의 미시즈 케호도 아일린과 비슷한 입장으로 펄롱을 막아선다. 미시즈 케호도 수녀원에서의 어떤 작은 소동을 전해 들었다. 그러나 그녀는 더 큰 암덩어리가 보기 싫어 서둘러 봉합하려는 태도로 펄롱에게 말한다.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지만, 거기 일에 관해 말할 때는 조심하는 편이 좋다는 거 알지? 적을 가까이 두라고들 하지, 사나운 개를 곁에 두면 순한 개가 물지 않는다고. 잘 알겠지만."(105p)

 

그러나 주인공 펄롱은 괴로워한다. 수녀원에서 한 여자 아이가 당한 일, 그 아이의 도움을 외면한 일, 수녀원 내에서 벌어지는 뭔가 불길한 기운들. 그것들을 더 깊이 알아가게 되면 뭔가 자신의 삶에 평범한 행복을 깨뜨리는 균열이 일어날 것 같은 두려움 사이에서 그는 미사시간 영성체를 받지 못한다. 

한참 뒤 위층 커튼이 움직이더니 어린아이가 밖을 내다 봤다. 펄롱은 억지로 자동차 키에 손을 뻗어 시동을 걸었다. 다시 길로 나와 펄롱은 새로 생긴 걱정은 밀어놓고 수녀원에서 본 아이를 생각했다. 펄롱을 괴롭힌 것은 아이가 석탄 광에 갇혀 있었다는 것도, 수녀원장의 태도도 아니었다. 펄롱이 거기에 있는 동안 그 아이가 받은 취급을 보고만 있었고 그애의 아기에 관해 묻지도 않았고 -그 아이가 부탁한 단 한 가지 일인데 -수녀원장이 준 돈을 받았고 텅 빈 식탁에 앉은 아이를 작은 카디건 아래에서 젖이 새서 블라우스에 얼룩이 지는 채로 내버려두고 나와 위선자처럼 미사를 보러 갔다는 사실이었다.(99p)

 

지극히 평범한 소인으로 사는 주인공 펄롱은 갈등한다. 아내 아일린과 미시즈 케호의 말이 일리는 있지만 도저히 자신의 양심을 잠재우지 못한다. 그는 실은 사생아였고, 아버지가 누군지 모른 채 엄마가 어렸을 때 사고로 죽었다. 그러나 펄롱은 매우 선한 개신교 여성 미시즈 윌슨 집안에서 선한 돌봄 속에서 잘 자랐다. 펄롱은 충분히 불행하다고 여길 수 있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비극적인 삶의 상황에 놓인 자신에게 내민 따뜻한 손길들을 기억한다. 그리고 펄롱은 크리스마스 이브날 저녁, 뭔가에 홀린 듯 수녀원으로 걸어 올라가, 광에 갇혀 있는 여자 아이를 데리고 나온다. 그 아이를 데리고 내로 강 다리를 건너고 시내를 지나 집으로 걷는다. 여자 아이와 함께 걸으며 펄롱은 거대한 두려움과 거대한 환희를 동시에 갖는다.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 선한 손길을 기억하며 위대한 발걸음을 내딛는 순간이다. 

두 사람은 계속 걸었고 펄롱이 알거나 모르는 사람들을 더 마주쳤다. 문득 서로 돕지 않는다면 삶에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나날을, 수십 년을, 평생을 단 한번도 세상에 맞설 용기를 내보지 않고도 스스로를 기독교인이라고 부르고 거울 앞에서 자기 모습을 마주할 수 있나?(119p)

 

이 책에 왠지 모를 위로를 받았다. 아무 값어치도 없다고 여겼던 작은 선한 손길들, 그런 그 작은 선한 손길을 내밀기까지 괜한 간섭이라여 여기며 모른채 하고 싶었던 마음과 그럴 수 없어서 작은 손해를 감수하며 그들 편에 서려 했던 내 은밀한 결심들이 마치 보상을 받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 그 작은 선한 결정들과 행동은 결코 무의미하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걸 한결같은 마음으로 보아주시는 분이 있지 않은가. 

 


잠들기 전에 「맡겨진 소녀」를 만지작 거리다가 첫 페이지를 읽었다. 그러다가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었다. 밤새 잠을 설쳤다. 평범함의 위대함을 이렇게도 아름답고 슬프게 묘사할 수 있다니! 나도 설교를 이렇게 할 수 있으면 참 좋으련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