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수종이 한결 덜 갑갑하게 느껴지기 시작하면,
나의 정신은 비로소 나비처럼 나들이길에 나선다.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다.
시간 속으로, 혹은 공간을 넘나들며 날아다닐 수도 있다.
불의 나라를 방문하기도 하고,
미다스 왕의 황금 궁전을 거닐 수도 있다.
「잠수종과 나비」(장 도미니크 보비), 16p
40대 초반의 남자가 뇌졸증으로 쓰러졌다. 20여일이 지나고 깼으나 전신이 마비됐다. 정신은 온전한데 몸이 전혀 말을 듣지 않는다. 의사들은 이 증상을 '로크트 인 신드롬(locked-in syndrome, 감금증후군)이라고 불렀다. 그가 유일하게 움직일 수 있는 신체 부위는 왼쪽 눈을 깜빡이는 것 뿐이다.
프랑스의 패션잡지 엘르 지의 편집장이었던 장 도미니크 보비는 잘 나가던 삶에서 나락으로 떨어졌다. 언어치료사의 도움으로 그는 왼쪽 눈을 깜빡이는 방식으로 의사소통하는 법을 배웠다. 사용빈도에 따라 순서가 재정리된 알파벳을 상대가 천천히 읽을 때, 원하는 알파벳에서 눈을 깜빡이는 방식으로 단어를 만들고 문장을 만들었다. 그런 방식으로 보비는 책을 써냈다. 손도 발도 움직이지 못하는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상상력과 기억력을 바탕으로 속으로 문장을 미리 만들고, 이어 왼쪽 눈을 깜빡여서 의사를 표현하는 것이다. 가고 싶은 곳에 갈 수도 없고, 인사하는 아이들을 곧장 안아줄 수도 없으며, 스스로 목욕도 할 수 없는 그가, 기어이 책을 써냈다는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깝다.
클로드가 인쇄체의 확실한 필체로 우리의 이야기를 써내려간 청색 겉장의 큼지막한 공책, 여분의 볼펜으로 가득 찬 학생용 필통, 가래를 뱉어야 할 경우에 대비해서 쌓아 놓은 휴지 뭉치, 커피를 마시러 가기 위해 클로드가 가끔씩 동전을 꺼내는 빨간 지갑, 지갑 가운데 지퍼가 열린 틈새로 호텔방 열쇠, 지하철 표 한 장, 4등분으로 접힌 100프랑의 지폐 한 장이 보인다. 마치 지구인들의 주거 형태와 운송 수단 및 상거래 수단을 연구 하기 위해, 외계인들이 가져갔다가 돌려준 물건 같은 느낌이 든다. 이 낯익은 풍경을 대하며, 나는 막막한 심정이 되어 생각에 잠긴다. 열쇠로 가득 찬 이 세상에 내 잠수종을 열어 줄 열쇠는 없는 것일까? 종점 없는 지하철 노선은 없을까? 나의 자유를 되찾아 줄 만큼 막강한 화폐는 없을까? 다른 곳에서 구해 보아야겠다. 나는 그곳으로 간다. (188p)
보비는 침상에 누워 자신이 마치 잠수종 안에 갇혀 있는 신세라 여겼다. 그는 그 속에서 나비가 될 날을 기다렸다. 그의 책 마지막 문장이다.
존 타이슨이라는 목사가 장 도미니크 보비 이야기에서 현대 교회의 증상을 읽어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왼쪽 눈을 깜빡이는 수준으로라도 의사소통을 해내야 한다. 할 수 있을까.
이 책은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잘 만든 것 같다. 짙은 여운이 꽤 오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