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탈, 아름답고 매혹적인 마을이다. 동화 속에 들어온 듯한 느낌이다. 알프스 산맥 한 끝자락에 자리한 에탈은 독일 바이에른에서 가장 큰 자연보호 구역인 암머가우 알프스 품 언저리에 자리한다. 웅장한 산을 배경 삼은 에탈 수도원(Kloster Ettal)은 두 팔을 벌려 모든 순례객들을 품는 듯한 폼으로 순례객들을 맞이한다. 지금까지 본 수도원과는 뭔가 분위기가 다르다. 그동안 줄곧 로마네스크-고딕 양식의 수도원을 방문했는데, 에탈 수도원은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졌다.
에탈 수도원 성당의 나무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성당 안으로 들어가는 두 번째 안쪽 문 왼쪽으로 죽은 이들을 기념하는 곳이 있다. 그곳에서 뜻밖의 이름을 발견한다. 내 젊은 날 영혼을 뜨겁게 만들어줬던 사람, '디트리히 본회퍼'다. 아니, 그 이름이 왜 이곳 베네딕토 소속 에탈 수도원에 있는 것일까. 그가 1940여 년 즈음 이곳을 방문하여 4개월 정도 머물렀단다. 이곳 수도사들이 본회퍼가 쓴 책을 읽었다고 하는데, 나중에 히틀러 암살작전이 실패하고 체포되어 사형당한 그를 기리기 위해 가톨릭 수도원에 개신교 목사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본회퍼가 쓴 '신도의 공동생활'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 중의 하나다. 나는 그 책을 젊었을 때 여러 번 읽었다. 처음 읽었을 때 내가 하나님의 꿈보다 내 꿈을 더 사랑했음을 깨닫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본회퍼는 수도원 내에 여전히 남아 있는 깊이 있는 영성을 개신교식으로 실천해보려고 했던 사람이다. 그가 이곳 에탈에 4개월 여 머물렀다. 그가 이 성당에 앉아서 기도했고, 이 성당 뜰을 걸었고, 이 성당에서 자신의 꿈이 깨지고 주님이 주시는 비전을 덧입었으리라.
내가 아내를 처음 교회에서 만나, 이성적인 감정을 처음 느끼게 된 것은 아내의 입에서 나온 '디트리히 본회퍼'라는 이름 때문이었다. 내 최애 신학자를 그녀도 알다니! 그 이름을 여기 에탈에서 이렇게 다시 만나다니!
아침 버스에 오르자, 단장님이 억지로 나를 가이드 옆자리, 인솔자 선탑자 자리에 앉혔다. 신부님이 부재하여 단장님이 대신 앉아 있던 자리였는데, 목사인 나라도 거기에 앉으라는 것이다. 그저 한 명의 순례단원이고 싶었는데, 억지로 십자가가 또 지어졌다. 가톨릭 순례단원들은 목자를 잃었다. 나와 내 아내는 그저 그들 주변부에 머문 객들에 불과했는데, 갑자기 양들의 선두에 서게 된 것이다. 본회퍼가 에탈 수도사들과 어울리며 기도했을 것을 생각하며, 나도 오늘 하루 그 임무를 받아들여 순명한다. 버스에서 개신교 목사가 가톨릭 신자들을 두고 기도했다. 아멘 소리가 낯설지만 은혜가 된다. 목이 멨다. 이렇게 가까운 일인데, 제도는 왜 이렇게 먼 것일까.
베네딕트보이에른 수도원(Kloster Benedikbenum)은 돈 보스코 살레시안 수도회다. 오래된 수도원 중 하나라 했지만, 안타깝게도 2023년도 태풍으로 인해 지붕 등 파괴된 곳이 많아 지금은 보수공사 중이다. 보수공사 중에는 볼 수 있는 게 제한되어 있다. 사진 찍기에도 적절치 않다. 멀리서 기대하는 마음으로 왔지만 보수공사로 인해 차단 된 곳이 많아 안타까운 마음으로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다. 그 순간 분홍색 정복을 입고, Sabine라는 이름의 안내원 이름표를 단 독일 할머니가 나타났다. 이미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 인솔자 신부님이 아파서 못 왔다는 것을 알고 있다. 원래 순례팀은 이곳에서 미사를 드릴 예정이었는데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 그냥 수도원 정원 뜰만 밟고 가려던 우리는 그분의 안내로 작은 박물관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우리 순례단 공동체도 하나의 교회로 세워져 가는 중에 발생한 사고로 인해 임시공사 중임을 여실히 드러냈다. 갑자기 투입된 가이드는 독일어가 서툴고, 예정에 없던 통역을 하게 되어 당황한다. 독일 할머니가 통역할 사람이 없음에도 영어로 열정적으로 사람들의 얼굴을 번갈아 보며 설명한다. 우리 중 그 누구도 알아듣는 사람이 없는 듯하다. 답답하고, 짜증 나고, 아쉽고 하는 순간이다. 나라도 좀 알아들으면 나설 텐데, 대강의 내용은 알겠지만 자신이 없다. 그때 순례팀원 중 한 분이 나서서 서툰 통역을 시도한다. 누군가에게는 꽤 힘든 시간이고, 누군가에게는 그나마 다행인 시간이지만, 우당탕탕 정신없는 순례가 이어진다. 예측 불가한 일들의 연속이다.
보수공사 중인 수도원과 우당탕당 진행중인 우리 순례단이 꽤 닮은 것 아닌가 싶다. 사람과 사람 여럿이 보이면 처음엔 어색해하다 서서히 서로를 향하여 선의와 친절이 이루어진다. 배려가 또 다른 배려를 낳는다. 그러나 모든 만남은 이렇게 아름답게만 마무리되지 않는다. 배려로 쌓아 올린 친절을 아랑곳하지 않고, 단단하게 형성된 개인의 특성이 누군가의 감정을 건드는 일이 생긴다. 말을 계속 붙이고 싶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최대한 말을 섞고 싶지 않은 사람도 생긴다. 말이 통하는 사람이 있고, 말과 말의 흐름을 단절시키는 사람도 있다. 그렇게 모든 종류의 공동체는 위기를 겪는다. 이런 종류의 위기는 어디에 가도 늘 발생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다음이다. 위기가 없는 게 아니고, 위기를 어떻게 극복하느냐다. 그런 상황이 이어질 때, 나는 어떤 사람인지 자각하고, 피스메이커 역할을 할 수 있는가를 헤아려보아야 한다. 사람의 인격과 성격의 모양을 이해는 하되 심판하기를 멈추고, 주님의 마음으로 화해를 도모하는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 화평케 하는 자는 입은 무겁다. 대신 귀는 활짝 열려 있고, 몸은 낮은 자세로 재빠르다.
비스 성당(Wieskirche)으로 이동한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성당이란다. 바로크 양식과 초기 로코코 양식이 혼합된 성당이라 그런지 화려하기 그지없다. 비스 성당은 1738년 채찍을 맞는 예수의 조각상이 눈물을 흘리는 기적이 일어나자, 그 조각상을 보려는 순례객들이 몰려들어 생긴 성당이라 한다. 성당 제대 뒤쪽에 이 조각상이 자리하고 있다. 예수께서는 십자가 처형 당하기 직전, 로마 병사들에 의해 채찍을 맞았다. 아마도 39대를 맞았을 것이다. 로마 병사들이 사용하는 채찍은 끝에 쇠갈고리나 날카로운 뼛조각 같은 것을 달아 놓아서 맞으면 살점이 뜯겨나가게 되어 있다. 채찍을 맞고 죽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얼마나 끔찍한 고문인가.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다'
그런데 참으로 야속하다. 잠잠한 마음으로 잘 묵상하고 나왔는데, 성당의 출구로 나오는 순간 눈앞에 펼쳐진 세상은 너무 아름다운 것이다. 저 멀리 알프스 설산이 보인다. 어디선가 알프스 소녀 하이디가 뛰어 올 것 만 같다. 멀리서 말과 소의 풀 뜯어먹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채찍 맞은 예수님은 온 데 간다 사라지고 없고, 그저 그림 같은 풍경 속으로 뛰어들어간다. 눈에 담고 사진에 담고 몸에 담기 바쁘다. 이 상반된 경험은 위선이 아니다. 우리 안에는 다양한 체험이 농축되어 있다. 상황에 따라 우리 영혼은 기뻐할 때는 기뻐하고, 슬퍼할 때는 슬퍼한다. 그러면 되는 것이다. 그러니 지금은 찬양하고 노래하자! '참 아름다워라~ 주님의 세계는!'
다시 에탈수도원으로 돌아왔다. 아내는 홀로 수도원 뒤 숲 속길로 들어갔다. 나는 순례단원들과 함께 커피 수다를 나눈다. 6시에 저녁 성무일도가 있다고 하여 아내와 함께 참석했다. 검은 수도사복을 입은 사제들이 등장한다. 청중은 넷이다. 30분간 수도사들은 시편 찬송을 부른다. 멜로디는 단조롭지만 듣기에 아름답다. 아름답다 느끼는 순간 졸음이 쏟아진다. 한참의 시간이 지났는데도 끝나지 않는 것 같아 휴대폰을 들여다보니 17분 밖에 안 지났다. 시간의 속도는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시계의 초침은 객관적으로 정확한 비율로 움직인다. 그러나 시간의 속도는 매번 다르다. 휴대폰으로 영상이나 뉴스를 보면 시간의 속도가 엄청 빠르다. 잠깐 몇 개 밖에 안 봤는데도 30분이 후딱 지나간다. 침묵 가운데 가만히 앉아 주님의 임재 속으로 들어가려고 하면, 시간이 너무 느리게 간다. 때로 내 기도하는 그 시간 그때가 가장 힘들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 경험한 바도 있다. 그 느린 시간을 견뎌내며 모든 분심과 싸워 영혼의 움직임이 가장 활성화되는 순간에 다다르면 나는 시간의 세계 밖으로 나간다. 평화가 나를 감싸고, 내적 소음도 사라진다. 주님의 말씀의 세계 속에서 나도 한 등장인물이 되어 그분의 뜻 가운데 머문다. 머물 뿐이다. 잠시 한 10여분 머문 듯한데 한 시간이 흐른다. 그런 순간은 내 의지와 노력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또 그런 순간을 사모하여 분투하지만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그런 순간이 다시 찾아오길 기다린다. 기도를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다.
저녁 먹고 다시 에탈 마을을 걷는다. 참 아름답다. 먹구름 너머 파란 하늘이 보인다. 내 앞뒤에 놓은 근심 너머 은혜가 지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