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신자들은 성모 마리아를 향한 신심이 크다. 베드로 사도, 바울 사도를 흠모하는 것 못지 않다. 모성 때문일까. 품어주는 사랑, 아픈 마음 만져주는 사랑, 무서운 아빠에게 대신 잘 전달해 주시는 자상한 어머니의 사랑... 성모 마리아는 그런 모성의 사랑을 상징하는 듯하다. 장미 묵주를 들고 묵주기도를 드리는 신자들은 하루 5단, 10단 정성껏 마음을 모은다. '간절한 정성'이 담긴 기도의 시간이기 때문이리라.
수도원 여정 중 알퇴팅(Altoetting) 성모 성지 방문이 있다. 그 어느 때보다 순례객들의 몸이 들썩거리는 것이 느껴진다. 이곳은 베네딕토 16세 전임교황이 독일 바이에른 지방의 심장이며 유럽교회 본질 중 하나라고 밝힌 성모신심 순례지라 한다. 성당은 마을 한가운데 있고, 그 주위로 여러 개의 거대한 성당들이 둘러싸고 있다. 중앙 광장에 왕관을 쓴 성모상이 있고 그 맞은편에 팔각형 모양의 작은 '은총 성당'이 있다. 그 안에서 미사가 진행되고 있다. 순례객들이 서둘러서 컴컴한 경당 안으로 뛰다시피 들어간다.
사람들이 다 빠져나가고 기도하는 몇 사람만 남은 작은 은총 경당에 들어선다. '검은 성모상'과 함께 경당이 온통 검은색으로 칠해져있다. 순간 어머니가 생각났다. 동시에 아내도 어머니를 위해 기도하자고 한다. 아픈 어머니를 돕다가 세 자녀가 점점 지쳐가고 있다. 어머니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죄책감과 절망이 밀려올 때면 의도적으로 감정을 밀쳐내려고 애쓴다. 부정과 외면, 승화와 소망,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버틴다. 왜 내 어머니에게서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 왜 나아지지 않을까, 우리 자녀들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문제에 골똘할수록 가슴이 죄어온다. 심장이 아프다. 숨이 가빠진다. 기도하려고 하는데, 말은 나오지 않고 신음 소리만 가슴에서 웅웅 울린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님, 십자가 위에서 죽어간 아들 예수님을 보시면서 얼마나 가슴 아프셨을까요? 예수님을 따르는 수많은 젊은이들을 보며 자신의 아들처럼, 딸처럼 여기며 기도하시는 인생을 사셨을 줄로 압니다. 제 어머니 일로 주님께 아뢰고 아뢰고 또 아뢰고 있습니다만, 아픈 제 마음, 제 이야기 좀 들어주실 수 있으신가요?"
기도인 듯 기도 아닌, 기도 같은 말들이 좀 어색하다. 밖으로 나와 성당 밖을 한 바퀴 돈다. "주님, 제 어머니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나아지게 해주십시오. 고난으로 가득 찼던 인생은 멀리 있게 해주시고, 행복으로 충만했던 인생은 기억 가까이 있게 해주십시오."
순례자들에겐 좀 미안하지만, 미사를 드리는 동안 나와 아내는 동네 산책하다가 유명한 아이스크림 집을 만났다.
오늘은 슈바이클베르크 수도원(Abbaye de Schweiklberg) 숙소에 머문다. 슈바이클베르크 수도원은 도나우 강(다뉴브 강)이 흐르는 빌쇼펜의 언덕에 위치해 있다. 수도원은 독일 건축가 미하엘 쿠르츠가 아르누보 양식으로 지었다고 한다.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나타난 아르누보 양식은 묘한 매력이 있다. 영화속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외양과 성화들이다.
수도원은 세워진 지 백여 년 밖에 되지 않은 젊은 수도원이다. 그러나 그곳의 수도사들은 거의 대부분 80대 이상의 할아버지들이다. 지금까지 본 수도원 중에 가장 연로한 이들이 생활하는 수도원이다. 5시 성무일도에 순례단원들과 함께 참여한다. 지팡이를 짚고, 허리가 다소 굽은 할아버지 수도사 12명이 사방에서 나타한다. 시편 기도가 시작된다. 할아버지 입에서 소년의 음성이 흐른다. 질문이 생긴다. 40~50년 여동안 매일 5차례 씩 30분의 성무일도를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일까? 그게 가능한 일일까? 낮에는 수도원 경내 여기저기서 노동을 하다, 정해진 시간에 수도복으로 갈아입고 기도하는 일, ora et rabora(기도하고 노동하라)의 삶을 어떻게 수행해냈을까? 할아버지 수도사들의 얼굴이 모두 소년같이 맑다. 영혼이 맑은 게 분명하다. 영혼에 생명수가 흐르는 것이 분명할 게다. 불필요한 욕망들과 유혹들, 굳이 알 필요도 없는 지식과 정보들, 굳이 경험할 필요가 없는 끝없는 욕망의 소비들, 그분들은 용케 그 세속의 소낙비를 맞지 않았으리라. 물론 인간 내면에 내재하는 욕망들과 유혹들, 죄의 성향은 인간이 어디에 있든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12명의 수도사들은 매일 다섯 차례, 30분씩 모여 기도해왔다. 정화의 시간이고, 참회의 시간이다. 그 영혼에 섞인 불순물들이 걸러지는 시간이다. 그 일이 그분들의 영혼을 다듬고, 그분들의 얼굴빛을 만들었으리라.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본다. 50대의 얼굴이다. 이제 더 이상 젊음의 싱싱함은 사라졌다. 흰머리가 많아졌다. 피부가 늘어난다. 내 얼굴 근육이 이제 영혼의 모양을 드러낼 때가 다가온다. 숨길 수 없고, 감출 수 없고, 위장할 수 없다. 얼굴이 영혼의 모양을 드러낼 것이다. 더 이상 숨길 수 없는 내 영혼이 서서히 얼굴에서 나타나는 시간이 걱정된다. 맑은 얼굴빛을 가진 노인이 될 수 있을까?
넉넉한 시간이 주어졌다. 아내와 수도원 밖을 나섰다. 주변 마을로 들어간다. 조금 높은 곳에 오르니, 저 멀리 도나우강이 흐른다.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양평의 어느 산기슭 느낌도 난다. 하늘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면 죄다 작품이 된다. 유난히 파란 하늘, 공기가 맑아서 그런 것일까? 도나우강을 봤다는 말에 순례자들이 너도나도 마음이 들썩거린다. 맨 앞에 서서 수도원에서 강변까지 걷는다. 도나우 강을 거슬러 거대한 유람선이 지나간다. 아내가 왈츠를 튼다. 부끄러움도 잊은 채 하늘 빛에 물들고, 강물에 물들고, 분위기에 취해, 아내 손을 잡고 거리에서 왈츠를 춘다(3초 정도). 순간에 깃든 영원의 빛은 우리를 춤추게 한다. 영원과 잇댄 순간에 우리는 천국의 자유를 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