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ent is Present

방금 나를 지나간 그 바람은 어떤 바람 됐을까

순례, 그 땅을 걷다/베네딕트수도원기행(이탈리아독일)

[수도원기행5]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신의피리 2024. 5. 20. 13:37
“내가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행 19:21)


2015년도에 바울 사도의 발자취를 따라 터키-그리스를 다녀온 적이 있다. 이루 말할 수 없이 좋았다. 그가 걸었던 길을 걷고, 그가 설교했던 아레오바고를 오르고, 그가 세례를 줬던 빌립보 강기테스 강가에 앉았을 때, 형용할 수 없는 은총이 쏟아져 내렸다. 순례의 참 의미를 알았다. 그때 비로소 로마가 가고 싶어졌다. 다른 이유는 없다. 바울의 발자취를 따르고 싶은 것이 제일 큰 이유다. 그리고 드디어 로마에 입성했다.

콜로세움
포로 로마노
개선문
로마 시내


콜로세움, 포로 로마노, 개선문 등을 보았다. 가히 로마는 살아있는 역사유물관이다.

로마 시내도 잠시 걷는다. 전 세계 모든 민족이 다 와있는 것 같다. 주말이라 그런지 시내엔 형형색색의 얼굴빛을 가진 이들이 붐빈다.

트레비분수


눈은 즐겁고, 다리는 무겁다. 그래, 남들 와서 사진 찍는 곳에서 나도 사진 한 번 찍어보는 데 의미가 있겠다. 좋다. 역사유적지 사이를 걷고, 유명한 관광지를 보고, 각국 사람들을 만나고, 고풍스러운 옛 로마길을 걸으니 좋다. 어디 가서 사람들과 이야기 나눌 때 꿀리진 않겠다.

뭔가를 찾는 사람처럼, 내내 시선을 살피다 드디어 찾던 것을 찾았다. 바울 사도의 흔적이다. 그와 베드로 사도가 말년에 갇혔던 곳으로 알려진 마메르티눔(mamertinum) 앞에 도착했다. 처음으로 가슴이 잠시 뛰었다. 엄청난 건축과 역사와 권력과 문화의 위용을 자랑하는 이 로마에서 변방의 인물 바울은 도대체 무슨 파문을 일으켰던 것일까? 도대체 그 많은 인구가 북적대며 온갖 다신을 믿던 로마 한복판에 바울의 사역은 어떤 핵폭탄이 된 것일까? 황제 네로 앞에서 바울은 무슨 말을 했으며 그는 어떤 판결을 받고 사형에 처해 졌던 것일까? 그가 믿던 복음, 그를 부르신 주님은 다 같은데, 그는 어찌 그리 크고, 나는 어찌 이리 작은 것일까. 나의 부르심은 무엇일까? 복음으로 부름 받은 내가 이곳에서 그 복음으로 살아내 보여줘야 할 것은 무엇인가. 작다. 너무 작다. 할 수 있는 게 너무도 작다. 그게 내가 받는 달란트 일지 모른다. 그거라도 잘 해야지 싶은데 그것조차 쉽지 않다.

마메르티눔


유럽의 수호성인은 베네딕토이고, 이탈리아의 수호성인은 프란체스코라고 한다. 프란체스코 동상 앞에 섰다. 성 프란체스코가 무언가 간절히 자라며 두 손을 들고 서 있다. 수도회 설립 허가를 받기 위해 교황을 만나러 온 모습이 분명하다. 그런데 그 순간 한 걸인이 나타나 프란체스코 동상 밑으로 오더니 마치 자기 침상인 양 퍈안히 눕는다. 동상의 머리에서는 비둘기들이 싼 흰 똥들이 흘러내린 흰머리처럼 보인다. 동상은 전혀 관리가 되지 않은 것처럼 지저분하다. 지나가는 그 누구도 이탈리아의 수호성인인 프란체스코를 주목하지도 않고, 예의를 갖추지도 랂는다.


프란체스코가 바라보는 쪽, 길 건너편에는 과거 주교좌성당이었던 라테란 대성당이 자리하고 있다. 당시 프란체스코가 만난 교황이 머물렀던 곳이다. 바티칸 이전 천여년 동안 교황이 머물던 곳이며 여러번 개축되었다 한다. 프란체스코 동상이 있는 곳에서 바라보니, 그 위용이 대단하다. 가까이 가니 그 화려함과 부요함에 압도당한다. 소지품 검문검색을 통과하여 안으로 들어간다.


프란체스코의 청빈 정신과 교황청의 화려함이 그때에도 대비되었듯이 지금도 대비되고 있다. 성당에서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밖으로 나오다 내 입에서 나도 모르게 험한 말이 쏟아졌다. ‘엄청 처발랐네’ 성 프란체스코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겠지만, 이 엄청난 대비가 내내 순례자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그리스도의 정신과 그리스도를 예배하는 건물이 전혀 조화롭지 않다. 차라리 로마 신전이라 하면 입 벌리고 감탄하며 구경하겠는데, 맘이 살짝 토라진다. 아내가 그런다. 이건 시작에 불과하다고. 내일은 더 크고 더 화려한 성당을 보게 될 거라고.

길건너 맞은편 성계단 성당에서는 사람들이 여전히 돌계단에서 무릎 기도를 드린다. 무릎으로 계단을 오르며 기도하는 것이다. 계단마다 사람들이 가득 차 있다. 저마다 다 간절한 사연이 있을테다. 간절한 만큼 고통을 감내하며 무릎으로 오르는 것이다. 그러나 목적과 수단이 뒤바낀 것 같은 내 느낌은 잘못 된 것일까. 오후에 방문한 카타콤베에는 순례객 서너 팀이 순례중이지만, 거기서 무릎으로 기도하는 이는 없다.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절대적 복종과, 주님에 대한 절대적 신뢰를 상징한다. 그 마음이야말로 이 지하동굴에서 숨어사는 성도들의 고백이었을 것이다. 자꾸 마음이 불편해진다. 메마르티눔 지하감옥에서 죽을 날을 담대하게 기다린 바울의 발자취를 성당에서는 좀처럼 느껴지지가 않는다. 그리스도를 위해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긴 사도 바울이 21세기에 로마를 방문하면 어떤 감정을 갖게 될까. 전세계 모여든 로마 관광객 사이에서 내 마음의 중심을 잃는다.

카타콤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