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테카시노에서 수비아코로 이동했다. 수비아코는 강원도 산골짝 느낌이다. 작고 경사진 곳에 세워진 작은 마을 한가운데로 52인승 버스가 지나간다. 4~5층 짜리 건물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테라스에서 담배 피우는 중년의 여성과 눈이 마주쳤다. 나도 모르게 미소로 인사를 한다. 저 여성은 동양 남자의 미소인사를 어떻게 생각할까.
마을 외곽 조금 더 높은 곳으로 버스가 묘기 부리듯 올라간다. 스콜라스티카 수도원(Forsteria del Monastero di S.Scolastica)에 도착한다. 오늘은 수도원에서 운영하는 숙소에 머문다.
수도원 내부는 미로처럼 설계되어 있는데, 이곳은 조금 특이하다. 밖에서 안으로 들어갈수록 더 오래전에 지은 건물이 나온다. 가장 안쪽 건물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건물이라 한다. (가이드의 통역설명에 의하면) 입구에서 처음 들어섰을 때는 좀 밋밋했는데 안으로 들어갈수록 더 신비롭다. 고독과 침묵을 경험하기 딱 좋은 공간이다. 사방은 건물로 막혔고 위로만 열려있다. ‘마음을 드높이~’ 예배 문구가 떠오른다.
왜 그럴까. 왜 더 오래된 것에서 더 깊은 것을 건져 올리게 될까. 덧붙이는 과정에서 덧붙이는 이의 주관적 욕심이 도리어 진리로부터 더 멀어지게 만든다. 성경이라는 더 오래된 것에 더 깊은 것이 있으니, 덧붙이려 하지 말 것.
오후, 드디어 수비아코 수도원(Subiaco Sacro Speco)에 들어간다. 책과 사진으로 보던 그 장면이다. 베네딕토가 3년간 동굴에서 수도한 곳에 세워진 수도원이다. 지금은 5명의 수사가 있다.
자신 안에 존재하는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우리는 얼마나 많은 수행을 할 수 있을까. 교만, 식욕, 시기, 분노, 음욕, 탐욕, 나태, 인간됨을 빚어내는 이 7가지 내적 욕망을 어떻게 다스릴 수 있을까? 아마도 베네딕토의 삶과 그의 규칙이 수세기에 걸쳐 수많은 수도원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봐서, 그의 수행과 그의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아직 포기하고 안주할 수 없다.
내려오는 길에 안젤라 자매님께서 농담 삼아 내게 세례명을 줬다. “베네딕토!” 나는 속으로 “바울!!!” 또는 “칼뱅!! “이라고 외쳤는데, 듣고 보니 나쁘지 않다.
어쩌다 보니 오늘이 생일이다. 내가 몇 살 인지도 모르겠다. 아내가 나 몰래 바람을 넣었는지 저녁식사 도중 뜻밖의 생일축하송을 선물로 받았다. 순례객들이 진심으로 축하의 마음을 담아 즐겁게 노래를 불러준다.
"사랑하는 목사님~ 생일 축하합니다~"
어제 읽은 말씀이 내면에서 울린다.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요한복음 17: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