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꿈을 꾼 것 같다. 13일 간 이탈리아와 독일 일부 지역을 다녀왔다. 성베네딕토 수도원 기행이었다. 모든 날, 모든 장소, 모든 상황이 내내 좋았다. 낯선 풍경을 보는 것, 그 풍경 안에서 해가 지고 해가 뜨는 것, 위대한 성인들이 걷고 기도하고 살아냈던 그 땅에 서서 그 마음 품어보는 것, 다른 민족들이 과거에 살아온 삶의 방식과 건축물들을 헤아려 보는 것, 이탈리아와 독일의 시골 마을을 걸어보는 것, 로마네스크-고딕-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진 중세의 수도원 성당 한 구석에 앉아 기도해 보는 것, 그 모든 것이 좋았다. 내 삶의 속도를 줄이라고 한다. 내 삶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으라 한다. 내 삶의 경계 세우기를 그만하고 평화롭게 살라 한다.
꿈에서 겪은 것, 느낀 것, 간직한 것들을 내 일상과 현실로 가져오고 싶다. 달라지고 싶다. 하나도 달라진 것 없다는 말을 들을까 걱정이다. 더 말수가 줄고, 더 귀가 커지고, 더 얼굴이 온화해지고, 더 속깊고, 더 지혜롭고, 더 느긋하고, 더 좋은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돌아오자 마자, 첫 번째로 붙든 책은 독일 출신 기자, 페터 제발트가 쓴 <사랑하라 하고 싶은 일을 하라>이다. 이 책은 수도원 체험기다. 삶의 스트레스에 지친 저자가 수도원으로 들어가, 존 신부와 대화하며 깨달은 내용들을 적었다. 나도 언어만 된다면 저자처럼 하고 싶다. 말이 안되니, 이렇게 패키지 여행만 할 뿐이다. 그러나 내가 보고 걷고 한 그 장소에서 저자도 오래 머물며 기도하고 사색하고 대화했으니, 감정이입이 잘 된다. 그런데 의외의 수확이다.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이 책엔 엄청난 보화가 담겨 있다. 마음에 새기고 입으로 암송하여 삶의 지혜로 녹여내야 할 귀한 통찰들이 페이지 곳곳에서 별처럼 빛난다. 책꽂이 바로 앞에 꽂아두고, 해마다 한번씩은 읽어야겠다 싶다.
클레르보의 베르나르도,
“자기 자신과 잘 지내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다른 사람과 잘 지내겠는가?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 사람이 어떻게 온전한 인간일 수 있는가?"
성 아우구스티노
"나는 수도원에서 부단히 덕을 쌓아 올리는 사람들보다 나은 그리스도인을 거의 만나보지 못했으며, 수도원에서 타락의 길에 빠지는 사람보다 나쁜 그리스도인도 알지 못한다."
미상
“내 작은 방에 머물러라. 그러면 그 방이 너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주리라.”
마더 데레사
어제는 지나갔다. 내일은 아직 오지 않았다. 우리 애기는 오늘 많이 있다. 이제 시작하자.
수도자들이 보기에 자신의 의지를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우리 존재의 본질에 도달하는 데 있어 가장 큰 장애물 중 하나다. 그런 까닭에 수도자의 길에 들어선 사람에게 가장 기초 단계에서 주어지는 최초의 과제는 자기 고집을 포기하는 것, 영원한 불행과 불만족의 근원인 그 고집을 아예 미워하는 것이다. 우리의 영혼은 자기 자신의 이기적인 소망에 저항하고, 하느님의 손에 삶을 맡기는 자세를 통해서 진정으로 필요한 평안과 조화를 누리게 된다.
이것이 성 베네딕토가 말하는 복된 평화이다.
57p.
파스칼
“인간의 모든 불행은 자기 방에 홀로 머물러 있지 못하는 대서 온다.”
68p.
네가 너 자신으로부터 도망쳐 달아나고 싶을 때, 가만히 머물라.
네가 이 학교를 그만두고 싶을 때, 가만히 머물라.
네가 네 사랑하는 이에게 싫증이 났을 때, 가만히 머물라.
네 가족이 너의 신경을 건드릴 때, 가만히 머물라.
네가 하는 일을 내팽개치고 싶을 때, 가만히 머물라.
네가 삶에 지쳤을 때, 가만히 머물라.
네 아이를 누군가에게 주어버리고 싶을 때, 가만히 머물라.
네가 죽을 정도로 아플 때, 가만히 머물라.
네가 더 이상 기다리고 싶지 않아도, 가만히 머물라.
네 인내심이 바닥난 것 같아도, 가만히 머물라.
네가 모든 걸 포기하고 싶을 때도, 가만히 머물러 있으라.
77p.
쇠렌 키르케고르
“오늘 이 세계와 모든 삶은 병에 걸려 있는 상태다. 만일 내가 의사라면, 그래서 사람들이 내게 와서 당신이라면 어떤 처방을 하겠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침묵하시오!”
100p.
에디트 슈타인
“하느님이 인간에게 무슨 일을 원하실 때는 반드시 그 일을 할 수 있는 힘도 주신다.”
130p.
바실리오
"어떤 사람이 말할 때 그 말 속에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하면, 자기가 생각해낸 말을 첨가하려는 공명심에 사로잡혀 그의 말을 끊는 일이 없도록 하라. 말과 행동에 있어 정도를 지키라. 남의 충고를 듣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말라. 오히려 남에게 충고하기를 꺼리라."
164p.
아우구스티노.
"사람들이 저 먼 데까지 가는 이유는 높은 산봉우리, 장엄한 파도, 굽이치는 물결, 변화무쌍한 하늘과 바다를 보고 감탄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런데 인간은 정작 자기 자신에게는 전혀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176p.
로욜라의 이냐시오
“네 이웃의 실수에 너무 마음 쓰지 말라. 남에게는 항상 미안하다고 말할 준비를 하고 있으라. 반면 너 자신의 잘못을 고발하는 일에는 민첩하라.”
196p.
저자
“베네딕토 수도회의 모든 규칙을 든든히 지탱하고 있는 원칙을 요즘 유행과는 전혀 맞지 않는 구식 언어로 표현하자면 섬김'이다. 베네덕토 수도자들에게 섬김은 부수적인 것이 아니라 주요 과제이다. 모든 것이 섬김이다. 일찍이 사람들을 사랑하여 마치 종 처럼 몸을 굽혀 사람들의 발까지 씻어준 나자렛 예수도 섬김을 실천한 사람이었다.”
238p.
존 신부
"노동하는 사람만이 진정한 명상을 할 수 있습니다. 또 기도하는 사람만이 영속적인 가치가 있는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기도와 노동이 함께 있는 곳에서 비로소 인간은 균형을 찾을 수 있지요.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온전한 진리입니다."
277p.
디트리히 본회퍼
“한 사람을 그리스도인으로 만드는 것은 종교적인 행위가 아니라, 이 세상의 삶에서 하느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다."
305p.
로제 수사
“사랑하기로 결단한 사람의 마음은 무한한 친절함으로 빛을 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