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월 안식을 마치고, 다시 목회 현장으로 복귀했다. 주일 설교를 준비하려 하니 힘이 든다. 내내 편히 놀고 쉬다가 다시 온 존재를 쥐어짜듯이 초 집중해야 하는 설교 준비로 모드 전환이 잘 이뤄지지 않는다. 내가 그동안 이걸 어떻게 해왔던 것일까.
마중불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내 목회 스승이신 존 목사님 앞으로 가는 수밖에.
<존 스토트의 설교>를 다시 읽는다. 한 3분의 2를 밑줄 친 것 같다. 죄다 암송하면 좋겠지만, 그럴 능력이 없는 게 아쉽다. 3일에 걸쳐 책을 읽고 나니, 영혼에 작은 불 하나가 켜진다.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말자. 성경에 대한 충실성, 현실세계에 대한 적실성, 말씀과 설교에 대한 명료성, 무엇보다도 하나님도 내 설교를 듣고 계시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148p
설교문을 작성한 후에 그것을 위워서 강단에서 암송하려 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설교문을 외우는 데 지나치게 많은 시간과 노력이 요구되고, 중간에 할 말을 잊을 위험도 있습니다. 게다가 설교의 메시지와 청중보다 설교문을 기억하는 것에 정신을 더 쏟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150p.
먼저 제 자신이 완벽하게 읽고, 그다음 제 자신이 명료하게 사고하고, 그다음 제 자신이 뜨겁게 기도하고, 그리고 제 자신을 내려놓습니다.
162p.
발성과 몸짓 같은 설교의 실제적 문제를 간략히 언급하기에 가장 좋은 대목에 이른 것 같습니다. 이러한 것을 위해 리허설을 하면 안 됩니다. 설교자는 배우가 아니고 강단은 무대가 아닙니다. 배우는 자아를 강하게 의식합니다. 그러나 강단에서는 자아를 잊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 말씀하시면 좋겠다는 진실한 소망에서부터 자연스럽게 표현이 흘러나와야 합니다.
172p.
제임스 블랙, "최고의 설교는 언제나 무르익은 정신이 자연스럽게 흘러넘치는 것이고, 성장의 경험이 표현되는 것이다. 좋은 설교는 만드는 것이 아니라 우러나오는 것이다."
191p.
다시 말해서 설교는 하나님과 하나님 백성의 만남을 장려하기 위한 것입니다. 도널드 밀러(Donald G. Miller)는 이를 좀 더 강하게 표현합니다. "자신과 회중 양자의 만남이 하나님이 친히 살아서 참여하시는 삼자의 만남으로 바뀔 때까지는 누구도 진정으로 설교한 것이 아니다." 저도 동의합니다. 설교자가 경험할 수 있는 가장 감동적인 순간은 설교 도중 회중 가운데 기이한 정적이 감도는 때입니다. 졸던 이가 깨어나고, 기침 소리가 멈추고, 안절부절 못하던 이가 가만히 앉아 있습니다. 정처 없이 헤매는 시선도, 마음도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귀를 기울입니다. 그러나 설교자에게 귀를 기울이는 것이 아닙니다. 설교자는 잊히고, 사람들은 살아 계신 하나님을 대면합니다. 그분의 고요하고 세미한 음성을 듣습니다.
201p.
우리는 사람들이 보고 듣는 앞에서 설교하며, 그들을 보면서 충실하게 설교해야 한다는 도전을 받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고 들으시는 앞에서 우리가 설교한다는 자각은 훨씬 큰 도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행동을 보고, 우리의 말을 들으십니다. 그분께는 보이지 않는 마음도, 감추인 비밀도 없습니다. 우리의 게으름과 냉담, 위선, 비겁함, 교만을 제거하는 데 하나님이 보고, 들으며, 주목하신다는 사실을 아는 것보다 더 효과적인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가 그분을 더 꾸준하고 분명하게 의식할 수 있도록 허락하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설교할 때 그분이 보고 들으신다는 사실을 더 깊이 인식하고, 이 인식을 통해 더 충실한 설교자가 되도록 허락하시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