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죽었다.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첫 문장부터 예사롭지 않다. 수많은 행복과 불행의 근거가 되는 주어와 수많은 생의 사연이 담긴 동사가 강력하게 연결됐다. 주어와 동사를 연결 짓는 드러난 사유는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이다. 그러나 이 문장은 소설에서 별로 주목받지 않는다. 소설은 이 강렬한 첫 문장 이후, 3일간 장례식장을 묘사한다. 죽은 아버지의 유일한 상주인 50대를 맞이한 딸의 시각에서 조문하러 온 손님들을 관찰한 이야기다. 모든 조문객은 아버지의 지인들이다. 작가는 조문객과 아버지의 직간접적인 사연을 하나둘 소개하면서 빨치산 낙인 찍힌 아버지의 인생을 추적한다. 아니 베일에 감춰져 있던 아버지의 진면목이 하나둘 드러난다.
살아서의 아버지는 뜨문뜨문, 클럽의 명멸하는 조명 속에 순간 모습을 드러냈다 사라지는 사람 같았다. 그런데 죽은 아버지가 뚜렷해지기 시작했다. 살아서의 모든 순간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자신의 부고를 듣고는 헤쳐 모여를 하듯 모여들어 거대하고도 뚜렷한 존재를 드러내는 것이었다. 아빠. 그 뚜렷한 존재를 나도 모르게 소리 내어 불렀다. 181쪽.
그런데 이상도 하지. 영정 속 아버지가, 이틀내 봤던, 아까도 봤던 영정 속 아버지가 전과 달리 그립던 어떤 날들처럼 친밀하게 느껴졌다. 죽음으로 비로소 아버지는 빨치산이 아니라 나의 아버지로, 친밀했던 어린 날의 아버지로 부활한 듯했다. 죽음은 그러니까, 끝은 아니구나, 나는 생각했다. 삶은 죽음을 통해 누군가의 기억 속에 부활하는 거라고. 그러니까 화해나 용서 또한 가능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231쪽.
죽은 아버지의 딸은 평생 '빨치산의 딸'이라는 자의식을 가지고 살았고, 삶의 중요한 고비 때마다 그로 인해 상처를 받았다. 아주 어린 시절의 추억만이 부녀의 정을 보여줄 뿐, 딸은 아버지가 멀고 흐릿했다. 그런데 뼛속까지 유물론자요 사회주의자로 살다 죽은 아버지를 타인의 시선으로 보기 시작한다. 타인의 시선으로 본 아버지는 다소 낯설다. 그러나 그렇게 죽은 아버지는 서서히 차갑게 식은 딸의 마음에 온기를 가져온다.
“할배가 그랬는디, 언니가 여개서 썽을 냈담서? 할배가 아줌마 궁뎅이 두들겠다고?"
아무튼 아버지는 제 허물도 제 입으로 까는 데 선수다. 그것도 이 어린아이를 상대로.
"그때게 할배 맴이 요상허드래. 아부지라는 거이 이런 건갑다, 산에 있을 적보담 더 무섭드래. 찰보담 군인보담 미군보담 더 무섭드래."
아버지 유골을 손에 쥔 채 나는 울었다. 아버지가 만들어준 이상한 인연 둘이 말없이 내 곁을 지켰다. 그들의 그림자가 점점 길어져 나를 감쌌다. 오래 손에 쥐고 있었던 탓인지 유골이 차츰 따스해졌다. 그게 나의 아버지, 빨치산이 아닌, 빨갱이도 아닌, 나의 아버지. 265쪽.
소설의 마지막 단락이다. 죽은 아버지의 유골을 아버지의 유언대로 딸은 아버지의 삶의 흔적이 서려있는 여기저기에 한줌씩 뿌린다. 그러다 마지막 한 줌의 재가 뿌려질 장소에 왔다. 딸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강렬한 어린 시절의 추억 한 장면. 그때 자신의 감정은 또렷하게 기억한다. 그러나 그때 자신을 향한 아버지의 감정과 생각은 평생 모르고 살았다. 그런데 아버지의 도움을 받은 한 어린아이가 그때의 아버지 심정을 전해준다. 오래간만에 단숨에 읽은 소설이었는데, 마지막 소설의 대단원에서 목이 멘다. 딸이 느낀 그 감정이 무엇인지 충분히 알겠다.
나는 소설 속 주인공처럼 그런 짜릿한 체험은 없다. 그러나 죽은 아버지와 도리어 더 친밀감을 느끼고, 더 깊게 이해하게 됐다. 아버지의 유품, 아버지의 흔적 때문이었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다가 아버지의 다른 면모를 보게 됐다. 내가 몰랐던 아버지였다. 암투병 중 아내와 나눈 문자가 그랬고, 아버지 앨범에 있는 사진이 그랬고, 숨겨둔 통장 하나 없이 깨끗하고 소박하게 사신 아버지의 흔적이 그랬다. 장례식장에서 모르는 이들이 와서 통곡하며 우는 모습을 보면서도 그랬다. 너무나도 내성적이시고 소심해서, 나이 40대 초반부터 밖에 나가 노동하고 도전하지 않으셨던 아버지가 나는 부끄러웠다. 그런 아버지가 얼마나 마음 따뜻한 분이셨는지 돌아가신 이후에야 알게 된다. 내가 초등학교 5학년 때 핸드볼 선수가 되어 합숙훈련 하느라 몇 주째 집에 가지 못했다. 그때 술 한잔 하시고 아들 보고 싶다고 오셨다. 그냥 몇 마디 하시고 가셨다. 고등학교 3년 때 밤새 고열에 시달리며 끙끙거렸다. 새벽녘이었다. 힘이 하나도 없이 늘어져 있던 내 손을 두터운 아버지가 잡았다. 이마에 손을 얹고 잠시 숨죽여 있었다. 돌아가시던 그 해, 당신의 죽음을 알고는 계셨을까. 죽음을 한 달여 앞둔 어버이날 온 가족 음악회가 열렸다. 아버지는 미리 촌스러운 글씨로 플래카드를 만들어 놓으셨다. 음악회가 끝나고 갑자기 플래카드를 뒤집어서 둘째 아들 생일축하로 분위기를 바꾸셨다. 내가 받은 아버지의 처음이자 마지막 생일선물이다.
어머니가 아프다. 24시간 돌봄과 보호가 필요하다. 이틀째 어머니 곁을 지킨다. 아버지께서 살아 계실 때 거실 탁자에 껴둔 사진들이 보인다. 그 곁에서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읽었다. 평소 아버지 집에 오면 아버지는 거실에 쭈구리고 앉아 화투로 숫자 맞추기를 하곤 하셨다. 무료한 일상, 손주들이 없으면 할 수 있는 일도 없으신 아버지는 홀로 화투놀이를 하셨다. 그 화투가 유품이 되어 아직도 어머니 거실 탁자 위에 놓여있다.
작가의 말이 맘에 든다. 친구들이 자신을 '반성주의자', '성장애주의자'라 부른단다. 딱 나다.
작가의 말 중에서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나 잘났다고 뻗대며 살아온 지난 세월에 대한 통렬한 반성이다. 나름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했는데 나이 들수록 잘 산 것 같지가 않다. 나는 오만했고 이기적이었으며 그래서 당연히 실수투성이였다. 신이 나를 젊은 날로 돌려보내준다 해도 나는 거부하겠다. 오만했던 청춘의 부끄러움을 감당할 자신이 없으므로.
부끄러움을 견디며 오늘을 살 수 있는 것은 그나마 내가 반성할 줄 아는 인간인 덕분이다. 친구들은 나를 반성주의자 또는 성장애주의자라고 부른다. 반성하고 성장하는 것이 내 특기라나 뭐라나. 잘하는 것이라곤 그 둘뿐이다. 그나마라도 그럭저럭 해내고 있으니 천만다행 아닌가. 그렇게 자위하며 살았다. 돌이켜보니 거기서부터 문제였다...
...쉰 넘어서야 깨닫고 있다. 더 멀리 더 높이 나아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행복도 아름다움도 거기 있지 않다는 것을. 성장하고자 하는 욕망이 오히려 성장을 막았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