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ent is Present

방금 나를 지나간 그 바람은 어떤 바람 됐을까

기고/QTzine

12월에 부르는 노래

신의피리 2015. 5. 25. 22:52

QTzine [2004/12] 

김종필 편집장 qtman@young2080.com


 

 

몇 해 전의 일입니다. 송구영신예배를 두서너 시간 앞두고 목사님께서 느닷없이 예배 찬양인도를 맡기셨습니다. 여러분들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어떤 찬송을 제일 먼저 선택하시겠습니까?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 그 떨림과 긴장된 시간에 어떤 찬송이 가장 적절할까? 고민과 기도를 거듭하던 저는 마음이 암담해지게 되었습니다.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가던 제 과거 역사가 하나같이 실패와 좌절, 배신과 게으름이 원인이 되었던 일들이었고, 미성숙과 불신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졌기 때문이었습니다. 아픈 기억들이 스치면서 동시에 여러 노래들이 귓가에 부딪혔지만 제 삶과 그 노래들은 헛돌 수밖에 없었습니다.

수없이 많은 제 어리석은 선택의 결과들과 수없이 많은 그분의 아름다운 약속의 찬송들이 서로 엇박자를 내며 제 기억을 혼란하게 하던 끝에, 드디어 해결의 실마리가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저를 힘겹게 하던 그 ‘세상과 나’는 온데간데 없어지고 마음의 풍랑이 잔잔해지더니, 미련한 나를 그래도 사랑하시고 그래도 인내하시고 그래도 복 주셔서 여기까지 끌고 오신 인자하신 주님만이 또렷이 인식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사람이 신앙적으로 성숙해 가는 과정은 예나 지금이나 동이나 서나 매한가지인가 봅니다.  애굽 노예생활에서의 해방과 홍해사건, 그리고 광야 생활과 언약을 주신 하나님이 절대적으로 그들 편이란 사실을 망각한 채 계속해서 반역과 불신을 저지르는 이스라엘 백성 속에서 고스란히 나를 보기 때문입니다. 그랬던 그들이 결국 자신들을 자각하고 하나님을 인식하게 되었을 때 어떤 고백과 간증과 찬송을 할 수 있을까 사뭇 궁금해집니다. 


12월이 되었습니다. 출애굽기도 마지막장까지 얼마 남지 않았고요. 우리의 과거가 어찌되었든 칠칠맞은 저를, 턱없이 부실한 이스라엘 백성을 그래도 사랑하셔서 동행과 임재를 약속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이 마지막 달을 가득 채우고 또 넘치고 넘쳐 이 사회를 가득 채우길 희망해 봅니다. 질곡의 역사를 넘고 넘어 출애굽기 40장에 다다라 임마누엘 영광의 순간을 체험하는 그들의 감동이 그대로 우리의 12월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 그리고 보니 제가 선택한 찬송을 말씀드리지 않았군요. 12월에 부르는 제 간증의 노래는 찬송가 204장 3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