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ent is Present

방금 나를 지나간 그 바람은 어떤 바람 됐을까

세미한 소리를 듣다

첫 설교 후기

신의피리 2007. 3. 4. 00:21
1.
어느 새벽, 교회당 뒷구석에 앉아 기도하고 있을 때, 불현듯 현재 내가 하는 기도는 '기도'가 아니라, 곧 하게 될 '설교'를 재구성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 마음 기저에는 역시 사람들로부터 '좋은 설교를 잘 했다는 칭찬을 받아야 한다'는 강박이 숨어있었다.

2.
'설교'란 무엇일까? 도대체 내가 누굴 가르칠 자격이나 있나? 하는 생각에 이르자, 구상하고 있던 모든 것이 시시하게 느껴졌다. 그리고는 곧 당당하게 물 위를 걷다 물  속으로 빠져들어가는 베드로의 공포가 떠올랐다. 나도 두려웠다. 가르칠 게 없고, 가르칠 자격이 없는 사람이 '설교자'가 되어 곧 '설교'를 하게 된다는 사실이 두려웠다.

3.
말씀을 읽다가 말씀이 나를 읽어 버린 게 있다면, 그걸 드러내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내 설교의 수준일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베드로가 물 위를 걸었다가 빠져버린 이야기를 설교했다. 설교라기보다는 사실 내가 내게 하는 다짐 비슷한 것이었다.

4.
설교문의 완성도, 호소력 있는 스피치, 전달하고자 하는 열정, 이런 것들이 모두 동원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위에 '성령의 기름부으심' 즉 성령의 능력과 나타남이 있어야 한다. 그건 내 소관이 아니기에 어쩔 수 없긴 하지만, 암튼 구하고 또 구했다.

5.
설교와 기도회를 마치고 내려오니 마음이 멍멍했다. 우선 '내공'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나치게 씌여진 문자에 집착하게 되다보니 '말'의 생동감이 부실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또한 20분이라는 짧은 시간에 하다보니 주제를 몰고가는 데 있어서 본문과 예화와 적용 간에 상호 논리적 정합성이 다소 헐겁다는 느낌이 들었다. 더 아쉬웠던 것은 신자의 일상과 마주하는 일상언어가 없었다는 사실이다. 이것이야 말로 진짜 내공이 딸리는 문제다.

6.
평소 매일매일에 있어서 성경깊이 읽기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절감하게 된다. 말씀을 읽는 게 아니라 말씀을 먹어야 한다. 먹다보면 살이 되고 피가 되는 말씀이 있고, 그러다보면 그 말씀이 내 입이 되고 삶이 되어 나오는 말씀이 있으리라. 그게 설교가 되어야 한다.  다시 한 번 다짐하건만, 평소 매일 성경을 깊이 읽고 먹자. 성경의 세계는 나의 생활세계보다 월등이 넓다. 내 모든 삶을 끌고 들어간다 하더라도 성경의 드넓은 세계에 견주면 그야말로 새발의 피다.

p.s
오늘 돌잔치 설교를 했다.
산만한 분위기, 듣지 않는 청중(들을 마음이 없어 보였다), 부실한 준비(?)
나는 허공에다 대고 도대체 뭔 말을 하고 온 것일까?
쪽팔려 죽겠다. 그 공간과 시간을 장악하지 못한 건 도대체 누구 책임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