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ent is Present

방금 나를 지나간 그 바람은 어떤 바람 됐을까

기고/TNT

주연인가 관람자인가

신의피리 2015. 5. 29. 11:50

L에게

가을이 오는가 싶더니만 먼저 태풍이 앞질러 와버렸군. 이렇게 큰 나무들이 한꺼번에 쓰러진 걸 난생 처음 봤네. 무시무시한 바람이 지나갔다네. 고요하니 안심이 되긴 하다만 또다시 북상한다는 태풍에 지레 슬쩍 걱정이 되는구나.

그래, 지난 번 자네의 말에 대해서 대답을 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자네가 그랬지. ‘왜 예배 시간에 좌석을 강요하는가 물었지. 자기가 원하는 자리에 자유롭게 앉아서 예배를 드리면 됐지, 왜 늦으면 안된다, 뒤에 앉으면 안된다 하면서 청중을 불편하게 만드는지 모르겠다고 한 자네의 말, 일리 있다고 생각하네.

어떤가? 뒷좌석에 앉으면 예배가 잘 이뤄지던가? 말씀에 집중이 되던가? 찬양과 기도시간에 몰입이 잘 되던가? 자네 질문에 대해 대답하기 전에 내 질문에 먼저 대답해 주길 바라네. 우리 몸과 마음은 따로 돌아가지 않지. 몸이 긴장하면 마음도 긴장하게 되어 있어. 앞좌석에 자발적으로 앉는다는 것은 경청하고, ‘순종하고, ‘헌신하겠다는 의지의 표명 아닐까? 하나님을 향한 갈망의 표시 아닐까? 그의 마음 중심은 이미 말씀하시는 하나님 발 밑에 두 손 조아려 앉아있는 것 아닐까? 반면, 뒷좌석은 어떤가? 앞좌석에 앉을 데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뒤에 앉는 경우를 제외하고, 스스로 자발적으로 뒤에 앉는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만남에 대한 소극적 태도는 아닐까? 혹시 그의 믿음은 늘 그 자리이거나 퇴보 중에 있지는 않을까? 우리는 공짜표로 재미없는 뮤직컬을 보러 교회에 오는 건 아니지 않는가?

하나님 말씀에 대한 굶주림과 목마름을 느끼며, 하나님 도움 없는 한 주간의 메마른 삶에 대한 회한으로 인해 하나님 보좌 앞으로 한 걸음 더 나아오는 자는, 반드시 그 영혼이 배부르게 될 걸세. 그 자리가 은혜의 자리라면 결코 타인에게 양보하기 힘들 거야.

예배드리는 청중의 대다수가 자발적으로 뒷좌석을 선호하는 예배엔 역동성이 사라진다네. 은혜에 대한 갈망이 사그라지고, 말씀은 허공을 때리고, 공동체는 윤기없어 메말라져갈 걸세. 다시 한 번 묻겠네. 자네는 예배의 주역인가, 아니면 비평하는 관람객인가.

다시 자네 처음 질문에 답하겠네. 뒤에 앉는 자네에게 강요하는 것은 옳은 일은 아닐 걸세. 그러나 간곡히 권하네. 앞자리를 사모하게나. 큰 변화가 시작될 걸세.

 

2010/09/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