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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월 제주한달살기

[제주안식8] 사랑은 아픈 바람이다

아내는 하루종일 몸이 무거워 보인다. 표정은 그늘졌다. 불안감이 느껴진단다. 오전에 짐 싸들고 나갔다가 점심때 다시 숙소로 들어왔다. 좀 쉬었다가 회복한 후, 다시 짐을 챙겨 나간다. 아내는 저녁때 김포행 비행기를 타야 한다. 

 

비가 오니 어디 걷지도 못한다. 애월 카페거리를 갔다가 기념품 가게에 들려 소소한 선물들을 함께 골랐다. 한결 마음이 가벼워진다. 아내가 집에 가기 전 '고기국수'를 꼭 먹고 싶어 했다. 두어 군데 식당을 찾아갔다가 실패한 후 세 번째 집을 만났다. 말로만 듣던 돔베고기를 먹었다. 이제 더 이상 제주토속음식을 먹지 않아도 되겠다. 충분히 만족한다. 

 

공항 근처 카페에서 마지막 시간을 보낸다. 여전히 아내의 표정이 밝지 않다. 아내는 표정이 정직하다. 밝음과 흐림이 분명하다. 얼굴 표정이 곧 마음상태고, 몸의 상태다. 

이호테우 해변, 카페 신상에서

 

제주국제공항 입국장에 아내를 내려주고 숙소로 돌아온다. 금세 다시 만날테니 가볍게 손 흔들고 내려준다. 차를 돌려 공항밖을 나올 때 광풍이 내 영혼을 흔든다. 지난 1일 제주에 내려올 때 '아픈 바람'이 불었다. 오늘 분 바람은 더 쓰리다. 앞으로 4월 29일(월)까지 나는 제주에서 혼자 수도자체험을 해야 하고, 5월이 되어야 아내를 만난다. 결혼 후 25년 동안 이렇게 오래 떨어져 있어 본 적이 없다.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다. '외로움'일까? 아니면 사랑의 정체일까? 사랑은 따뜻한 훈풍에서도 감지되지만, 칼바람 속에서도 정체를 드러낸다. 사랑은 아픈 바람이다.

 

어제는 이우교회가 설립된지 9주년이 되었다. 나는 안식년이라 그 잔치에 가지 못했다. 주일에 세 명의 성도님으로부터 카톡이 왔다. 9주년이 되기까지 동행해 줘서 고맙다는 인사였다. 오늘 아내를 보내기 직전에 성도님 한분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내 빈자리가 크게 느껴진다며 전화를 주셨다. 문자나 전화가 무척 감사하다. 전화를 끊고 나니 '애틋함'의 바람이 지나간다. 근데 마음이 살살 아프다. 사랑은 아픈 바람이다.

 

홀로 들어온 숙소는 나의 수도원이다. 고독의 바람이 분다. 그 옛날 수도사들은 어떻게 스스로 봉쇄의 공간으로 들어갔을까. 그 고독과 침묵 속에서 하나님의 영을 만났을까. 나도 이곳에서 그분의 임재를 더 깊이 체험하게 될까. 온 세상이 조용하다. 내 내면도 잠잠해졌으면 좋겠다. 하나님의 부재가 걱정된다. 사랑은 아픈 바람이 맞다. 

늘랑비 숙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