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ent is Present

방금 나를 지나간 그 바람은 어떤 바람 됐을까

기고/QTzine

우리는 그러지 맙시다

신의피리 2015. 5. 25. 22:50

QTzine [2004/11]

김종필 편집장 qtman@young2080.com

 

 

실례인 줄 알지만 군대 얘기 좀 꺼내겠습니다.

저는 강원도에서 보병으로 군복무를 했습니다. 보병이다 보니 무진장 걸었지요. 군장 걸머지고 하이바 눌러 쓰고 밤낮 걸었고 더위에 늘어지고 추위에 얼어붙은 두 다리를 이끌고서도 참 많이 걸었지요. 눈길, 빗길, 산길, 길 아닌 길, 안 다닌 곳이 없고, 어쩌다 물집이라도 잡히는 날은 영락없는 가시밭길이었습니다.


한번은 행군 도중 이런 일이 있었지요. 그날따라 몸과 마음 모두 컨디션이 최고였던지라 ‘누구든 도와주리라’ 하고 마음 먹었더랬죠. 마침 퍼지기 일보 직전에 있던 후임병이 눈에 띄었습니다. 순간, 이 친구를 돕는 명분으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모범을 보여 주겠다는 결기가 솟더군요. 아, 하나님의 때는 지금이다. 저 친구를 돕는 것이 곧 하나님의 뜻이렷다.

그러나 부푼 제 기대는 불과 몇 분이 채 지나지 않아 물거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펄펄 날 것 같던 제 두 다리가 후임병의 군장을 하나 더 걸머지는 순간 천근만근덩어리로 뒤바뀌더군요. 설상가상으로 마의 할딱고개를 숨죽이며 넘어 가는 와중엔 맞바람까지 부니, ‘하나님, 바람의 방향을 앞에서 뒤로 바꿔 주십시오. 바람이 절 밀게 해 주십시오. 사람들로부터 망신당하지 않도록 해 주십시오…’라는 기도가 절로 나오더군요. 그러나 끝내 바람의 방향은 바뀌지 않았고, 저는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그리고는 날 돕지 않은 하나님을 한없이 원망했지요. 옆에 있던 고참이 이렇게 유혹하더군요. ‘한계 상황에서 네가 암만 부르짖어 봐야 하나님은 나타나지 않아. 그걸 뛰어 넘는 건 네 의지지, 하나님이 아니야….’


바로가 히브리의 해방을 선언했다는 소식을 들은 한 젊은이를 상상해 봅시다. 그는 해방되던 날, 광야로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해 떠나는 행렬 속에서 뛸 듯 기쁜 마음으로 사람들을 돕고 있었습니다. 일주일이건 한달이건 일년이건 간에 그는 평생 그렇게 걸을 수 있으리라 여겼기에 신이 났죠. 그런데, 그의 바램과는 달리 구름기둥과 불기둥은 좀처럼 움직이질 않더랍니다. 그는 몹시 답답했고 때론 화도 났다죠. 그런 와중에 평생 걸리지도 않던 심한 몸살과 오한이 찾아왔습니다. 바람이 맹렬하게 불던 그날 밤, 몸 져 누우려던 찰나, 갑자기 불기둥이 움직이기 시작한다지 뭡니까? 출발을 알리는 나팔 소리를 들으며 황급히 그 젊은이는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이게 아닙니다. 제 몸은 지금 걸을 수가 없습니다. 제가 컨디션이 좋을 땐 멈추시더니 이렇듯 몸이 말이 아닌데 출발한다니, 왜 저를 이리 힘들게 내버려 두십니까?…’ 


내 맘 가는 곳에 하나님이 계시고, 내 뜻 세우는 곳마다 하나님의 말씀이 계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마는, 내 계획을 검토해 주시지 않는 하나님을, 내 필요를 즉시 채워주시지 않는 하나님을 참 잘도 원망하는 것 같습니다. 그 히브리 젊은이처럼 말이죠. 엄벙덤벙 대는 그 짧은 생각으로 하나님을 꿰맞추는 일, 히브리 백성들로도 충분할 것 같습니다. 우리는 그러지 맙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