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바이에른 주에 있는 베네딕트회 소속의 수도원을 방문한다. 매일 매 순간 이 기이한 순간의 이유를 생각한다. 아내가 처음 이 여행을 제안했을 때 나는 말도 안 된다고 말했다. 여러 번 권유하자 다소 짜증이 나기도 했다. 개신교 목사가 도대체 왜 가톨릭 신자들 속에 껴서 베네딕토 수도원에 가야 하는지 나는 단 하나도 납득되지 않았다. 그러다 마음이 바뀐 것은 오로지 아내 때문이다. 그토록 가고 싶어 하는 이유가 있고, 그토록 권유하는 이유가 있을 터인데, 그렇다면 지금은 잘 모르지만 믿고 함께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브라함이 가야 할 바를 알지 못하고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났다. 가야 할 이유도 잘 모르고, 가야 할 방향도 잘 몰랐지만, 그는 부르시는 분의 그 거듭되는 속삭임을 따라 미지의 땅으로 나아갔다. 어쩌면 아브라함이 걸으며 다듬어져 간 그 과정을 우리도 동일하게 겪는 과정일 지도 모르겠다.
이탈리아 몬테카시노-수비아코를 거쳐 독일 바이에른 주에 펼쳐져 있는 수도원을 하나씩 방문한다. 다양한 건축 양식을 비교해 보며 점점 건축을 보는 눈이 생긴다. 비잔틴-로마네스크-고딕-바로크-로코코-아르누보 양식으로 지어진 수도원/성당을 눈으로 보고 발로 걷고 손으로 만져본다. 건물은 그냥 멋있게만 지은 것이 아니다. 수도사들의 신앙을 고취시키고 삶의 동선 속에 매 순간 은총과 잇대어질 수 있게 해야 한다. 일하는 곳, 이동하는 곳, 기도하는 곳, 공부하는 곳, 산책하는 곳, 잠자는 곳, 그 모든 장소와 공간은 영성적 공간이어야 했다. 수백 년간 기도와 영성이 쌓인 공간 안에 들어서면 공기의 흐름이 다르고, 그 공기로 호흡하는 내 몸과 마음 자세가 달라진다. 기도와 찬송이 공간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속세와 완연히 다른 구별된 시공간이 나를 감싼다. 물론 나는 성속이원론자가 아니다. 수도원 안이 그 어떤 세속보다 더 세속적일 수도 있고, 이 세속의 한 귀퉁이가 수도원보다 더 거룩할 수도 있다. 수도원은 방문자들에게 묻는 것 같다. 왜 그리 바쁘게 사는가? 왜 오래 머물지 못하는가? 왜 이 세미한 소리를 듣지 못하는가? 왜 생각과 근심을 멈추고 침묵하지 못하는가? 무엇이 삶을 그리 망가트리고 있는데 고칠 생각을 안 하는가? 어떤 삶을 살 것인가, 어떤 죽음을 맞을 것인가?
여행 끝자락에 다다랐다. 독일의 작은 베네치아라고 불리는 밤베르크(Bamberg)를 방문한다. 오늘은 아무래도 순례객이 되긴 어렵겠다. 정신을 관람객으로 갈아낀다. 밤베르크는 레크니츠 강이 마인강과 만나는 지점과 가까운 곳에 있다. 중세 시대 지어진 건물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어서 독일 사람들이 주말을 맞아 관광하는 도시다.
도시는 수도원과 다르다. 예쁘고 아름다운 다양한 물품을 파는 상점들, 맛있는 냄새를 풍기는 식당들, 풍미 좋은 전통 맥주 바들이 도시 높은 곳에 위치함 밤베르크 대성당(Bamberg Cathedral)으로 가는 길 주변에 펼쳐져 있다. 이런 곳들은 유혹의 공간들일까, 아니면 사람들의 소중한 일상의 공간들일까. 성과 속이 적대하며 다투는 공간일까, 아니면 삶의 다양함을 보여주는 공간일까. 교회에서 경건하게 예배드리고, 저잣거리로 내려와서 사람들과 즐겁게 사는 일을 조화롭게 만들 수는 있을까. 과한 욕망으로 자신을 망가트리지 않고 적절하게 균형 잡힌 삶을 사랑으로 누릴 수도 있지 않을까.
구시청이 있었던 뷰포인트 다리 위로 가자, 세례명이 같은 세 분의 시니어분들이 먼저 와 계신다. 마치 교회 권사님 같은 연세시다 보니, 자연스럽게 권사님들 대하듯이 다가가게 된다. 세 분 모두 각각 혼자 오셨으니 멋진 배경으로 멋진 독사진을 찍을 겨를이 없다. 몇 번 사진을 찍어 드리니 좋아하신다. "목사님은 진짜 사진을 잘 찍네요. 너무 맘에 들어요. 어떻게 그렇게 잘 찍어요?" "저는 마음을 찍어드려요." 시답잖은 농담으로 대답했지만 정말 그럴 수 있다면 참 좋겠다. 사진은 치유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잘 찍힌 사진은 낮아진 자존감을 높이기도 한다. 그래서 사진작가들을 나는 치유자라고 부르곤 한다. 아내가 세 분에게 나와 사진을 찍으라고 하자, 권사님들처럼 좋아하신다. "우리 목사님과 팔짱 끼고 사진 찍으니까 정말 좋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우리 목사님 소리를 들었다. 물론 여기서 '우리'란 한국 사람들이 흔히 쓰는 복수 소유격이지만, 그래도 기분 좋은 말이다.
밤베르크에서 한 시간 정도 시골 밀밭 길을 달려 가장 기대 되는 수도원, 뮌스터슈바르작(Munsterschwarzach Abbey)에 도착한다. 가장 현대적으로 지어진 이 수도원은 또한 현재 가장 왕성한 활동을 하는 수도원이다. 수도원이라기보다는 동네 성당처럼 보인다. 무엇보다도 이 수도원엔 유명한 안셀름 그륀(Anselm Grun) 신부님이 있는 곳이다. 혹여라도 만날 수 있을까 싶지만, 전 세계에서 그분을 만나러 오는 분들이 많아서 사전 면담을 예약하지 않으면 쉬이 만날 수 없는 분이다. 여기저기 사진과 서점 진열대에 있는 그분이 쓰신 책들은 실컷 볼 수 있다. 나이 마흔이 넘어 점점 열정이 식고 무기력의 나날을 보내던 즈음, 아내가 아주 얇은 책 하나를 건넸다. 안셀름 신부님이 쓴 <내 나이 마흔>이었다. 영혼의 양식 한 사발 마신 느낌이었다. 다시 일어서서 조금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었다. 이 수도원에서 그 힘을 또 얻을 수 있을까.
순례객들은 성당 안에서 기도하고 사진 찍느라 바쁘다. 아내는 자리 잡고 기도한다. 기이하게도 아내야말로 이번 베네딕토 수도원 순례를 아마도 가장 많이 준비했을 것이다. 순례 여행의 목적은 '수도원 방문'이다. 베네딕토가 쓴 베네딕토 규칙서가 어떻게 수도원의 공간과 전례 속에서 살아 있는가를 목도하고, 그 현장에서 그 체험을 건져 올리는 일이다. 그것은 사모하는 이에게 선물로 주어진다. 아내는 그것 때문에 이곳에 왔고, 나까지 데려왔다. 어린아이처럼 들뜬 아내는 이 공간 저 공간을 빛의 속도로 이동하며 머물고 기도하고 사진을 찍는다. 어느새 떠날 시간이 왔다. 금세 지나갔다. 수도원 대문 밖으로 나와 버스로 이동하려고 하자 아내는 급격히 다운된다. 가장 기대했던 곳이다. 어린아이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왔다. 그런데 너무 짧았다. 전문가 가이드의 설명도 없다. 안셀름 신부님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 회랑도 못 가봤다. 머물고 머물며, 잇대고 잇대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이러다 뜰만 밟고 가게 생겼다. 출발 시간까지 버스에 타지 못하던 아내는 실망을 너머 깊이 좌절한다. 몸에 피부발진이 생겼다. 마음속 상심이 고스란히 피부에 나타났다. 이렇게 순례가 끝나면 안 되는데, 아내도 나도 마음이 어두워진다.
이 또한 주님의 깊고 오묘한 섭리일까, 다 다다른 듯했는데, 어쩌면 지금부터가 진짜 순례로의 초대일까.
숙소로 들어왔다. 저녁식사까지는 아직 시간이 있다. 방에서 쉬기엔 너무 아깝다. 짐도 풀지 않고 곧장 밖으로 나가 네카르술름(Neckarsulm) 마을 길을 걷는다. 지금은 박물관이 된 옛 성터, 다운타운, 공원, 목적없이 그냥 말없이 걷는다. 우울한 아내의 발걸음에 힘이 없다. "주님, 이렇게 끝내실 건 아니시죠? 새로운 전환을 맞게 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