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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나를 지나간 그 바람은 어떤 바람 됐을까

순례, 그 땅을 걷다

[수도원기행4] 작고 평범하고 단조로워서 좋은 것

신의피리 2024. 5. 19. 13:21

시차 적응 중이다. 첫날은 새벽 1시에 깼고, 둘째 날은 새벽 2시, 셋째 날은 새벽 4시에 깼다. 몸이 아주 정직하게 반응한다. 새벽에 가장 정신이 맑다. 글 쓰기 좋은 시간이다. 고요한 새벽, 글 쓰기를 마치고, 아직 글 쓰고 있는 아내를 방에 두고 혼자 밖으로 나선다. 현관문을 열고 나가니 생각보다 춥다. 다시 들어가려는데 문이 열리지 않는다. 아직 수도원 관리인은 출근 전이다. 이왕 이리 되었으니 걷는 수밖에 없다. 스콜라스티카 수도원 밖으로 나오니 수비아꼬 수도원까지 갈 수 있는 이정표가 나온다. 

걷는다. 이른 새벽에 홀로 ‘거룩한 동굴’(Sacro Speco)로 올라간다. 기도하기 위해 동굴로 들어간 이, 동굴로 들어간 이의 말씀을 들으러 올라가는 이들, 그들이 걸어 올라간 자연 그대로의 길로 나도 걷는다. 

수비아코 수도원


처음으로, 관광객이 아니라 순례자가 된다. 순례는 앞서 걸어간 이들의 길을 따라 걸어보는 일이다. 그 발자국에 나의 발이 포개질 때 드문드문 시공간을 넘어서는 연결 문이 열린다. 그 안으로 잠깐 들어갔다 나오면 마음이 달라지고 생각이 달라지고 삶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질 때도 있다. 그런 경험을 위해 순례를 나선다.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마가복음 1:35)


새벽, 한적한 곳을 걸으며 베네딕토 성인을 생각한다. 그를 생각하다 그가 걸으며 생각한 예수를 생각한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한적한 곳으로 걸어가 하늘을 향해 기도하시던 예수님, 그분을 따라 한적한 동굴에서 3년간 기도생활에 전념한 베네딕토. 나도 새벽에 기도를 향하여 한적한 곳으로 홀로 걷는다. 기도하는 삶, 기도로 충만한 삶, 기도 그 자체인 삶이고 싶다.
 




숙소를 나와 오전엔 인근 작은 마을, 아필레(Affile)를 방문한다. 베네딕토가 처음 기적을 행한 곳이라 한다. ‘기적’이란 단어를 듣자마자 의심하는 자아의 에너지가 부정의 힘을 발산키신다. 어쩔 수 없다. 나라는 사람의 본능이다. 그러나 모든 기적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서 필요하시면 특별한 사람들의 삶에 개입하시곤 한다. 어쩌면 베네딕토의 기적은 사실일 것이다. 아주 작고 작은 이탈리아의 시골마을을 걷는다. 금세 광장으로 진입한다. 광장에 나와 카페 에스프레소를 마시고 담배를 피우며 이야기에 빠진 동네 할아버지들, 광장을 뛰어노는 아이들이 보인다. 광장 한켠에는 오래된 성당이 있고, 사이프러스 나무들이 마을을 둘러싸고 있다. 이 모든 장면들은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하는 여러 영화에서 보던 장면이다. 영화의 세트장을 방문한 것같은 기분이 든다. 


광장에 앉아 커피 한잔 못한 게 조금 아쉽다. 이국적인 낯선 환경을 잠시 지나는 것은 참 좋은 선물이다. 여기 사는 이들에겐 어쩌면 지독히도 평범하고 지루한 단조로운 일상일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에겐 그 단조로운 일상조차 선물이 된다. 그렇다면 그 반대도 마찬가지 아닌가. 내 단조로운 일상은 패턴이 되고, 어쩌면 특유의 풍채를 지닐지도 모른다. 비록 내 눈에 내 삶은 지독히 평범할지라도, 삶의 순례를 떠나 내 곁을 지나는 누군가의 눈에는 내 모습과 내 삶의 이야기는 선물이 될지도 모른다.

가톨릭 신도님들 눈에 개신교 목사 부부는 어쩌면 그런 존재가 될 지도 모르겠다. 나이 지긋하신 한 자매님은 우리 부부와 이야기를 나누나 연신 눈물을 흘리신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을 영성으로 살아내려 분투한 우리 부부의 평범한 모습이, 잠시 스쳐가는 누군가에게 편안한 위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냥 정중하게 질문을 던지고, 이야기를 진곡하게 들어들이는 것밖에 하지 않더라도, 그 안에 생각지도 못한 위로와 치유의 선물이 주어지기도 한다. 
 


 

오후엔 파르파 수도원(Abbazia di Farfa)으로 이동한다. 내 두뇌를 좀 쉬게 하려는 주님의 뜻(배려?)일까. 가이드 수신기가 방전됐다. 실은 너무 많은 새로운 정보와 지식으로 귀와 마음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긴 하다. 마침 늦게 온 이태리 팀과 더블로 진행된다. 50여 명이 훨씬 넘는 많은 인원이 이태리 가이드를 따라 좁은 수도원을 걷는다. 일찌감치 듣는 걸 포기한다.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하니 갑자기 수도원 전체가 침묵한다. 아무도 없는 고요한 곳에선 수도원 공간 어디선가 소리가 들리는 듯한데, 수많은 인파 속에서 알아듣지 못하는 이태리 남자의 빠른 목소리가 지배하니 내겐 소리가 묻힌 느낌이다. 

화내지 말자. 억울해하지 말자. 그냥 받아들이자. 모르면 모르는 대로 수용하자. 시간과 돈을 아까워하지 말자. 역사와 단절되었다고 시간 낭비는 아니다. 일단 눈으로 담고, 나중에 반추해보면 된다. 인터넷에는 수많은 지식과 정보 아닌가.


파르파 수도원은 일단 이번 순례 여정에선 괄호 안으로 넣는다. 이 수도원의 역사와 건축양식, 수도원만의 특별한 영적 자산 등에 대해선 알 수가 없다. 지식에 욕심이 많아서 조금 억울하긴 하지만, 그래도 괜찮다. 그럴 수도 있다. 대신 수도원 앞 작은 골목들이 예쁘니까 그것을 누리는 것으로 만족하련다. 수도원 기행이라는 목적과는 빗나갔지만, 좀 삐뚜루한 입장이 되면 되려 안 보이던 것이 보일 때도 있다. 수도원 앞 작은 동네 골목을 왔다갔다 걷다 보니, 마치 중세 시대에 온 듯한 느낌이 든다. 상상력이 활짝 펼쳐진다. 


드디어 에스프레소 커피잔을 찾았다. 결국 사게 될 줄 알았는데 아내가 매의 눈으로 찾아냈다.

 
 




파르파 수도원이 있는 이 곳은 너무 예쁘고 사랑스러운 동네다. 그중 제일 예쁜 것을 하나 골라보라 하면, 의.외.로! 카페 주인장님! 중년의 남자분인데, 말 그대로 꽃미남, 꽃중년이다. 커피보다 부지런히 주문을 받고 커피를 내리는 이태리 꽃중년의 바리스타에게 자꾸 시선이 끌린다. 저 외모에 이런 시골에서 커피를 내리고 있다니! 나도 얼굴이 맑고 미소가 괜찮은 중년이 되고 싶다. 

신부님께서 순례팀에게 커피를 대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