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ent is Present

방금 나를 지나간 그 바람은 어떤 바람 됐을까

책에서 만난 문장

케빈 밴후저, 불안이라는 질병

신의피리 2024. 4. 29. 07:38
우리는 모두 20세기와 21세기의 나쁜 경험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다. 불안 치료제가 넘쳐나며, 불안의 유형 또한 그러하다. 미국인의 40퍼센트가 불안 장애로 고통당하고 있으며, 항우울제나 항불안제(예를 들면, 프로작, 팍실, 졸로푸트)를 처방받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약으로 얻은 평정은 "'평강'이 없으나 평강이 있다 함"(겔 13:10)과 다름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이데거가 불안이라고 불렀던 것과 가장 근접한 의학 용어는 아마도 범불안장애(generalized anxiety disorder)일 것이다. 하이데거에 따르면, (거미나 대중 연설처럼 구체적 대상에 대한 두려움인 공포증과 달리) 불안을 촉발하는 특별한 자극은 존재하지 않는다. 불안이란 절망의 경계에 서 있는 영적 상황이며, 구체적인 느낌이라기보다는 기분이다.
'기분'이란 인간이 세계-내-존재를 경험하는 방식을 뜻하는 하이데거의 용어다. 기분은 사상이나 느낌보다 더 심층적이다. 기분은 하나의 존재 양식, 주어진 상황 속에서 자신을 의식하는 방식, 세계와 조율되는attuned 방식이다. 우리가 세계와 조율되는 방식은 어떤 종류의 음악 안에 휩싸여 있는가에 달려 있다. 우리는 어떤 세계 안에 있는가? 기근이 진행 중인 세계인가? 전쟁이 진행 중인 세계인가? 경제가 호황인 세계인가? 불황인 세계인가? 하이데거는 불안이 인간 됨에 대한 참된 인식을 반영하기 때문에 인간의 근본 기분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제한된 시간과 에너지를 지닌 유한한 존재지만, 무한한 가능성을 상상하고 무한한 희망을 품는다. 하지만 인간 됨에 대해 정직하게 평가할 때 불안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실존에 관심을 기울이며, 우리의 실존은 곧 멈출 것이다. 하이데거에게 진정한 인간 됨이란 죽음을-향해-존재함이다.

케빈 밴후저, 오언 스트래헌, [목회자란 무엇인가], 182-183.

 

하이데거의 진단에 동의한다. 알아듣겠다. 캐빈 벤후저는 이에 더하여 밀레니엄 세대들에게는 불안보다 '나른함'(또는 게으름, 관심없음)을 영혼의 질병으로 본다. 목회자는 이 문제와 씨름하는 사람들이다. 목회자는 이러한 죽음에 이르는 병을 진단하고 처방하는 사람들이다. 이를 담대히 사역에 녹여내려면 먼저 단번에, 그리고 나날이, '죽음을-향해-존재함'에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워짐을 경험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내 블로그의 제목/정체성과 하이데거의 분석이 맞닿아 있는 듯하다. '아픈 바람'은 '죽음을-향해-존재함', 즉 불안이라는 기분을 인식하는 순간이다. 인식만으로도 큰 진전이다. 또렷하게 언어로 붙들되, 전혀 새로운 언어인 복음 안에서 백신을 투여하는 실험을 성공해 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