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ent is Present

방금 나를 지나간 그 바람은 어떤 바람 됐을까

안식월 제주한달살기

[제주안식27-1] 일몰의 아름다움

신의피리 2024. 4. 27. 21:38

제주 생활 27일째다. 내가 얻은 숙소는 서향이다. 제주 서쪽 바다로 해가 떨어지는 장면을 숙소 창으로 볼 수 있다. 안타깝게도 한 번도 해가 바다 뒤로 넘어가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서너 번 정도 비슷한 장면을 봤다. 해가 바다를 향해 서서히 내려앉았는데 아쉽게도 구름인지 먼지인지가 바다보다 먼저 해를 삼켜 버렸다. 나름 멋있었다. 그러나 아쉬웠다. 

 

오늘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 종훈 형제, 동조 형제를 배웅하고 차를 렌트해서 숙소로 돌아오는 길, 오랜만에 운전하니 좋았다. 일부러 서북쪽 해안도로로 들어가다 무심코 하늘을 봤다. 맑은 하늘에 구름 한 점 없고, 태양이 엄청난 빛을 발산하며 바다를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그 장면을 계속 바라보며 해안도로를 달린다. 협재해수욕장에 잠시 차를 주차하고 바다로 나간다. 아직 해가 떨어지려면 40여분 남았다. 해안가로 내려가서 바다와 해를 주시한다. 

협재해수욕장

 

일몰을 보려고 사람들이 모여든다. 외국인들도 눈에 띈다. 호젓하게 일몰을 보고 싶어, 숙소 근처 해거름전망대로 간다. 거기엔 사람을 없을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도 한 이십여 명이 삼삼오오 모여 있다. 젊은이들이 너무 행복하게 웃으며 사진을 찍는다. 50대 중년 부부는 삼각대를 세워두고 온갖 포즈를 다 취한다. 주변 사람들 눈치를 슬거머니 보더니 0.3초 정도 키스를 한다. 보기 좋았다. 이제 내 시야는 오로지 해만 바라본다. 해가 바다와 만나기 직전 그 좁은 사이로 배 한 척이 지나간다. 멋진 연출이다. 

제주 해거름전망대에서

 

분명히 선물이었다. 예상치 못했는데, 집으로 돌아가기 이틀 전 저녁, 선물을 받았다. 미세먼지 없고, 구름 한 점 없는 날이었다. 다시 내 인생의 모토가 내 마음에 울려 퍼진다. 

 

"Present is present" 
오늘이 선물이다.

 

태양의 움직임이 보였다. 광활한 우주 속의 한 점에 불과한 태양이지만, 광활한 지구의 한 점에 불과한 내겐 상상 불가능한 크기의 태양이다. 태양의 크기를 생각한다. 그리고 태양계의 크기를 상상한다. 그리고 다시, 은혜계의 크기를 상상한다. 그리고 다시 한번,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은하계들을 상상한다. 이 얼마나 광대한가. 그에 비하면 나는 얼마나 작은 존재인가. 언젠가 내 생명의 빛은 꺼질 것이다. 우주의 일부로 돌아갈 것이다. 먼지가 될까. 무의 세계로 돌아갈 것인가. 아니면 달라스 윌라드가 위트 있게 상상한 것처럼 이 광활한 우주의 어떤 한 행성에서 주와 함께 왕노릇 할 것인가. 나는 내 존재를 구성하는 내 육신이 흙으로 돌아갈 것을 안다. 많은 이들의 몸이 어떻게 뜨거운 불 속에서 한 줌의 재가 되는지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내 영혼의 존재를 믿는다. 감지하기 때문이다. 내 영혼은 불멸한다. 어떤 형태인지 어떤 방식인지 어떤 의식인지 모른다. 그러나 주와 함께 있을 것이다. 태아가 엄마 뱃속에서 그 밖을 몰랐을 때처럼, 나 역시 이 육신의 장막이 무너지기 전까지 사후세계를 경험적으로 모른다. 그러나 듣는다. 이 세계 밖 '하늘'의 영역에서 나는 주를 뵐 것이다. 그렇게 믿는다. 그분을 만나기 위해 나는 모든 불안과 스트레스의 안개와 암흑과 싸울 것이다. 나는 현존할 것이다. 나는 순간에 깨어 있을 것이다. 지나간 과거에 매이지 않을 것이다. 다가올 미래에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다가올 것은 다가오는 대로, 있는 그대로 맞을 것이다. 나는 지금 숨을 쉬는 존재로 있다. 나는 지금 현존한다. 지극히 작은 한 점에 불과한 나는 우주를 지으신 분의 사랑받는 존재다. 그분이 나를 존귀히 여길 것이다. 그분 안에서 나는 지금을 선물로 받을 것이다. 그러니 서운해하지 말자. 불안해하지 말자. 두려워하지 말자. 주어진 그 순간을 살자. 그 모든 순간 안에서 임재하시는 하나님의 영의 힘으로 감사하고, 만족하고, 기뻐하고, 사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