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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안식18] 차귀도에 가봐야 한다

신의피리 2024. 4. 18. 18:29

오늘도 미세먼지 초미세먼지 아주나쁨이다. 이틀 연속 숙소에 머물 수 없다. 다행히 오늘 하늘엔 구름 한 점 없다. 마스크를 쓰고 나간다. 오늘은 차귀도(遮歸島)에 들어간다.  차귀도는... 네이버 지식백과사전에 나온 설명에 의하면, 다음과 같다.

면적 0.16㎢로 제주특별자치도에 딸린 무인도 가운데 가장 크다. 고산리에서 해안 쪽으로 약 2Km 떨어진 자구내 마을에서 배를 타고 10여 분 걸리는 곳에 있는 무인도이다. 죽도·지실이섬·와도의 세 섬과 작은 부속섬을 거느리고 있다. 깎아지른 듯한 해안절벽과 기암괴석이 절경을 이루고 섬 중앙은 평지이다.

 

신평리에서 용수리 방향으로 걸을 때, 모슬포항에서 고산리 방향으로 걸을 때 계속 차귀도가 눈에 들어왔다. 뉴질랜드 남섬이 유독 많이 연상되는 섬이라, 꼭 들어가 보고 싶었다. 

 

점심부터 해결한다. 고산리에 '제주돔베막국수'집이 있다. 숙소에 보니 인근 추천식당으로 나온다. 

제주돔베비빔막국수

고기를 예술적으로 삶은 것 같다. 내가 요리도 모르고 미각도 발달하지 않았지만, 이건 보기에도 좋고, 입안에서도 매우 흡족한 맛이 났다. 줄 서서 먹는 집이라고 했는데, 오늘은 사람이 거의 없다. 

 

차귀도는 3시 예약이다. 시간이 남는다. 수월봉으로 걷는다. 예전, 2013년도에 채윤이 현승이 데리고 차귀도에서 잠수함을 탔다. 그때 바람 더 할 수 없이 심하게 부는 날 수월봉을 올랐다. 바람에 머리가 날리는 채윤이 사진이 너무 웃기고 인상적이었는데, 거기서 똑같이 사진을 한번 찍어본다. 한 장소에서 사진을 찍고, 세월이 흘러 그 장소에 가서 또 사진을 찍을 때 人生이 감지된다. 歲月이 느껴진다. 채윤이를 데리고 와서 찍었어야 했다. 다음에 가족들과 꼭 다시 와보고 싶다. 

수월봉 2013년 그리고 2024년

 

수월봉은 화산폭발로 인한 지층의 형성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곳이란다. 수월봉 아래쪽을 걷는다. 엉알해안 방향은 낙석이 떨어져 오늘은 막아놔서 아쉽게도 걷지 못했다. 수만 년 전으로 돌아간 기분이 든다. 

수월봉 아래, 엉알해변 입구

 

원래 차귀도는 3시 예약인데, 1시간 일찍 도착했다. 2시 10분전인데 그 배를 탈 수 있다 한다. 얼른 뛰어가서 배를 탄다. 배 타는 곳으로 가는 길에 오징어를 말리고 있다. 신혼여행 때 아내와 제주도를 한 바퀴 돌았다. 성산일출봉이 보이는 쪽에서 아내는 달력에 나오는 모델 포즈를 하고 사진을 찍었다. 그 근방 해변에 오징어가 따가운 햇볕 아래에서 빨래처럼 펄럭이고 있었다. 그리고 제주 반대쪽인 이곳 차귀도 앞 수용횟집에서 밥을 먹었다. 물론 나는 기억이 날듯말듯 한다. 아내가 수용횟집이 있는지 찾아보라고 했다. 수용횟집은 없어졌다. 대신 수용횟집배낚시 매장만 있다. 

차귀도 선착장

 

배에는 한 50여명이 탔다. 단체관광객 2팀이고, 나만 혼자 들어간다. 배에서 내리자마자 선착장에서 혼자 뛰어 올라간다. 사람들 많은 것은 질색이다. 내가 무리 속에 있을 때는 주위 사람 신경 안 쓰고 왁자지껄 떠들면서 그 반대로 혼자일 때는 떠드는 사람들에게 눈을 흘긴다. 못된 버릇이다. 

 

차귀도 선착장에서 계단으로 오른다. 폐가가 하나 나온다. 그 뒤로 차귀도의 전경이 펼쳐진다. 바람이 분다. 기분이 좋다. 아름답다. 2015년도에 갔었던 이스라엘의 마사다 요새가 떠올랐다. 황량한 언덕 위에 바람이 분다. 사방으로 푸른 바다가 펼쳐졌다. 지난달에 보았던 뉴질랜드 남섬 못지않게 아름답다. 단체관광객들이 도는 왼쪽방향과 반대로 나는 홀로 오른쪽으로 돌아간다. 차귀도 정상에 선다. 좋다. 아내에게 페이스타임으로 전화를 건다. 받지 않는다. 아쉽다. 참 이상하다. 환상적인 절경을 볼 때마다 혼자 오롯이 그 아름다움 속에 머물지를 못하고, 아내 정신실이 떠오른다. 여기에 같이 있어야 하는데, 이 근사한 풍경을 배경 삼아 사진을 찍어 줘야 하는데, 그러지 못함이 아쉽다. 셀카도 찍고, 풍광도 찍지만 허전하다. 

 

몹쓸 셀카 사진들

 

 

너무 아름다운 풍광이어서 사진을 추릴 수가 없다. 언젠가 달라스 윌라드가 어느 책에서 한 말이 생각난다. 정확한 문장은 기억나지 않지만 대강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그가 남아공에 간 적이 있었다. 지인과 함께 남아공 해안가에 갔단다. 그는 그곳의 풍광에 매료됐다. 그때 그는 이렇게 멋있는 풍광을 하나님 혼자 보고 계셨냐고 말했다고 했다. 그와 관련하여 뭔가 건져올린 통찰이 있는데 그건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냥 나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아름답고 멋진 풍광을 하나님 혼자 오랫동안 보셨군요. 지금이야 많은 사람들이 보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지구 곳곳에 이루 말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가진 지형들,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들, 그러나 주님께서는 언제든지 보고 누리고 계시겠군요. 내가 못 본다 해서, 내가 가보지 않았다고 해서, 그런 아름다움이 없는 것은 아니겠군요. 

 

아름다운 곳들이 어딘가에 있다. 지구 곳곳에 절경을 자랑하는 곳들이 있다. 내 평생 얼마나 가보겠는가. 나중에 천국에 가면 여태 보지 못한 절경을 보게 될까. 천국에서는 내가 원하는 마음이 있다면 어디든 가 볼 수 있을까. 내가 원하기만 하면 어느 때 어느 장소라도 가 볼 수 있을까. 1972년 음력 4월 5일 내가 태어나던 순간에도 가 볼 수 있을까. 1597년 이순신 장군이 조선 수군 12척을 가지고 명량에서 왜선 130여척을 대파하던 그 장면도 볼 수 있을까. 1521년 보름스에서 마틴 루터가 종교재판에서 당당하게 자신의 양심과 자유를 선언하던 것도 볼 수 있을까. 아니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던 그 순간도 볼 수 있을까. 갑자기 보고 싶은 것이 많아졌다. 분명 볼 수 있을 것이다. 천국에 가고 싶다. 

 

배에서 내리자 선착장 앞쪽에 작은 매장들에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있다. 오징어를 판다. 맥반석에 구운 5천원 짜리 오징어 한 마리를 샀다. 질겅질겅 씹으며 귀가한다. 

차귀도 오징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