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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나를 지나간 그 바람은 어떤 바람 됐을까

안식월 제주한달살기

[제주안식16] 어떤 바람

신의피리 2024. 4. 16. 22:20

다들 용머리 해안에 꼭 가보라 했다. 마침 모슬포 항에서 식사를 한 김에 산방산 아래 용머리 해안으로 간다. 날씨가 맑다. 바람이 살살 분다. 바람이 조금이라도 불면 개방을 하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 걸어가면서 기도한다. "주님, 오늘 같은 날, 제게 선물 한 번 주시는 건 어떠신가요? 용머리 해안길 한 번 가보고 싶어요."

사계해안에서 바라본 산방산

 

큰 기대를 가고 갔지만 오늘은 개방하지 않는다는 팻말이 걸렸다. 많은 사람들이 발길을 돌린다. '그렇지. 내가 왜 이런 걸로 기도했을까?' 병자들을 위한 기도, 한반도의 평화를 위한 기도, 자녀들을 위한 기도 등은 잘하건만, 정작 나 자신을 위해서는 구체적으로 잘 기도하지 않는다. 내가 모든 상황에서 하나님의 임재 안에 머물기를 원하고, 그분의 나라와 뜻을 구하며 사는 그 모든 분투가 다 기도인데, 이거 해주세요, 저거 해주세요 하며 기도하는 건 영 내 마음에 차지 않는다. 그런데 나는 어짜자고 그런 초등학생 같은 기도를 했던가. 하나님께서 확실히 주실 것이라는 한 점 의심 없는 마음으로 믿고 기도하지 않아서일까? 아니면 안 들어주시는 것이 내게 은혜가 되기 때문일까? 무수한 사람들이 용머리 해안길을 걷고자 했으나 바람 때문에, 너울성 파도 때문에 개방하지 않아서 못 보고 돌아가는데, 그런 걸로 무슨 기도 테스트란 말인가. 너무 부끄러운 마음에 세월호 10주기를 맞은 가족들을 위해 잠시 기도한다.

 

용머리 해안

 

용머리 해안길로 내려가진 못하고, 하멜 기념탑 쪽으로 올라간다. 멀리 송악산이 보인다. 2020년 8월이었던가? 코로나가 한창일 때, 3박4일간 홀로 제주도에 내려왔다. 하루에 올레길 한 코스씩 걸었다. 30도 더위에 마스크를 쓰고 걸었다. 이유도 없었다. 무슨 고난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종아리가 퉁퉁 붓도록 스스로를 고난의 상황으로 밀어붙이며 걸었다. 마지막 날 10코스를 걸었는데, 쓰러지기 일보 직전에 마지막 송악산 둘레길로 접어들었다. 절벽 위를 걸었다. 드넓은 바다에 넋이 나갈 뻔했다. 신발과 양말을 벗고, 평상에 누웠다. 좋았다. 영혼 이곳저곳에 난 상처들이 싹 아무는 느낌이었다. 분명 멋진 풍광은 치유적이다. 오늘 그런 걸 살짝 기대했지만, 아쉽게 발길을 돌린다. 

송악산 둘레길, 2020/08/19

 

사계리에 온 이유가 있다. '어떤 바람'이라는 작은 서점이 목적이다. 오래 전 페이스북에서 본 듯하다. 내가 직접 아는 분은 아니었지만, 내가 아는 여러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아는 분이, 서울에서 제주로 낙향해서 작은 서점을 열었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서점 이름이 '어떤 바람'이었다. 홍순관의 노래 가사였다. 20대 어느 날 그 노래, 그 가삿말에 마음을 빼앗겼다. 팔당대교 위로 자전거를 타고 나가다 멈춰 서서, 그 노래를 듣고 불렀다. 그때 그 노래는 내 삶의 영성형성의 토대가 되었다. 

 

어떤 바람
- 호시노 도미히 / 홍순관 곡.

바람은 보이지 않지만
나무에 불면
녹색바람이 되고
 
꽃에 불면
꽃바람 된다

방금
나를 지나간 그 바람은
어떤 바람 됐을까

 

 

바람이 지나가면 흔적이 남는다. 황폐함이라는 감정이다. 사람과 상황 속에서 시도 때도 없이 바람이 나를 치고 지나가고 내 존재에 황폐함이라는 자국이 남는다. 그것은 상처가 아니다. 영성을 매만질 수 있는 기회다. 나라는 존재가 나답게 영글어지는 순간이다. 그것을 인식하고, 인정하고, 두루두루 살펴보고 성찰하면, 성장의 문이 활짝 열린다. 나를 나답게 꽃 피우게 하는 것이다. 

독립서점 '어떤 바람'

 

내가 좋아하는 저 시의 제목을 서점 이름으로 삼은 분이니, 필경 나름 뭔가 통할 만한 분이 아닐까 싶었다. 가벼운 기대감을 안고 서점에 들어섰다. 아뿔사, 10분도 되지 않아 서점 폐장 시간이 됐다. 여성 한 분이 아쉽게 인사하고 나간다. 나만 남았다. 나갈까 말까 고민하다, 평소 내 성격 답지 않게 여주인분께 대뜸 물었다. 나의 지인들 여러 명이 이곳을 알고 왔다 갔는데, 혹시 누구 아시는가, 누구 아시는가 하며 물었다. 그런데 뜻밖의 인물에서 공통점이 생겼다. 처남 정운형 목사다. 그분들이 서울에 있을 때 새맘교회를 다니셨다 한다. 주인 내외분이 정운형 목사를 좋아하신 듯싶다. 

 

매장 문을 닫고, 청귤 쥬스 한잔 대접하신다. 나도 얼른 책 한 권 집어 들고 계산한다. 매장 뒷문으로 안내하여 나가니 작은 뜰이 있고 또 한 채의 집이 있다. 거기가 거처하는 집이라 한다. 마당에 있는 나무들을 일일이 설명해 주신다. 그리고 담장 옆 대나무를 따라 더 안쪽 뒷마당으로 가니 300여 평의 넓은 뜰이 나타난다. 원래 시골에서 태어나 시골에서 쭉 자란 농부의 외모를 지닌 이용관 책방지기님께서 직접 마당 구석구석에 심긴 식물들을 설명해 준다. 이름이 무엇인지, 꽃인지 잎인지, 언제 열매가 맺히는지, 너무 신나게 설명해 주신다. 그냥 하나의 자연적 존재로서의 사물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었다. 생명이자 가족과 친우같은 존재들처럼 여기며 소개해 준다. 7년 전 손바닥 만한 작은 것을 심었더니 그새 거대한 나무들이 되었다는 것이다. 애정과 환희가 물씬 풍기는 목소리다. 이름을 들으니 대개 다 몇 번씩 들어 알고 있는 것들이다. 그러나 아마 이 집을 나가는 순간 나는 다 잊을 것이 분명하다. 

 

뒷마당

 

어떻게 제주에 내려와 정착하게 되셨는지 물었다. 그동안 내가 들었던 다른 분들과 대동소이하다. 너무나 바쁘고 여유없는 삶을 살다가 잠시 제주에 쉬러 왔단다. 그리고 중대 결심을 하고, 내륙의 삶을 다 정리하고 제주에 정착했다. 그래서 지금 마음이 어떠시냐 물었다. 연신 평화로운 얼굴이다. 제주생활 7년 가족같은 리트버스 산방이와 한바탕 씨름을 하며 약을 올린다. 직접 마트에서 유정란을 사서 37도 온도를 맞춰 정확하게 21일만에 부화해서 키우는 닭 5마리들도 반려동물들이다. 내 평생 닭들조차 사랑스럽게 보이긴 처음이다.  

 

내가 아는 수도권 사람들은 너무 바쁘다. 일이 너무 많고, 스트레스 받는 일도 많다. 마음의 평화 없이 산다. 사람다운 삶이 아니다. 여유와 여백이 없다. 그런 다람쥐 쳇바퀴 도는 삶을 살다 용감하게 그 굴레를 나와 평화롭게 사는 이들이 제주에 많다.  

 

대화하느라 버스 시간을 여러번 놓쳤다. 더 있으면서 대화하고 싶었지만 벌써 긴 시간 민폐를 끼치고 있는 중이다. 예고도 없이 낯선 이가 불쑥 들어가 두어 시간을 죽치고 앉아 있지 않았던가. 버스 시간을 맞춰 나온다. 책방지기님이 버스 정류장까지 나오신다. 맑고, 겸손하고 당당하고 따뜻한 사람이라고 처남이 전한다. 정말 그런 분이다. 

책방지기님만 바라보는 산방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