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ent is Present

방금 나를 지나간 그 바람은 어떤 바람 됐을까

책에서 만난 문장

제럴드 싯처, '아케디아'에 관하여

신의피리 2024. 4. 16. 10:55
"그러므로 기도와 노동의 일과에 안주할 때 우리가 직면할 수 있는 가장 큰 유혹이 '아케디아'(acedia)라는 것은 놀랍지 않다. 아케디아는 쉽게 번역하기 힘든 헬라어 단어로 1,600년 전에 에바그리우스가 수도자들에게 지적했던 것이다. "나태"는 게으름을 뜻하므로 옳지 않은데, 이는 아케디아의 의미라기보다는 결과다. 아케디아는 권태, 불안, 부주의로 정의하는 것이 좋다. 일과로 인해 우리는 성급해질 수 있다. 그래서 신앙 성숙과 삶의 풍성한 수확에 이르는 더 쉽고 빠른 길이 있기를 바란다. 또 지름길을 택하기 원한다. 그래서 도중에 즐거운 일을 찾고, 빠르게 발전하는 과정이 눈앞에 펼쳐지기를 기대한다. 단조로움과 지루함에 싫증 나기 충분할 정도로 오랫동안 기도와 노동의 일과를 따를 때, 수도원에서 '정오의 마귀'로 알려진 아케디아는 중간 단계를 그만두라고 유혹한다. 음악가들은 음계 연습에 싫증이 날 때, 운동선수들은 자유투 던지기나 왕복 수영을 충분히 했을 때, 학자들은 필요한 연구 조사를 철저히 하느라 소진되었을 때, 이 문제와 싸운다. 그러나 돌아가는 길은 없다. 아무리 지루하고 싫증이 나더라도 일과는 필요하다. 우리 안에 있는 모든 것을 그만두고 싶어질 때 조금 더 노력하여 지속하면 숙달이 찾아온다. 이것은 음악, 운동, 학문, 이 세상의 다른 일들도 마찬가지다. 영적 생활도 그렇다."

제럴드 싯처, <영성의 깊은 샘>, 174-175.

 

40대에 접어든 후 뭔가 달라진 것을 느꼈다. 처음엔 '열정'의 문제라고 여겼다. 처음의 열정이 잘 생기지 않았다. 다시 불을 붙여보려고 무수한 고투의 시간을 가졌다. 잠시 불이 붙는 듯했지만 이내 금세 꺼지고 말았다. 불꽃의 온도가 달라질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역 초기엔 강렬한 강불이 필요했다면 이젠 중불로 줄여야 한다. 아니 그게 맞다. 그렇게 생각한 지 10여 년이 흘렀다. 갱년기, 중년이라는 말로 삶을 정당화해 본다. 그 와중에 리처드 로어의 <위쪽으로 떨어지다>를 읽었다. 문제의 원인도 알게 됐고, 삶의 방향과 방법도 알게 됐다. 끝없이 되풀이되는 가까운 이들과의 갈등도 알아졌다. 그때부터 서서히 떨어지는 쪽을 택했다. 추락하는 일이 처음엔 두려웠지만 차차 익숙해졌고, 평온을 느낄 때도 있다. 희한하게 휘어있는 영혼의 공간이다. 

 

제럴드 싯처도 같은 말을 한다. 수도원 수도사들에게 닥친 공통된 위기를 '아케디아'라고 부른다. '정오의 마귀'라고 부른단다. '나태'라는 말은 너무 초등학교 도덕적 용어 같아 어울리지 않는다. 싯처는 이 단어를 '권태', '불안', '부주의'로 정의했다. 맞다. 나를 비롯하여 40줄에 접어들어 중년의 위기를 겪고 있는 무수히 많은 목회자들에게서 공통된 위기를 보게 된다. 발단과 원인은 다 조금씩 다르다. 그러나 탈주가 답이 아니란다. 단단한 영의 근육을 키우는 순간이니, 버텨야 한다. 반복되는 일상, 변화 없는 일상이겠지만 오늘도 그 부르심의 자리에서 훈련에 임해야 한다. 연마한 얇팍한 기술과 말솜씨로, 임기응변과 기만으로 상황을 반복적으로 모면하는 안 된다. 거짓 목회자로 가는 지름길이다. 

 

*****

 

2020년 5월 7일 페이스북

위쪽으로 떨어지다 / 리처드 로어
인생의 후반전, 어떻게 살 것인가.
오직 추락해본 사람만이 위로 올라갈 수 있다.
제목이 무지막지하게 매력적이다.
부제는 마흔아홉을 지나는 나의 실존적 질문이다.
부부제는 호기심을 자극한다.
진실은 대개 ‘형용모순’에서나 살짝 맛보는 법인데,
왠지 이 책이 오십을 앞둔 내게
새로운 각성을 일으킬 것 같은 느낌이다.
그리고 무려 작가가,
리처드 로어 신부다!
밑줄 친 문장이 200개는 넘을 것 같다.
그중에 하나.
“당신이 만일 말이 너무 많거나 목소리가 크다면,
아마 당신은 원로가 아닐 것이다.”
작게
적게
천천히
말하는 성품을 가진
인생 후반전이 되고 싶다.
--
두 가지 덧붙임.
하나. 제목이 매력적이긴 하지만, 내용과 제목이 다소 불일치하다는 생각. <위쪽으로 떨어지다>보다는 <떨어지는 오르막길>이 더 적절하지 않을까.
둘. 우리 나이로 49세 이하는 이 책을 읽지 말 것. 봐도 무슨 말인지 모를 가능성이 매우 높다.

 

리처드 로어, 위쪽으로 떨어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