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ent is Present

방금 나를 지나간 그 바람은 어떤 바람 됐을까

책에서 만난 문장

승효상, 默想, 여행의 기술

신의피리 2024. 4. 17. 13:05

5월에 두 주간 베네딕토 수도원 순례길에 오른다. 아내는 혼자서라도 가겠다는 결기를 보여줬고, 결국 나도 따르기로 했다. 애초에 '베네딕토'에게도, '수도원'에게도 도통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3개월 안식월을 제대로 보내려니 마땅한 계획이 잘 세워지지 않는다. 4월엔 홀로 제주살이를 하기로 했었는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고독과 침묵을 친구 삼아보려는 마음인데, 어쩌면 베네딕토 수도원 순례와 접점이 있을지 모르겠다 싶었다. 가기로 결정하니 홀가분해졌다. 그러나 나는 베네딕토에 대해서도 모르고, 수도원에 대해서도 모른다. 신학교 시절 교회사 공부를 할 때 중세 1,500년은 한 10여분 만에 건너뛰었고, 내겐 관심 밖이었다. 초대교회에서 곧바로 종교개혁시대로 건너가는 게 당연한 줄 알았다. 

 

곧바로 리서치에 들어가서 책을 주문한다. 걸려든 책들이다.

 

「수도원의 탄생」, 크리스토퍼 브룩, 청년사

「수도회 길을 묻다」, 최종원, 비아토르

「수도원에서 배우는 영성훈련」, 데니스 오크홈, 규장

「성 베네딕도 규칙」, 베네딕도, 들숨날숨

「베네딕트 옵션」, 로드 드레허, IVP

「사막의 지혜」, 로완 윌리엄스, 비아

「켈트 기도의 길 - 다시 깨어나는 상상력」, 에스도 드발, 비아토르

「렉시오 디비나 - 거룩한 독서의 모든 것」, 제임스 C. 월호이트, 아바사

「묵상 - 건축가 승효상의 수도원 순례」, 승효상, 돌베개

 

내가 우물안 개구리였다. 대한민국에서 태어나서 처음부터 장로교 교회를 다녔고, 그게 전부라고 생각했다. 물론 성인이 되어 세계를 보니 내가 몸담은 장로교가 당연히 전부가 아니었다. 장로교는 여러 개신교 교단 중 하나일 뿐이고 게대가 전 세계적으로 그리 큰 교단도 아니다. 가톨릭과 정교회도 기독교다. 그리고 작은 차이를 드러내고 금을 긋고 배타적 신앙을 가진 이들이 아니라 공통의 뿌리를 찾고 잃어버린 영성을 서로의 역사와 전통을 통해 배우려는 이들도 많았다. 지금 나는 대한민국의 얕은 개신교 신학과 교회 전통에 머물러 있었음을 다시금 깨닫는다. 훨씬 많은 이들이 베네딕토의 규칙에서 영성훈련의 뭔가를 건져 올리고 있었다. 

 

제주에 내려오면서 승효상의 묵상을 가져왔다. 한 달동안 길게 천천히 읽으려고 했는데, 그만 너무 흥미진진해서 금세 읽고 말았다. 

묵상, 건축가 승효상의 수도원 순례

 

默想은 순례기다. 2019년 14일간, 그가 26명의 각 분야의 유명한 전문가들을 이끌고 수도원 순례를 다녀온 이야기다. 베네딕트가 처음 세운 로마 인근 수비아코 수도원에서 시작하여, 프로방스의 수도원들을 거쳐 파리에 도착하는 여정이다. 구글어스로 지도를 찾아보며 흥미진진하게 읽었다. 이 책은 네 개의 레이어(layer)가 있다 한다. 수도원, 건축, 여행(사람), 그리고 자기 자신이다. 수도원이란 무엇이며 그 안에 사는 수도사들은 누구인가를 설명한다. 물론 이 책의 백미는 건축 전문가의 시선에서 수도원 건축을 묘사하고 설명하는 데에 있다. 무지한 내게 눈을 뜨게 한다. 영성으로 충만한 공간이란 무엇이며, 빛과 어둠의 조화 속에서 침묵하게 만드는 공간이 왜 필요한지, 공간이 사람의 삶의 결을 어떻게 빚어내는지 보게 된다. 그리고 역시 사람 이야기는 재미있다. 공지영, 최강욱 등 내가 아는 이들이 등장할 때는 더 큰 재미가 있다. 이 책이 지금 당장 내게 가장 큰 영향을 준 부분은 저자의 개인사다.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 자랐고 여전히 그는 개신교인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혼란한 시대상황에서 갈등한 이야기, 보수 신학으로는 답을 얻지 못해 진보적 사유로 뻗어나가는 이야기 등을 틈틈이 보여준다. 이 네 개의 층위가 순례기를 아름답고도 조화롭게 꾸며준다. 이제 아주 조금 베네딕토 순례를 떠날 용기를 얻게 된다. 

 

제주살이 하며 매일 밤마다 하루 일과를 돌아보며 글을 쓴다. 어떻게 써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여 무계획적으로 그냥 손가락 움직이는 대로 쓴다. 쓰다 보니 승효상의 순례기가 도움이 된다. 내가 본 것들, 그곳에서 건져 올린 생각들, 거기서 만난 사람의 이야기, 그리고 나의 이야기. 

여행은 어떻게 가는 게 좋을까? 『여행의 기술』 The Art of Traved을 쓴 알랭 드 보통 Alain de Botton(1969~)은 여행은 현실에서 만나는 노여움과 천박한 욕망을 벗어나기 위해 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의 말이 옳다면, 여행은 도피 수단 밖에 되지 않으며 일상을 증오로 몰 뿐이어서 불건전하다. 내 생각으로는 여행은 일상으로 다시 돌아올 힘을 얻고자 떠나는 것이니, 나는 그의 견해에 동의하지 못한다. 우리가 현실에 살면서 얻는 정보나 지식으로 나도 모르게 어떤 사물이나 장소에 대해 환상을 쌓게 되는데, 그 환상은 부서지기 쉬운 달걀 껍데기 같아 힘이 없다. 심지어 우리의 삶을 허위로 내몰 위험도 있다. 믿건대, 힘은 진실로부터 나오며 진실은 늘 현장에 있어, 현장에 가는 일인 여행은 그 장소가 가진 진실을 목도하게 하여 결국 우리에게 현실로 돌아가 일상을 다시 시작할 힘을 얻게 한다. 적어도 나에게 이 말은 항상 사실이었다.
그런 여행은 혼자서 하는 게 가장 좋다. 스스로 추방당한 자가 되어 모든 걸 객관화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어야 그 진실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된다,

승효상, 「默想, 건축가 승효상의 수도원 순례」 중. 23-25.

 

제주살이가 끝나고 나의 일상으로 돌아가면 나는 힘을 얻어 나의 일상을 더 잘 살게 될까?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이거다. 나는 '스스로 추방당한 자가 되어 모든 걸 객관화하는 입장'에 놓여 있다. 나날이 매 순간 그 입장에 놓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