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ent is Present

방금 나를 지나간 그 바람은 어떤 바람 됐을까

렉시오 디비나

마태복음 27:11-26 / 빌라도의 책임 회피

신의피리 2024. 4. 23. 09:18
마태복음 27:11-26

11 예수께서 총독 앞에 서시니, 총독이 예수께 물었다. "당신이 유대인의 왕이오?"
그러나 예수께서는 "당신이 그렇게 말하고 있소" 하고 말씀하셨다.
12 예수께서는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고발하는 말에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셨다. 13 그때에 빌라도가 예수께 말하였다. "사람들이 저렇게 여러 가지로 당신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는데, 들리지 않소?" 14 예수께서 한 마디도, 단 한 가지 고발에도 대답하지 않으시니, 총독은 매우 이상히 여겼다.

15 명절 때마다 총독이 무리가 원하는 죄수 하나를 놓아주는 관례가 있었다. 16 그런데 그때에 [예수] 바라바라고 하는 소문난 죄수가 있었다. 17 무리가 모였을 때에, 빌라도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여러분은, 내가 누구를 놓아주기를 바라오? 바라바 [예수]요? 그리스도라고 하는 예수요?" 18 빌라도는, 그들이 시기하여 예수를 넘겨주었음을 알았던 것이다.
19 빌라도가 재판석에 앉아 있을 때에, 그의 아내가 사람을 보내어 말을 전하였다. "당신은 그 옳은 사람에게 아무 관여도 하지 마세요. 지난밤 꿈에 내가 그 사람 때문에 몹시 괴로웠어요."
20 그러나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은 무리를 구슬러서, 바라바를 놓아달라고 하고, 예수를 죽이라고 요청하게 하였다.
21 총독이 그들에게 물었다. "이 두 사람 가운데서, 누구를 놓아주기를 바라오?"
그들이 말하였다. "바라바요."
22 그때에 빌라도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그러면 그리스도라고 하는 예수는, 나더러 어떻게 하라는 거요?"
그들이 모두 말하였다. "그를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23 빌라도가 말하였다. "정말 이 사람이 무슨 나쁜 일을 하였소?"
사람들이 더욱 큰 소리로 외쳤다.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24 빌라도는, 자기로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다는 것과 또 민란이 일어나려는 것을 보고, 물을 가져다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고 말하였다. "나는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책임이 없으니, 여러분이 알아서 하시오."
25 그러자 온 백성이 대답하였다. "그 사람의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리시오."
26 그래서 빌라도는 그들에게, 바라바는 놓아주고, 예수는 채찍질한 뒤에 십자가에 처형하라고 넘겨주었다.

 

빌라도가 고발된 예수를 심문한다. 그는 갈릴리에서 유명한 선지자다. 새로운 운동의 주동자다. 예의주시해 오던 인물이다. 그가 명절에 예루살렘에 왔다가 체포되었다. 유월절에는 수십만 인구가 예루살렘에 모인다. 자칫 폭동이라도 일어나면 골치 아파진다. 폭력진압을 하게 되면 더 큰 반동이 일어난다. 로마는 유다에서 폭동이 일어나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렇다고 유다의 대제사장들의 요구를 다 들어줄 수 없다. 저들의 저의에 굴복하게 되면 결국 책임은 모두 빌라도가 지게 된다. 빌라도는 신중하게 재판에 임한다. 최종 판결을 위해서 피고를 심문한다. 그러나 다른 피고들과 다르다. 예수는 말이 없다. 침묵 모드다. 고발, 고소자들의 덫에 걸려 있건만, 예수는 일일이 항변하지 않는다. 이런 피고는 처음이다. 빌라도는 예수에게서 폭동을 일으킬 지도자의 면모를 보지 못한다. 그는 새로운 종교 운동가인가, 예언자인가. 

 

빌라도가 재판석에 앉았다. 이제 최종 판결을 내려야 한다. 유대인의 사형 선고는 로마 총독의 권한이다. 유대 산헤드린에서는 정치범을 사형에 처할 권한이 없다. 그 최종권한은 빌라도에게 있다. 그런 까닭에 저들이 빌라도에게 예수를 고발하여 넘긴 것이다. 그러나 빌라도는 갈등한다. 죄 없는 예수를 사형에 처하게 되면 그를 따르는 민중의 분노가 자신과 로마에게 돌아올지도 모른다. 과거 여러 번 무력 진압을 했을 때 도리어 더 큰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 이런 민족은 처음이다. 빌라도는 유월절에 죄수 하나를 놓아주는 전례를 활용한다. 그때 빌라도에게 지혜가 떠올랐다. 지난번 과격 시위의 주동자 중 하나로 잡혀온 바라바가 있다. 그는 대제사장들에게도 골칫거리다. 로마와 적절한 힘의 균형을 유지하며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려는 이들에게 과격 테러리스트들은 방해꾼들이다. 대제사장들은 바라바를 몹시 싫어한다. 바라바와 예수를 무리들 앞에 세운다. 누구를 놓아줄까. 누구를 죽일까. 그 결정은 이제 빌라도의 몫이 아니다. 대제사장들과 유대인들의 몫이다. 책임 또한 그들이 진다. 대제사장들은 무리를 선동하여 바라바를 놓아주라 한다. 바라바는 폭력 주동자요 도둑이었고, 예수는 사랑의 하나님 나라를 가르치는 이다. 누가 더 위험한가. 

 

그렇게 판결은 끝났다. 빌라도는 책임을 면해서 만족했으리라. 대제사장들을 사형 판결을 얻어냈고 그 실질적 책임은 빌라도였기에 내심 만족했으리라. 한 사람은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에 판결을 휘게 했다. 자기 자신은 적절한 지혜를 발휘한 것이라 여길지 모른다. 고발자들은 시기 때문에 죄 없는 예수를 희생양 삼아 죽인다. 세상의 두 정치 당사자들, 서로 적대적 공생관계에 있는 자들이 암묵적으로 죄 없는 예수를 제거하는 데에 합의한다. 악과 악이 같은 편이 된다. 

 

"나는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책임이 없으니, 여러분이 알아서 하시오"

 

왜 책임이 없는가. 빌라도는 판사다. 사형 언도는 빌라도가 여러 말을 듣고 판결을 내리는 것이다. 자신의 정치적 이해 때문에, 자기에게 피해가 올 것이 두려워 책임을 회피한 것 아닌가. 

 

죄 없으신 예수께서 오늘도 고발당하신다. 나는 대제사장처럼 내 삶의 기득권을 빼앗기기 싫어 그를 고발하는 자인가, 그런 자들의 농간에 놀아나는 어리석은 대중인가, 책임을 회피함으로써 한 걸음 물러나려는 빌라도인가.

 

주님, 갈등이 싫고, 맞서 싸우는 것이 두려워서, 잃어버릴 것들이 많아서, 적절하게 불의와 타협할 때가 많음을 고백합니다. 그렇게 해서 예수께서 희생되셨음을 기억하게 해 주십시오. 다시 예수를 십자가에 내어주는 일에 가담하지 않게 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