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ent is Present

방금 나를 지나간 그 바람은 어떤 바람 됐을까

책에서 만난 문장

<매혹적인 악덕들>(The Glittering Vices), 레베카 코닌딕 드영

신의피리 2024. 10. 19. 11:33

책을 읽다 다음 부분을 읽을 때 움찔했다. 나쁜 짓 하다가 들킨 사람처럼, 숨겨두고 싶었던 내 비밀스러운 약점을 들킨 사람처럼,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는데도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젊은 시절에 대한 선명한 거울이다. 지금은 좀 나아졌지만.

몇 년 후, 용기의 미덕에 관한 토마스 아퀴나스의 책을 읽다가 나는 우연히 “영혼의 왜소함”을 뜻하는, 그가 소심함(pusillanimity)이라고 칭한 악덕을 우연히 발견하게 되었다. 아퀴나스는 이 악덕으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신 모든 소명으로부터 위축된 삶을 산다고 말했다. 그들은 자신이 해낼 수 있는 큰일을 이루기 위해 자신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해야 하는 수고와 난관에 직면하면 움츠러들며 “나는 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들의 소심함은 위대한 하나님 나라의 사역(스스로 꿈꿔왔던 것 이상의 일)을 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는 대신, 보잘것없는 자신의 능력에 의존하고 실패할 가능성에 초점을 맞추는 것에서 비롯된다. 아퀴나스는 불타는 떨기나무 앞에 있는 모세를 상상해 보라고 말한다.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건 중 하나인 출애굽 사건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는 소명을 받은 미래의 지도자는 자신은 자격이 없으므로 대신 아론을 보내시라고 하나님께 간청하며 말을 더듬는다.
나는 아퀴나스가 말하는 소심함이라는 악덕에 관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처음으로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그것은 나의 내적 갈등에 이름을 붙여주었고, 나의 불안과 무가치함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었다. 동시에 성경에 등장하는 모세의 모습은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가 우리의 가장 연약하고 두려운 모습까지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감동적인 증거를 제시 해주었다. 모세의 소심함이 그의 인생을 결정지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의 인생을 결정지으신 것이다.
조금 아이러니한 것은, 내 안에 있는 이 악덕을 발견한 것이 나에게 깨달음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해방감을 안겨주었다는 점이다. 마침내 나는 무엇이 내 발목을 잡았는지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다. 그것에 이름을 붙일 수 있게 된 것은 나에게는 그 손아귀로부터 점차 벗어나기 위한 작지만 유의미한 첫걸음이었다. 대학원에서 실패하리라는 나의 두려움이 나의 가장 큰 문제가 아니었고, 나의 소심함이 하나님에 대한 신뢰의 부족에서 비롯된 증상이었음을 깨닫게 된 것은 용기와 힘을 북돋아 주는 아퀴나스의 말 한마디 덕분이었다. 이렇게 기본적인 것을 어떻게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하나님의 은혜와 힘을 의지하지 않아서 하나님의 부르심에서 멀어졌고 내 자신의 능력을 부적절하다고 판단했다는 이러한 통찰은 너무도 당연해서 나 스스로 마땅히 깨달았어야 했다. 하지만 우리 자신을 명확하게 보는 것은 종종 어려운 일이다. 때때로 우리는 다른 사람으로부터 정확한 진단을 받고, 그것을 특정한 시점에 들어야 할 필요가 있다.

레베카 코닌딕 드영, 『매혹적인 악덕들』 p.22-23

 

 

 

레베카 코닌딕 드영, 매혹적인 악덕들

 

이 책은 달라스 윌라드와  C. S. 루이스 사이에 있는 게 아주 적절해 보인다.

에니어그램 5번인 디트리히 본회퍼

 

나는 에니어그램으로 5번이다. 디트리히 본히퍼가 아주 성숙한 5번이란다. 내 영혼의 왜소함을 이겨내려면 본회퍼의  말을 늘 새겨들어야 한다. 그는 어떻게 그걸 알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