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ent is Present

방금 나를 지나간 그 바람은 어떤 바람 됐을까

기고/양화진 16

있는 모습 그대로

21교구 소식지 1호. 2015/09/13 있는 모습 그대로 내 나이 마흔넷이다. 우리나라 남성의 현재 기대수명이 78.5세(2014년 12월발표)라고 하니 반환점을 돈 셈이다. 요샌 죽는 게 그다지 두렵지가 않다.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훨씬 더 짧아져서 그런 게 아닐까 생각한다. 나이 마흔 즈음부터 세월의 속도가 제트엔진을 단 듯하다. 1년이 짧게 느껴지니 말이다. 그런데 시간의 속도와 성숙의 속도는 반례비하나 보다. 성장의 대한 마음의 몸부림보다 안주에 대한 몸의 욕구가 더 커졌다. 20대 때 쓴 일기, 30대 때 쓴 설교문을 간혹 다시 읽어보면 놀라움의 연속이다. 지금의 나보다 훨씬 더 깊고 넓다. 굳이 내 글을 봐서만이 아니다. 20대 청년들과 대화하다보면 그냥 친구들과 이야기하는 것 같은 ..

기고/양화진 2015.09.13

포옹과 키스 사이

100통 2014년 4월호 포옹과 키스 사이 청년들을 대상으로 데이트와 결혼에 대해서 강의를 할 때가 있습니다. 대체로 연애강의는 호응이 좋은 편입니다. 모든 청춘남녀의 초미의 관심사라 그렇겠지요! 그런데 강의 도중 한순간 공기의 흐름이 확 뒤바뀌는 것을 느낄 때가 종종 있습니다. 십중팔구, 그 주제는 스킨십! ‘스킨십’이라는 단어를 꺼내는 순간, 이 단어는 엄청난 파동을 일으켜 청중들의 동공을 최대 사이즈로 확대시키고, 잠자며 놀던 체세포들을 일시에 깨워 활성화 시키는 놀라운 단어가 아닌가 싶습니다. ‘키스 해보셨나요?’ (입술을 슬쩍 움직이는 여러분들의 모습이 눈에 보입니다.) 조금 다른 질문을 던져보겠습니다. ‘결혼 전에 키도 해도 되는 걸까요?’ (중세시대 사제들이나 할 법한 질문이라고 생각하는 ..

기고/양화진 2015.09.07

아픈 바람

기고 아픈 바람 1995년, 군대에서 막 제대한 저는 중고 자전거를 하나 구입해서 ‘다크호스’라고 이름 붙이고는 밤마다 운동 삼아 타고 나가곤 했습니다. 어느 밤, 한강 다리 중간에 자전거를 멈춰 세우고 불어오는 강바람과 오래 마주 선 적이 있습니다. 그 때 제 귓가를 스쳐가는 노랫말이 하나 있었습니다. 홍순관, 바람은 보이진 않지만 나무에 불면 녹색바람이 꽃에 불면 꽃바람 되고요 바람은 방금 나를 지나간 그 바람은 어떤 바람 됐을까 방금 나를 지나간 그 강바람은 어떤 바람 됐을까? 그 바람에 이름을 붙인다면 어떤 이름이 될까? 몇 가지 작명을 시도해 보았지요. 녹색바람, 꽃바람 같은 낭만적 이름은 아니었습니다. 되레 칙칙한 바람, 우유부단한 바람, 무색무취의 바람, 외로운 바람, 비겁한 바람... 제 ..

기고/양화진 2014.09.05

지금 여기, 눈부신 7시 12분

지금 여기, 눈부신 7시 12분 초대형 베스트셀러 에서 저자는 ‘인생시계’라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는 자신의 책상 위에 죽은 시계를 올려 두고 1년이 지날 때마다 18분씩 옮깁니다. 인간이 80세까지 산다고 가정하고 하루 24시간에 맞춰보면, 18분은 1년에 해당되기 때문입니다. 자, 계산 한 번 해볼까요? 스무 살은 새벽 6시, 서른 살은 오전 9시가 되겠지요! 점심시간인 오후 12시는 마흔이고, 퇴근 시간인 저녁 6시는 예순입니다. 그렇다면 대학을 갓 졸업한 스물네 살 젊은이는 몇 시일까요? 오전 7시 12분! 와우! 아직 출근 전이군요. 저자가 ‘인생시계’라는 비유를 들려준 이유는 젊은 청춘들에게 ‘동년배 친구들보다 취업과 성공이 조금 늦는다고 절망하지 마라. 긴 인생에 비하면 그리 늦은 건 아..

기고/양화진 2014.01.31

욱여쌈을 당하여도

100주년기념교회 교회소식지, 2012.4월호 부활절 칼럼. 욱여쌈을 당하여도 김종필 누구나 한 번쯤 통과하는 인생의 눈물 골짜기가 있다면 제겐 2011년도 고난주간이 아닐까 싶습니다. 고난주간 내내 눈물이 주야로 음식이 되었고, 앉고 누운 그 자리는 눈물 자국으로 얼룩지곤 했습니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사랑하는 이들의 죽음과 그로 인한 이별 때문이었습니다. 사순절 마지막 주간을 앞두고 비보가 날아들었습니다. 섬기던 청년부 리더 중에 3년 째 암투병중인 서른두 살 청년이 있었습니다. 고등부 때부터 보아온 참으로 신실하게 잘 자란 청년입니다. 그런데 첫 직장생활 도중 암이 발견되었고, 한 차례 수술 후 회복되는가 싶더니만, 고난주일을 앞두고 말기암 환우들이 머무는 샘물호스피스로 땅 위에서의 마지막 장막을 옮..

기고/양화진 2012.04.17

<버들꽃나루사람들> 2012년 1월호, 신임교역자 자기소개

2012년 1월호, 신임교역자 자기소개 안녕하세요? 저는 2030기혼청년들로 구성된 13교구를 섬기게 된 김종필입니다. 인생 80이라 가정하면 저는 이제 막 반환점을 돌아 후반 레이스를 시작하는 지점을 달리고 있습니다. 전반전에는 소명을 찾기 위한 서투른 모험의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인문학과 신학의 어중간한 지점에서 헤맸고, 세상 속 빛된 교회의 알림이가 되려고 기독교윤리실천운동, 한국교육개발원, Young2080 큐티진을 기웃거렸지요. 하나님께서 이모저모 저를 억지로 보내놓기도 하시고, 살살 꾀어 일감을 맡기기도 하셨는데, 학업, 가정, 교회, 일터, 세상 모든 곳에서 서툴고 어색하게만 살아온 듯싶어 부끄러운 전반전이라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저는 2011년도에 죽음과 상실의 강에서 울고 또 울며..

기고/양화진 2011.1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