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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나를 지나간 그 바람은 어떤 바람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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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원기행5]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내가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행 19:21) 2015년도에 바울 사도의 발자취를 따라 터키-그리스를 다녀온 적이 있다. 이루 말할 수 없이 좋았다. 그가 걸었던 길을 걷고, 그가 설교했던 아레오바고를 오르고, 그가 세례를 줬던 빌립보 강기테스 강가에 앉았을 때, 형용할 수 없는 은총이 쏟아져 내렸다. 순례의 참 의미를 알았다. 그때 비로소 로마가 가고 싶어졌다. 다른 이유는 없다. 바울의 발자취를 따르고 싶은 것이 제일 큰 이유다. 그리고 드디어 로마에 입성했다. 콜로세움, 포로 로마노, 개선문 등을 보았다. 가히 로마는 살아있는 역사유물관이다. 로마 시내도 잠시 걷는다. 전 세계 모든 민족이 다 와있는 것 같다. 주말이라 그런지 시내엔 형형색색의 얼굴빛을 가진 이들이 붐빈다. 눈은 즐겁고, 다리는 무..

[수도원기행4] 작고 평범하고 단조로워서 좋은 것

시차 적응 중이다. 첫날은 새벽 1시에 깼고, 둘째 날은 새벽 2시, 셋째 날은 새벽 4시에 깼다. 몸이 아주 정직하게 반응한다. 새벽 시간이 가장 정신이 맑을 때다. 글 쓰기 좋은 시간이다. 고요한 새벽, 글 쓰는 아내를 방에 두고 혼자 나선다. 아직 수도원 관리인이 출근 전인가 보다. 현관문을 열고 나갔다 추워서 다시 들어오려는데, 문이 안 열린다. 걸으라는 사인이다. 스콜라스티카 수도원에서 수비아꼬 수도원까지 걷는 길이 있는 표지판을 봐둔 게 있다. 걷는다. 이른 새벽에 홀로 ‘거룩한 동굴’로 올라간다. 기도하기 위해 동굴로 들어간 이, 동굴로 들어간 이의 말씀을 들으러 올라가는 이들, 그들이 걸어 올라간 자연 그대로의 길이다. 처음으로 관광객이 아니라 순례자가 된 기분이다. 순례는 앞서 걸어간 이..

[수도원기행3] 마음을 드높이

몬테카시노에서 수비아코로 이동했다. 수비아코는 강원도 산골짝 느낌이다. 작고 경사진 곳에 세워진 작은 마을 한가운데로 52인승 버스가 지나간다. 4~5층 짜리 건물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테라스에서 담배 피우는 중년의 여성과 눈이 마주쳤다. 나도 모르게 미소로 인사를 한다. 저 여성은 동양 남자의 미소인사를 어떻게 생각할까. 마을 외곽 조금 더 높은 곳으로 버스가 묘기 부리듯 올라간다. 스콜라스티카 수도원에 도착한다. 오늘은 수도원에서 운영하는 숙소에 머문다. 수도원 내부는 미로처럼 설계되어 있는데, 이곳은 조금 특이하다. 밖에서 안으로 들어갈수록 더 오래전에 지은 건물이 나온다. 가장 안쪽 건물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건물이라 한다. (가이드의 통역설명에 의하면) 입구에서 처음 들어섰을 때는 좀 밋밋했..

[수도원기행2] 순례객은 늘지만 수도사는 줄고 있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_ 중 by 유홍준 순례의 성패는 이 문장에 달렸다. 사랑하지 않으면 가봐야, 만나봐야 아무 의미 없다. 사랑없이 가면 들어봐야 참된 앎에 이르지 못한다. 앎을 향한 갈망없이 암만 사진 찍고 들여다봐야 의미도 없고 깨달음도 없다. 관건은 사랑이다. 베네딕토 수도원 순례를 왜 가려는가. 아내 때문이다. 아내는 눈이 매력이다. 반짝반짝 빛났고 그게 내가 사랑에 빠진 이유다. 평소에도 빛나는 눈이었는데, 근래 그 눈이 더 반짝이기 시작했다. 영혼이 충만해 진 것이다. 오랜 공부와 기도 끝에 순례를 가겠다 한다. 수도원을 가겠다는 아내의 결기는 견고했다. 그 견고함이 나를 움직였다. 마침 결혼 25주년을 맞았고, 아내가 원하는 여행에 동행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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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안식27-2] 한라산 등반

내 몸이 너무나도 생생하게 인식되고 있다. 종아리가 아프다. 알이 살짝 배긴 것 같다. 허벅지도 뻐근하다. 이유가 뭘까?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되지 않는 장면이 자꾸 머릿속에서 보였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나는 어디를 다녀온 것인가? 사진이 합성된 것일까?  5시 20분 잠에서 깬다. 사실 제대로 잠에 들지도 않았으니 깼다고 하기도 그렇다. 여하튼 대충 씻고 짐을 꾸린다. 생수 3개, 우비, 간식, 스틱, 이거면 되는 건가?6시 출발한다. 차의 창문을 열고 사진을 찍는다. 바로 저기, 저 멀리 있는 저 산, 저 봉우리, 매일 보던 바로 그 한라산에 오늘 오를 예정이다. 과연 오늘 하루가 지나갈 것인가? 나는 해낼 수 있을까? 7시 관음사 주차장에 도착한다. 매점에서 김밥과 국수로 아침 배를 채운다. 7시 ..

[제주안식18] 차귀도에 가봐야 한다

오늘도 미세먼지 초미세먼지 아주나쁨이다. 이틀 연속 숙소에 머물 수 없다. 다행히 오늘 하늘엔 구름 한 점 없다. 마스크를 쓰고 나간다. 오늘은 차귀도(遮歸島)에 들어간다. 차귀도는... 네이버 지식백과사전에 나온 설명에 의하면, 다음과 같다. 면적 0.16㎢로 제주특별자치도에 딸린 무인도 가운데 가장 크다. 고산리에서 해안 쪽으로 약 2Km 떨어진 자구내 마을에서 배를 타고 10여 분 걸리는 곳에 있는 무인도이다. 죽도·지실이섬·와도의 세 섬과 작은 부속섬을 거느리고 있다. 깎아지른 듯한 해안절벽과 기암괴석이 절경을 이루고 섬 중앙은 평지이다. 신평리에서 용수리 방향으로 걸을 때, 모슬포항에서 고산리 방향으로 걸을 때 계속 차귀도가 눈에 들어왔다. 뉴질랜드 남섬이 유독 많이 연상되는 섬이라, 꼭 들어가..

마태복음 27:56 / 막달라 마리아

27:56 그들 가운데는 막달라 출신 마리아와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와 세베대의 아들들의 어머니가 있었다. 27: 61 거기 무덤 맞은편에는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앉아 있었다.28:1 안식일이 지나고, 이레의 첫날 동틀 무렵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러 갔다. 예수의 수난 이야기 끝 부분에 연거푸 한 여성이 등장한다. 막달라 출신 마리아. 막달라는 갈릴리 서쪽 중앙 마을이다. 그녀는 누구일까?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때 십자가 곁에 있었던 몇몇 여인들 중 한 명이다. 첫 번째로 이름이 등장한다. 아마도 예수의 남성 제자들은 그곳에 올 수 없었을 것이다. 오는 순간 모조리 체포되었을 것이니, 아주 멀리 숨어서 보고 있거나 아예 마가 요한의 어머니 집 다락방에 문..

렉시오 디비나 2024.04.28 0

[수도원기행2] 순례객은 늘지만 수도사는 줄고 있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_ 중 by 유홍준 순례의 성패는 이 문장에 달렸다. 사랑하지 않으면 가봐야, 만나봐야 아무 의미 없다. 사랑없이 가면 들어봐야 참된 앎에 이르지 못한다. 앎을 향한 갈망없이 암만 사진 찍고 들여다봐야 의미도 없고 깨달음도 없다. 관건은 사랑이다. 베네딕토 수도원 순례를 왜 가려는가. 아내 때문이다. 아내는 눈이 매력이다. 반짝반짝 빛났고 그게 내가 사랑에 빠진 이유다. 평소에도 빛나는 눈이었는데, 근래 그 눈이 더 반짝이기 시작했다. 영혼이 충만해 진 것이다. 오랜 공부와 기도 끝에 순례를 가겠다 한다. 수도원을 가겠다는 아내의 결기는 견고했다. 그 견고함이 나를 움직였다. 마침 결혼 25주년을 맞았고, 아내가 원하는 여행에 동행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