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죽음은 기정사실이다. 다만 그때를 모를 뿐이다. 모르고 있다가 벼락같이 맞이하는 것보다는 잘 이해하고 있으면서 천천히 대비하며 기대하는 것이 지혜다. 나는 꽤 준비되어 있다. 적어도 죽음이 두렵진 않다. 그다음 세계에 대해서도 적잖은 설렘이 있다. M. 스캇 펙과 C. S. 루이스 덕분이다. 두 천재 작가들이 신학과 판타지를 적절히 섞어서 소망 가득한 소설을 썼다.
"지상은 결국 별개의 장소가 아님을 깨닫게 되리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천국 대신 지상을 선택한 사람은 처음부터 지옥의 한 구역이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또 지상을 천국 다음 자리에 놓은 사람은 지상이 애초부터 천국의 일부였음을 알게 될 것이다." (10p)
루이스는 아직 그 사후세계에 가보기도 전에, 이 지상의 삶에서 그 세계의 특징을 흥미진진하게 묘사하고 있다. 미래의 완전한 천국의 모형이 다소 불완전하나마 우리 삶에 스며들어와 있다는 것을 그는 창조주로부터 특별히 들었던 모양이다. 지옥도 마찬가지다. 다만, 루이스는 지옥은 마음의 상태이고, 천국은 실체라고 말한다. 지옥이 왜 실체가 아니라 상태여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가 묘사하고 있는 지옥은 생각보다 그리 끔찍해 보이지도 않는 것도 예상 밖이다. 그저 심리적 왜곡 속에서 노이로제에 걸린 자아중독자들이라고 할까. 그들의 마음 상태를 지옥의 본질적 특징으로 그리고 있는데,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지만, 온전히 다는 아니다.
어쩌면 루이스는 미래 사후세계를 밝히려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주인공이 날으는 버스를 타고 지옥(연옥?)에서 천국의 문 입구 정원에서 여러 영들을 만나는 장면을 통해 진짜 보여주려고 한 것은 '자기 중독 병'에 걸린 인간 군상일 것이다. 자기 자아로부터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하고 자기 굴레에 갇혀 있는 이들은 어느 정도 '지옥'을 자기 내면에 가져 들어온 이들이다. 그래선 절대로 천국으로 들어가지 못한다. 가져다줘도 소용이 없다.
지상에서 날으는 버스를 타고 올라온 혼령들이 천국에서 마중 나온 영들과 대화하는 여러 케이스들을 엿듣자니, 자연스럽게 내 자아를 성찰하게 된다. 어쩌면 여러 지혜자들이 다 같은 말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래리 크랩은 <영적 가면을 벗어라>에서 '자기보호의 죄'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고 했다. 리처드 로어는 <위쪽으로 떨어지다>에서 자기 방어라는 것을 내려놓고 추락해야 한다고 했다. 안셀름 그륀은 <아래로부터의 영성>에서 참된 영성의 시작과 방향은 '고통'과 상실로 뒤덮은 이곳 아래라고 말했다.
나의 자아는 '자기 보호'라는 두터운 가면을 쓰고 있다. 때로는 안전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임시방편인 줄 안다. 천국의 영들이 하나님에게서 파송을 받아, 여러 방법으로 내 영혼을 초대하시고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가장 안전하게 여기는 내 자아, INTJ, 에니어그램 5번, 목사, 착하고 젊잖은 사람, 그 가면 안에 갇혀 있는지도 모른다. 바로 여기 지상에서 이 놀라운 여정으로 나아가지 못하면, 천국에서도 천국이 아니라 지옥에 갇혀 있을지 모른다. 내가 안전하게 여기는 내가 붙들고 있는 것들, 그것들은 진실로 안전하지 않다. 영들의 초대와 안내에 내 안전과 내 중심을 맡겨야 영생이 내 안에 들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