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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나를 지나간 그 바람은 어떤 바람 됐을까

안식월 제주한달살기

[제주안식29-마지막] 신비가 널렸다

신의피리 2024. 4. 29. 11:34

새벽 4시에 눈을 떴다. 다시 잠이 올 것 같지 않다. 제주한달살이 마지막 날인 것을 이렇게 몸이 티를 낸다. 내 마음보다 내 몸이 더 제주를 떠나는 것을 서운해하는가 보다. 하긴, 내 몸이 오랜만에 몸다워졌다. 매일 평균 10km 걸었다. 올레길, 오름길, 바닷길, 곶자왈, 숲길, 시골밭길, 돌담길, 섬 둘레길, 오솔길, 한라산 등산로.... 내 다리가 아주 신이 났다. 눈도 얼마나 좋았을까. 매일 바다를 본다. 매일 한라산을 본다. 그러니 눈이 잠시라도 더 제주에 머물고자 일찍 뜨지 않았던가. 몸은 정직하다. 안식월엔 몸이 더 많이 움직였는데, 각 마디와 근육을 왕성하게 움직이게 하는 것이 몸의 안식이다. 그런 의미에서 29일간 내 몸은 진정한 안식을 누렸다. 
 
밤새 비가 왔다. 3층 복층이라 그런지 비가 지붕을 치는 소리가 더 요란하다. 밤새 들었다. 아, 귀도 좋았겠구나. 새 소리, 바람 소리, 비 소리, 파도 소리, 자연의 소리를 실컷 들었으니 귀도 호강했구나. 그렇다면 이제 내 입과 혀도 마지막 제주를 좀 더 누리게 해줘야겠다. 공항으로 가기 전, 1시간 일찍 나선다. 숙소와 더 오래 눈 마주치려고 했지만 그러면 눈물 날 것 같아, 시크하게 숙소를 나선다. 차 시동을 걸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내달린다. 잘 있어라, 늘랑비!
 
밤새 비가 내리다가 잠시 멈췄다. 안개가 자욱하다. 안갯속을 달린다. 유재하의 <가리워진 길>이 듣고 싶어 진다.

 
<가리워진 길> / 유재하
 
보일듯 말듯 가물거리는
안개속에 싸인 길
잡힐 듯 말 듯 멀어져 가는
무지개와 같은 길
그 어디에서 날 기다리는지
둘러 보아도 찾을 수 없네
그대여 힘이 되주오
나에게 주어진 길
찾을 수 있도록
그대여 길을 터주오
가리워진 나의 길
이리로 가나 저리로 갈까
아득하기만 한데
이끌려 가듯 떠나는
이는 제 갈길을 찾았나
손을 흔들며 떠나 보낸 뒤
외로움만이 나를 감쌀 때
그대여 힘이 되주오
나에게 주어진 길 찾을 수 있도록
그대여 길을 터주오 가리워진 나의 길
 
내 인생길, 고비고비마다 힘이 되어 준 '그대'가 떠오른다.
"평안하냐?"
"평안하기를 빈다"
나도 그대 가는 길에 힘이 되고 싶다. 
 
앞선 그대는 "소문자 ss 그대"다. "대문자 그대는 JC"다. 예수께서는 내 인생길의 목적이자, 동반자다. 그분이 걸으신 그 길이 내가 걸어가는 길이다. 그분은 어리석은 양 같은 내가 따를 목자다. 지금까지 목자의 음성을 따라왔다. 앞으로도 목자의 음성을 따라 걸을 것이다. 그래서 이 세상 끝나고 새로운 세상 들어갈 때, 그 음성의 주인을 만날 것이다. 
 
안갯속을 달려 성이시돌목장 내에 있는 '카페이시도르'로 간다. 다섯 번째 방문이다. 8:30 오픈인데, 아직 문을 열지 않은 시간에 도착했다. 바로 앞에 있는 '새미은총의동산'으로 들어간다. 이미 훤히 스토리를 꿰고 있는 예수님의 일생이 청동 인물로 묘사되어 있다. 정겹다. 흔하디 흔한 큰 돌덩이 위에 가녀린 식물 한줄기 뻗어 오르고 있다. 보잘것없다. 내가 제주에서 본 그 무수한 화려한 식물에 비하면 보잘것없는 식물이다. 나 역시 허다하게 많은 이 세상 속에 보잘것없는 한 생명에 불과하다. 보잘것없는 세 존재가 마주한다. 현무암, 이름 모를 식물, 그리고 나. 

 
이 세상은 온통 '의미'로 충만하다. 만드신 분의 숨결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의미를 건져 올리는 순간 생명에너지로 전환된다. 자연에서 건져 올린 의미가 생명으로, 그리고 생명은 내게 기쁨의 정서를 불러일으킨다. 기쁨은 하늘나라의 감정이니, 내 마음이 또 하나님의 임재의 장소, 성전이 된다. 자연은 여전히 하나님의 영광을 반영하고 있다. 그 안에 담긴 '의미'를 건져 올릴 줄 아는 내 영혼의 상태가 관건이다. 흐리고 무뎌서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 내가 어떻게 깨어나느냐가 중요한 문제다. 깨어나면 모든 것이 의미로 충만한 것을 깨닫게 된다. 그걸 우리는 “모든 것이 은혜” 라 말한다.
 
이제 진짜 내 혀를 즐겁게 할 시간이다. 카페이시도르에 들어간다. 다섯 번째다. '에스프레소 꼰판냐'와 막 나온 따끈한 '크로와상'을 시킨다. 

 
한 번도 혀가 불만을 토로한 적이 없는 맛이다. 원래 태어날 때부터 미각이라는 것이 내겐 덜 진화한 감각인 줄 알았는데, 그런 건 아닌가 보다. 나도 맛있는 것을 이렇게 아니 말이다. 어쩌면 맛은 혀로만 느끼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나는 카페이시도르라는 공간이 좋다. 나무 원목 원통 그대로 기둥을 삼았고, 계산대 뒤로 드넓은 목장에서 말들이 풀을 뜯는다. 작은 창 너머에서 젊은이가 경건하게 빵을 굽는다. 신성한 공간이다. 사려니 숲에서 '사려니'가 '신성한'이라는 뜻이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카페이시도르'야 말로 사려니카페다. 여기가 내 서재가 되고 휴게소가 되고 기도처가 되면 좋겠다 싶다. 혀와 눈과 몸이 완전히 다 미각으로 변화되었다. 맛있는 공간이다. 신성한 예배터다.
 
늘랑비 숙소 매니저님에게 감사의 인사 메시지를 보낸다. 하나님께서 자본이라는 바알에 무릎 꿇지 않고 입 맞추지 아니한 7천의 남은 사람들 중의 한 명이 분명하다. 축복하고 축복한다. 감사하고 감사하다. 위로와 격려가 됐다. 엘리야처럼 나도 세미한 음성을 들은 듯싶다. 
 
아내가 포스팅을 했다. 제목이 "신비가 널렸다'이다. 우린 영혼의 단짝인가? 조금 전 새미은총의동산에서 내가 건져 올린 내용과 똑같은 것을 썼다. 똑같은 것을 느꼈고, 비슷한 시간대에 비슷하게 건져 올렸다. 제주 마지막 날, 공항으로 떠나기 직전,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마지막 선물이다. 
 
안식월 두 번째 텀, 4월 한 달을 제주에서 보냈다. 제주공항에 있다. 곧 탑승이 시작된다. [제주안식]이라는 꼭지로 쓴 일기의 마지막이다. 이 마지막이 새로운 시작과 연결되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