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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안식25] 제주 카페 순례

신의피리 2024. 4. 25. 15:56

카페가 쉼과 재활의 공간이라는 것을 처음 깨닫게 된 것은 2000년 때부터다. 아내가 보라매공원 안에 있는 남부장애인종합복지관, 음악치료사로 취업했다. 내가 기윤길 간사를 할 때인지 그만두었을 때인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는 공원 동쪽 롯데타워 인근에서 아내를 기다렸다. 서점은 기다리기 좋은 장소였고, 사우나도 나름 괜찮았다. 우연찮게 '할리스'라는 카페에 들어갔다. 아메리카노를 시켰다. 커피란 자고로 달달해야 하는데, 자판기 커피 또는 맥심만 마시던 내게 할리스 아메리카노는 신선한 경험이었다. 아마도 그때부터 아메리카노를 마셨던 것 같다. 아내를 기다릴 때 할리스에서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책을 볼 수 있으니 기다린다는 사실을 종종 잊기도 했다. 

 

그 이후로 여러 프랜차이즈 카페를 알게 됐다. 대학원에 다닐 때는 학교 도서관보다 신촌역에 있는 스타벅스에 죽치고 앉아서 책을 봤다. 그러다가 2008년도 겨울 또한번의 경험을 했다. 하남에 살 때다. 조용한 카페를 찾다가 분위기 있는 시골 카페에 들어갔다. 커피를 주문하려고 했는데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커피 이름이 죄다 나라 이름이었다. 케냐, 에티오피아, 콜롬비아, 과테말라... 주인이 추천한 커피를 마셨다. 책에 집중이 되지 않았다. 곧장 아내를 데려갔다. 그 이후로 아메리카노가 시시해졌다. 드립커피의 세계에 입문하게 된 것이다. 

 

제주에서 한달동안 혼자 산다. 당연히 카페를 찾는다. 내가 머문 숙소 1층이 카페다. '카페온결' 자주 내려가지는 못했지만 노트북과 책을 들고 카페온결에 앉아 있으면 편안해진다. 펜션 투숙객이라고 해서 할인도 해주고, 서비스도 종종 내어준다. 

 

카페온결 : 제주 제주시 한경면 일주서로 4428 1층

카페온결

 

카페온결

 

숙소 인근에 가본 카페들이다. 

 

하소로커피 : 제주 제주시 한경면 불그못로 72 하소로커피

 

로스팅을 하는 곳이다. 제주의 수많은 카페들이 하소로 커피를 쓴다고 한다. 블랜딩 드립을 마셨다. 달콤한 과일 향이 많이 난다. 양평 문호리에 있는 '에딧의커피스토리'와 비슷한 느낌이다. 강추다.

하소로커피

 

유람위드북스 : 제주 제주시 한경면 조수동2길 54-36

 

북카페다. 제주 시골의 카페들은 대개 저녁 이전에 문을 닫는데, 이 카페는 늦게 까지 문을 연다. 푹신한 의자에 앉아 긴 시간 책을 읽을 수 있다. 

유람위드북스

 

크래커스 한경점 : 제주 제주시 한경면 낙수로 1

 

로스팅을 한다. 두 사람이 여기 방앗간을 인수해서 커피를 볶고 내리고 판매한단다. 특이한 메뉴가 있다. '에스프레소 플라이트'다. 7천 원에 아메리카노와 라떼를 동시에 마실 수 있다. 물론 중간 사이즈의 조금 작은 잔이다. 일종의 짬짜면인가? 

크래커스 한경점

 

산노루 제주 : 제주 제주시 한경면 낙원로 32 산노루

 

산노루 카페는 녹차 카페다. 한적한 시골 한복판에 꽤 큰 건물로 지어진 카페다. 나는 뚜벅이로 갔지만 젊은 사람들이 드물지 않게 찾는다. 이곳의 시그니처 중에 하나인 '말차플랫화이트'를 시켰다. 책이 술술 잘 읽히는 곳이다. 창으로 난 밖의 시골 전경도 보기 좋다. 

산노루 제주

 

카페이시도르 : 제주 제주시 한림읍 금악북로 353 성이시돌센터 카페이시도르

 

숙소에서 차로 20여분 거리에 성이시도르목장이 있다. 그 근방에 '테쉬폰'이라는 곳과 '우유부단'에서 파는 아이스크림이 유명하다. 성이시도르목장은 한국전쟁 후 아일랜드 출신의 25살 패트릭 제임스 맥그린치 신부가 제주에 와서 황무지를 목초지로 개간한 곳이다. 목장 인근은 종교적인 공간들로 이루어져 있다. 새미은총의동산과 삼위일체대성당이 있다. 성이스돌요양원, 성이시돌복지의원, 성이시돌피정의집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카페도 세 개나 된다. '우유부단' 외에 '라갈레트''카페이시도르'가 그곳이다. 그중에 '카페이시도르'는 아침 8:30에 오픈한다. 그 시간부터 막 구운 빵들이 순차대로 나온다. 모든 빵이 다 맛있다. '치아바타'는 맛이 예술이었다. 겉은 바삭바삭한데 속은 촉촉한 게 천상의 맛이다. 젊은 남자가 창문이 커서 안이 훤이 들여다보이는 작은 공간에서 빵을 만들고 있다. 아마도 중세 수도사들의 오랜 전통을 배웠음이 틀림없다. 이곳에 세 번 방문했다. 귀국하기 전에 한 번 더 방문하리라. 아차, 여기 시그니처는 '에스프레소 콘파냐'다. 에스프레소 위에 크림을 얹었다. 

카페이스도르

 

이 외에도 카페 몇 군데를 갔다. 일부러 찾아간 것은 아니다. 잠시 시간을 때우려고 들린 곳이다. 그런데 나름 괜찮다. 추천할 만하다. 

 

쉼그대머물다 : 제주 제주시 한림읍 비양도길 274-2

 

비양도를 둘러보고도 여전히 1시간이 남았다. 카페가 서너 개 있다. 가장 전망이 좋아 보이는 카페에 들렀다. 2층 전망이 아주 좋다. 시그니처를 시켰다. 쉼라떼(쑥크림라테)다. 피곤하여 달달한 게 당기긴 했다. 라떼를 들고 2층으로 올라와 자리에 앉자 내 옆 테이블의 40대 전후의 젊은 여성들 4명이 내 메뉴를 보고 깔깔 웃는다. 들으려고 그런 건 아닌데 자기들도 저걸 시키려고 했었는데 너무 보기 좋아 보인다는 말이었다. 그래도 그렇지. 바로 옆에 중년의 남자 혼자 라떼를 들고 올라와 앉았는데 그렇게 큰 소리로 웃으며 말하다니... 

쉼그대머물다

 

휴일로 : 제주 서귀포시 안덕면 난드르로 49-65

 

서귀포 예래마을(하예동) 해안가에 있는 카페다. 2022년도 몇몇 목회자들과 예래마을에 왔다가 들렸다. 커피나 빵이 특별이 맛있는 것은 아니다. 이 카페의 매력은 해 질 녘이다. 2층 테라스에서 월라봉 쪽으로 지는 해를 보는 것은 예술 감상 그 자체다. 아쉽게 친구들과 이곳을 방문했을 때는 비가 왔다. 

휴일로

 

카페봄봄 

 

커피가 1300원이다. 곳곳에 프랜차이점이 있다. 대구에서 시작한 카페란다. 

카페봄봄

 

스타벅스 제주서해안로DT점 : 제주 제주시 서해안로 624

 

아내가 잠시 왔다 돌아간 후, 다음 날 렌트한 차를 반납했다. 미친 듯이 걸었다. 공항 뒤편의 올레길을 걸었다. 다리가 아파서 어딘가 쉬려고 했는데 마침 스타벅스가 나왔다. 내 돈 주고는 절대 안 간다. 마침 누군가 보내준 쿠폰이 있어서 들어갔다. 바다 전망의 1인 자리가 비어서 냅다 가방을 던졌다. 

스타벅스

 

카페신상 : 제주 제주시 테우해안로 144 1~3층

 

이호테우 해수욕장에 있는 카페다. 아내를 공항에 데려다주러 갔다가 시간이 잠시 남아서 들렸다. 고급스러운 느낌이다. 2층에 손님이 없었다. 분위기는 좋았지만 다시는 가지 않을 것이다. 

카페신상

 

스타벅스 더제주송당파크R점 : 제주 제주시 구좌읍 비자림로 1197

 

제주 동쪽 구좌에 있는 스타벅스가 꽤 유명해진 모양이다. 한 개인이 소유하고 있는 제주돌공원 내에 스타벅스가 들어섰다. 카페를 중심으로 아예 그곳을 '동화마을'이라 부른다. 누군가 사업가의 향기가 물씬 풍긴다. 들어가서 커피를 마시진 않았다. 지나가다가 한번 들려 구경할만하다. 실내도 꽤 멋있다. 스타벅스가 우주 위성으로도 광고한다고 하던데, 진짜 우주여행이 시작되면 달에도 '스타벅스 달점'이 생길지 모르겠다. 

스타벅스 더제주송당파크R점

 

델문도 : 제주 제주시 조천읍 조함해안로 519-10

 

제주 북서쪽에 협재해수욕장이 있다면 북동쪽에는 함덕해수욕장이 있다. 여기가 더 관광지같다. 사람도 훨씬 더 많다. 뚜벅이 제주생활하는 내가 내 발로 갈 일은 없다. 정정조 집사님 덕에 동쪽 구경을 하고 마지막으로 함덕해수욕장과 델문도에 들렸다. 해수욕장 한가운데 바다로 쑥 튀어나온 높은 곳에 카페가 있다. 오래전부터 그냥 보기만 했는데 처음 들어가 봤다.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다. 커피가 맛있는지는 모르겠다. 관광지에 와 있구나, 이 한 가지 사실만큼은 분명하게 느꼈다.

델문도

 

오늘은 종일 숙소와 카페, 실내에 머문다. 카페온결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쓴다. 음악이 들리고 손님들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린다. 그러나 소음이 아니라 배경음악이 된다. 집중력이 생기고 창의적이 된다. 카페순례는 나다운 나를 체험하고 싶은 영적인 일이다. 목회자의 정체성에 대해서 글을 쓰고 싶었는데, 카페 이야기를 쓰게 됐다. 

카페온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