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ent is Present

방금 나를 지나간 그 바람은 어떤 바람 됐을까

안식월 제주한달살기

[제주안식20] 친구들

신의피리 2024. 4. 20. 18:54

친구들이 왔다. 평소 나 때문에 만나는 데 제약이 많았다. 나는 목회자라서 주말이 바쁘니, 이래저래 함께 모이는 게 어려웠다. 내가 안식월을 맞아 제주한달살이 하겠다고 하니, 주말을 껴서 세 친구, 수영이, 종진이 신구가 내려온 것이다. 처자식들 다 두고 제주에 온 목사친구와 함께 하려고 내려왔다. 그래서 친구다.

안타깝게도 종일 비 소식이다. 동선을 짠다. 오늘은 내가 제주 가이드가 된다. 먼저 카페이시도르에 가서 에스프레소 커피와 막 나온 겉바속촉 치아바타를 먹는다. 예술이다. 죄다 보자마자 사진을 찍더니 가족들에게 카톡 한다. ㅎㅎㅎ 그런 거다. 아름다운 걸 보면 곧장 사랑하는 이에게 공유하는 게 정상이다.


내가 머물고 있는 숙소를 잠시 들린 후 신창리 싱게물공원부터 해안길로 드라이브 간다. 생이기정에서 가랑비를 맞으며 신나게 사진을 찍는다. 비가 좀 야속하다. 천상 실내로 가야 한다. 추사 김정희 유배기념관으로 안내한다. 승효상이 설계한 단아한 기념관을 친구들이 과연 좋아할까? 모슬포항에서 모둠회를 먹는다. 40년 지기 친구들이 함께 식사하니 좋다.



기적이 일어났다. 비가 그쳤다. 친구들의 바람이 날씨까지 바꾼 모양이다. 아껴두었던 장소, 송악산 둘레길로 간다. 나이를 잊고 걷는다. 다 돌고 나니 나이를 먹은 우리 몸의 부실함이 인식된다. 카페를 간다. 대화한다. 시장에 간다. 대화한다. 걷는다. 대화한다. 드라이브한다. 대화한다. 그동안 각자 사느라 바빠서 일 년에 몇 번 못 보지만, 한결같이 40여 년을 알고 지내온 것처럼 대화한다. 계산하지 않는다. 성격 그대로다. 옛날 그대로다. 달라진 게 없다. 그냥 외모만 좀 늙었다.


언제까지 만날 수 있을까. 다들 은퇴하고 가까이에 살아서 매일 같이 걷고 수다하고 먹고 수다하고 그랬음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