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 4:1-5:1
(남자)
1 아름다워라, 나의 사랑!
아름다워라.
너울 속 그대의 눈동자는 비둘기 같고
그대의 머리채는
길르앗 비탈을 내려오는 염소 떼 같구나.
2 그대의 이는 털을 깎으려고
목욕하고 나오는 암양 떼 같이 희구나.
저마다 짝이 맞아서,
빠진 것이 하나도 없구나.
3 그대의 입술은 붉은 실 같고,
그대의 입은 사랑스럽구나.
너울 속 그대의 볼은
반으로 쪼개 놓은 석류 같구나.
4 그대의 목은 무기를 두려고 만든 다윗의 망대,
천 개나 되는 용사들의 방패를
모두 걸어 놓은 망대와 같구나.
5 그대의 가슴은 나리꽃 밭에서 풀을 뜯는
한 쌍 사슴 같고
쌍둥이 노루 같구나.
6 날이 저물고
그림자가 사라지기 전에,
나는 몰약 산으로 가려하네.
유향 언덕으로 가려 하네.
7 아름답기만 한 그대, 나의 사랑,
흠잡을 데가 하나도 없구나.
8 레바논에서 오너라, 신부야!
레바논에서 오너라, 어서 오너라.
아마나 꼭대기에서,
스닐과 헤르몬 꼭대기에서,
사자들이 사는 굴에서,
표범들이 사는 언덕에서 내려오너라.
9 나의 누이, 나의 신부야!
오늘 나 그대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그대의 눈짓 한 번 때문에,
목에 걸린 구슬 목걸이 때문에,
나는 그대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10 나의 누이, 나의 신부야!
달콤한 그대의 사랑,
그대의 사랑은 포도주보다 더 나를 즐겁게 한다.
그대가 풍기는 향내보다 더 향기로운 향기름이 어디 있느냐!
11 나의 신부야, 그대의 입술에서는 꿀이 흘러나오고,
그대의 혀 밑에는 꿀과 젖이 고여 있다.
그대의 옷자락에서 풍기는 향내는
레바논의 향기와 같다.
12 나의 누이 나의 신부는 문 잠긴 동산,
덮어놓은 우물, 막아 버린 샘.
13 그대의 동산에서는
석류와 온갖 맛있는 과일,
고벨 꽃과 나도 풀,
14 나도 풀과 번홍꽃,
창포와 계수나무 같은 온갖 향나무,
몰약과 침향 같은 온갖 귀한 향료가 나는구나.
15 그대는 동산에 있는 샘,
생수가 솟는 우물,
레바논에 흐르는 시냇물이다.
(여자)
16 북풍아, 일어라.
남풍아, 불어라.
나의 동산으로 불어오너라.
그 향기 풍겨라.
사랑하는 나의 임이 이 동산으로 와서
맛있는 과일을 즐기게 하여라.
(남자)
1 나의 누이, 나의 신부야!
나의 동산으로 내가 찾아왔다.
몰약과 향료를 거두고,
꿀과 꿀송이를 따먹고,
포도주와 젖도 마셨다.
(친구들)
먹어라, 마셔라, 친구들아!
사랑에 흠뻑 취하여라.
오페라의 막이 오르고, 여자와 남자, 그리고 합창단의 노래가 이어지다, 다시 막이 내립니다. 사랑하는 두 연인이 서로 그리워하지만, 닿을 듯 말 듯한 거리에 떨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검으나 아름다운 시골 여인은 위풍당당한 귀족 남자와 만나고, 화려한 결혼식이 이어집니다. 막이 내렸다가, 다시 오늘 본문에서 새로운 막이 오릅니다.
무대 위에 남자가 서 있습니다. 사랑의 보자기에 뒤집어 씐 행복한 사내입니다. 컴컴한 무대 위에 남자를 향한 한 줄기 조명이 비칩니다. 반대편에도 다시 가녀린 조명 빛이 쏟아지고, 우리의 여주인공이 단아한 모습으로 서 있습니다. 남자는 여자를 그윽하게 바라봅니다. 그는 이제 시인이 되었습니다.
시인이 된 남자 주인공은 여인의 외모에 찬사를 보냅니다. 사랑의 마법에서 빠져나온 이들이라면, 이 시가 얼마나 유치했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이들은 모두 시인이 되고, 서로를 향한 찬사의 비유는 아름다움 그 자체입니다. 말하는 자도, 듣는 자도 사랑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남자는 사랑하는 여인을 바라봅니다. 여인의 눈동자, 여인의 머리채, 여인의 입술, 하나하나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아름답기만 한 그대, 나의 사랑,
흠잡을 데가 하나도 없구나.”(7)
흠잡을 데가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누구나 자신의 외모 어떤 부분에 콤플렉스가 있습니다. 보여주고 싶지 않은 외모, 사랑해 주기 어려운 부분, 숨기고 싶은 부위, 그러나 사랑하는 이의 눈엔 그 모든 것이 다 아름답기만 합니다. 그 사랑의 눈길은 마법 같은 치유효과가 있습니다. 그렇게 사랑의 눈길 안에 들어가면, 어두운 생각들이 다 사라집니다.
나는 사랑받고 있다.
나는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다.
그러므로 숨길 게 없다.
부끄러울 게 없다.
나는 사랑받고 있다.
우리 자아는 찢겨 있습니다. 손상되어 있습니다. 어려서부터 우리 부모와 친구들의 왜곡된 발언 때문에 우리 자아는 활짝 펴져 있지 못합니다. 흠잡을 데 없이 사랑받을 만한 자신이라고 생각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랑받기 위해, 인정받기 위해, 또 다른 자아와 인격을 만들어서 사용합니다. 부끄러운 부분은 숨깁니다. 어떤 부분은 지나치게 화장합니다. 진짜 자아와 가짜 자아가 구분이 되지 않을 만큼, 우리는 수많은 자아상 안에서 배회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왜곡된 자아임에도 불구하고 깊고 넓은 사랑을 만납니다. 사랑의 눈길은 내 왜곡된 몸과 마음을 치유해 줍니다. 사랑의 시선은 내 부끄러운 상처를 싸매어 줍니다. 그렇게 우리는 사랑을 만나 치유를 받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 아버지로부터 영원 전부터 영원까지 이 음성을 들었습니다.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마 3:17)
예수님은 흠잡을 데 없는 사랑받는 이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 덕분에 나도 사랑받는 이라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러니 당신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사랑받는 이들입니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습 3:17)
사랑하는 주님, 주님 보시기에 저는 사랑받는 자인가요? 그 사실을 말씀을 통하여 알고 있으나, 저는 제 자신이 너무 부끄럽고 수치스럽기도 합니다. 주님의 사랑받을 만하지 못하다는 생각에 종종 마음이 어두워집니다. 그러나 주님, 때때로 제가 좀 실망스러울 때도 있지만, 아내가 한없이 부족한 저를 사랑해 줄 때, 그 사랑의 본질이 와닿을 때가 있습니다. 주님도 저를 사랑하신다고 하는데, 제가 저를 미워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입니다. 주님, 저를 사랑하겠습니다. 저는 사랑받고 있음을 다시 믿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