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ent is Present

방금 나를 지나간 그 바람은 어떤 바람 됐을까

렉시오 디비나

마태복음 27:45-56 / 왜 버리셨나이까

신의피리 2024. 4. 26. 06:00
마태복음 27:45-56

45 낮 열두 시부터 어둠이 온 땅을 덮어서, 오후 세 시까지 계속되었다. 46 세 시쯤에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부르짖어 말씀하셨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그것은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라는 뜻이다.
47 거기에 서 있는 사람들 가운데 몇이 이 말을 듣고서 말하였다. "이 사람이 엘리야를 부르고 있다." 48 그러자 그들 가운데서 한 사람이 곧 달려가서 해면을 가져다가, 신 포도주에 적셔서, 갈대에 꿰어, 그에게 마시게 하였다. 49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어디 엘리야가 와서, 그를 구하여 주나 두고 보자" 하고 말하였다.
50 예수께서 다시 큰 소리로 외치시고, 숨을 거두셨다.
51 그런데 보아라, 성전 휘장이 위에서 아래까지 두 폭으로 찢어졌다. 그리고 땅이 흔들리고, 바위가 갈라지고, 52 무덤이 열리고, 잠자던 많은 성도의 몸이 살아났다. 53 그리고 그들은, 예수께서 부활하신 뒤에, 무덤에서 나와, 거룩한 도성에 들어가서, 많은 사람에게 나타났다.
54 백부장과 그와 함께 예수를 지키는 사람들이, 지진과 여러 가지 일어난 일들을 보고, 몹시 두려워하여 말하기를 "참으로, 이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셨다" 하였다.
55 거기에는 많은 여자들이 멀찍이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들은 예수께 시중을 들면서 갈릴리에서 따라온 사람이었다. 56 그들 가운데는 막달라 출신 마리아와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와 세베대의 아들들의 어머니가 있었다.

 

예수께서 십자가 위에 계실 때 낮 12시부터 오후 3시까지 어둠이 찾아왔다. 그때 예수께서 외치셨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평생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셨다. 아버지와 아들, 하나님과 예수님은 모든 면에서 하나였다. 단 한 번도 얼굴을 찡그린 적이 없다. 단 한 번도 화를 내신 적도 없다. 단 한 번도 서로에게 무관심한 적이 없다. 사랑 그 자체였다. 사랑과 사랑의 만남이었다. 서로의 뜻에 기쁘게 흔쾌히 순종하는 관계였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자신을 사랑하는 이를 사랑하고, 자신이 사랑하는 이에게서 사랑을 받았다. 그런데 그날 균열이 일어났다. 그 세 시간 동안 하늘이 문을 닫았다. 아버지와 아들 간에 단절이 생겼다. 얼굴을 돌리셨다. 아들이 그냥 연극을 했더라면 그러지 않았으리라. 그러나 이해할 수 없는 신비로운 일이 일어났다. 사랑이신 하늘 아버지는 십자가 위에서 희생제물로 죽어가는 아들을 외면하셨다. 아들을 죄와 사망의 권세에 넘겨주어야 했다. 그렇게 버리셔야 했다. 이런 해석이 옳은 것인가? 예수께서 아버지를 하나님이라 부르면서 왜 자신을 버리셨는지 묻는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적절한 것인가. 

 

자녀들에게 화가 날 때가 있다. 마음과 감정을 최대한 숨겨보려 하지만, 잘 되지 않는다. 표정은 차갑고 말투는 쌀쌀맞아진다. 제스춰도 없어지고 최대한 접촉을 피한다. 자녀들의 마음은 점점 고통스러워진다. 버림받은 것 같은 마음, 사랑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 부모를 탓하다가도 자신의 부족함이 괴롭다. 아주 잠시 잠깐 부모 자녀 간에 생긴 이 균열로도 우리는 괴롭다. 하물며 단 한 번도 서로 이견이 없었고 오로지 사랑이었던 아버지와 아들, 그 찢어지는 마음이 본문에 담겼다. 아버지는 하늘 문을 닫았고, 아들은 왜 나를 버리셨냐고 절규한다. 

 

예수께서 숨을 거두신다. 그때 그 시간, 성전 안에서 희안한 일이 벌어진다. 성소와 지성소를 가르는 휘장, 대제사장 외에 그 누구도 들어갈 수 없는 하나님의 임재의 공간, 그 공간이 개방된다. 휘장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찢어진다. 사람이 찢었다면 아래에서 위로 찢을 것이다. 그러나 위에서 아래로 찢어졌다. 예수의 십자가 죽음으로 인해 더 이상 지성소가 필요 없게 됐다. 하나님께서 백성들을 만나는 임재의 공간, 성전은 예루살렘 건물에서 예수의 죽음으로 대체되었다. 예수께서 성전이다. 예수를 마음에 모신 자는 하나님의 임재의 방을 마음에 모시는 것이다. 예수를 모신 내 영혼과 마음이 성전이 된다. 예수를 모신 우리의 예배와 코이노니아가 성전이 된다. 

 

너무 오래 전 일인가 보다. 예수 믿은 지 너무 오래됐나 보다. 이 일에 자주 마음 떨리지 않는다. 그러나 의심하지 않는다. 나는 이 일 때문에 오늘 여기에 서 있다. 나는 이 일 때문에 주어진 한평생을 살 것이고, 이 일 때문에 나의 죽음은 규명될 것이다. 내 마음에 십자가가 있다. '나를 왜 버리셨나이까?' 외치신 예수의 절규가 있다. 그 순간 나의 죄와 그분의 사랑이 연합되었고, 그 안에서 치환이 일어났다. 영원한 속죄의 제사를 완성하신 어린양 예수님! 영광과 찬양을 받으십시오. 

 

주님, 오늘도 십자가 그늘 밑으로 나아갑니다. 도처에 있는 십자가를 보게 해주십시오. 그 십자가에서 이루신 사랑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유일한 힘임을 의심치 않게 해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