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ent is Present

방금 나를 지나간 그 바람은 어떤 바람 됐을까

렉시오 디비나

마태복음 27:39-44 / 모욕과 조롱

신의피리 2024. 4. 25. 07:53
마태복음 27:39-44

39 지나가는 사람들이 머리를 흔들면서, 예수를 모욕하여 40 말하였다. "성전을 허물고, 사흘 만에 짓겠다던 사람아,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너나 구원하여라.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아라."
41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율법학자들과 장로들과 함께 조롱하면서 말하였다. 42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나, 자기는 구원하지 못하는가 보다! 그가 이스라엘 왕이시니,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오시라지! 그러면 우리가 그를 믿을 터인데! 43 그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으니, 하나님이 원하시면, 이제 그를 구원하시라지. 그가 말하기를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하였으니 말이다."
44 함께 십자가에 달린 강도들도 마찬가지로 예수를 욕하였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 그때 총독의 병사들은 십자가 아래에서 예수의 겉옷을 제비 뽑아 나눠가졌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모욕했다.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과 장로들은 함께 조롱했다. 함께 십자가에 달린 강도들도 욕을 했다. 이들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이스라엘의 왕이거든, 십자가에서 내려와 스스로 구원을 증명하라며 모욕하고 조롱했다. 만약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도 아니면서 하나님의 아들 행세를 했다면, 이는 모욕도 조롱도 아니다. 사람들을 현혹한 이가 고스란히 감내해야 할 말들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사람들의 기대라는 게 있다. 신의 아들에게 기대하는 바가 있다. 로마의 황제, 애굽의 바로, 페르시아의 왕, 모세나 다윗 같은 신적 리더십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않았다. 헤롯을 권좌에서 끌어내리고, 빌라도를 로마로 추방하고, 대제사장들을 무릎 꿇리며, 백성들을 정치적으로 해방시키고 경제적으로 부요하게 하지 않으셨다. 사람들은 그걸 원했지만 예수께서는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 초라하게도 정치범들에게 시행되는 십자가 처형을 당하셨다. 그렇게 해서 진정으로 하나님의 아들이 하시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가. 이루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가. 세상 모든 사람들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유월절 희생양이 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하나님의 아들의 힘이던가. 백성들이 죄라는 불뱀에 물려 죽음이라는 심판을 받을 때, 그 백성들을 불쌍히 여겨 하나님의 아들이 스스로 백성들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대신 죽으시려는가. 백성들을 죄에서 해방하고 자유케 하려고 그러시는가. 예수께서 진정 하시려는 것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대제사장들'이, '두 강도'가 알지 못하고 모욕하고 조롱하였다. 

 

기독교는 무기력한 종교다. 권력으로 제압하지 않는다. 악에 대항하여 악으로 맞서지 않는다.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에 못 박히셨음을 믿는다는 것은 선을 행하되 끝까지 견디는 것이다. 십자가, 즉 사랑이 상징하는 힘을 지키는 것이다. 악은 십자가를 이기지 못한다. 모욕과 조롱도 이기지 못한다. 

 

능력을 보이라, 실력을 보이라, 결과를 만들어내라, 문제를 해결하라, 네가 지도자라면. 능력, 실력, 결과, 문제해결력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자녀의 정체성을 잃지 않는 것이다. 우리가 누구인가를 제대로 인식하는 것이 진짜 영적인 실력이다. 

 

주님, 절망도 이런 절망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십자가 밑에서 견디는 이유는 부활의 능력을 믿고 소망하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 끝날까지 모욕과 조롱 앞에 십자가의 힘으로 견디게 하소서. 

 

제주 새미은총의동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