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렉시오 디비나

마태복음 25:14-30 / 영적 나태병에 걸리면

by 신의피리 2024. 4. 11.
마태복음 25:14-30

14 "또 하늘 나라는 이런 사정과 같다. 어떤 사람이 여행을 떠나면서, 자기 종들을 불러서, 자기의 재산을 그들에게 맡겼다. 15 그는 각 사람의 능력을 따라, 한 사람에게는 다섯 달란트를 주고, 또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주고, 또 다른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다. 16 다섯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곧 가서, 그것으로 장사를 하여, 다섯 달란트를 더 벌었다. 17 두 달란트를 받은 사람도 그와 같이 하여, 두 달란트를 더 벌었다. 18 그러나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가서, 땅을 파고, 주인의 돈을 숨겼다.
19 오랜 뒤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서, 그들과 셈을 하게 되었다. 20 다섯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말하기를 '주인님, 주인께서 다섯 달란트를 내게 맡기셨는데, 보십시오, 다섯 달란트를 더 벌었습니다' 하였다.
21 그의 주인이 그에게 말하였다. '잘했다! 착하고 신실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신실하였으니, 이제 내가 많은 일을 네게 맡기겠다. 와서, 주인과 함께 기쁨을 누려라.'
22 두 달란트를 받은 사람도 다가와서 '주인님, 주인님께서 두 달란트를 내게 맡기셨는데, 보십시오, 두 달란트를 더 벌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23 그의 주인이 그에게 말하였다. '잘했다, 착하고 신실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신실하였으니, 이제 내가 많은 일을 네게 맡기겠다. 와서, 주인과 함께 기쁨을 누려라.'
24 그러나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다가와서 말하였다. '주인님, 나는, 주인이 굳은 분이시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시고, 뿌리지 않은 데서 모으시는 줄로 알고, 25 무서워하여 물러가서, 그 달란트를 땅에 숨겨 두었습니다. 보십시오, 여기에 그 돈이 있으니, 받으십시오.'
26 그러자 그의 주인이 그에게 말하였다. '악하고 게으른 종아, 너는 내가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뿌리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 알았다. 27 그렇다면, 너는 내 돈을 돈놀이 하는 사람에게 맡겼어야 했다. 그랬더라면, 내가 와서, 내 돈에 이자를 붙여 받았을 것이다.
28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서, 열 달란트 가진 사람에게 주어라. 29 가진 사람에게는 더 주어서 넘치게 하고, 갖지 못한 사람에게서는 있는 것마저 빼앗을 것이다. 30 이 쓸모 없는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아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가는 일이 있을 것이다.'"

 

수십 수백번을 읽었고, 이미 다 이해한 듯 싶지만, 여전히 알쏭달쏭하다. 예수께서는 적극적 행동주의, 적극적 경험주의자를 요구하시는 건가? 원래 성격이 우유부단하고 약간의 결정장애가 있어서 선듯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이들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인생을 다소 소극적으로 사는 소심한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깊은 생각 없이 우선 행동하고 저질러 보며 욕구대로 사는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삶에 대한 나의 이해와 선입견이 이 비유를 이해하는 데에 방해가 되고 있는 것인가?

 

이 비유는 삶의 자세를 말하는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이해와 인식이 가져다 주는 차이를 말하는 것인가? 이 비유는 앞선 가르침과 비유의 연장일 것이다. 예수님의 다시 오심이 지연되고 있을 때, 언제 올지 알 수 없을 때, 그때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가? 소명을 따라 성실하게 살아야 한다, 항상 그 다음을 대비해야 한다, 주인이 보지 않고 있으니 도덕적 명령을 무시한 채 제 욕심을 따라 살면 안된다, 등의 교훈이었다. 이번에도 같은 뜻일까? 내게 주어진 재능들, 삶의 기회와 특권들을 잘 개발해서 최선을 다해 열매를 맺어 살아내라는 뜻인가? 설령 실패해도 좋으니 도전하라는 것일까? 제발 어리석게도 최소주의의 소극적 태도는 경계해야 한다는 뜻일까? 

 

이미 가진 것으로 안전한 자신의 삶의 울타리를 두르고, 그러니까 최소한 주인에게 욕먹지 않을 정도만 해두고, 나머지 내 삶을 적당하게 놀며 사는 삶의 행태가 이에 해당할까? 

 

적어도 하나님에게 혼날까봐 두려워서 위축되어 있진 말아야 하겠다. 하나님은 왜 열매를 거두지 못했어? 말하지 않으신다. 왜 성공하지 못했어? 정죄하지 않으신다. 왜 기회를 살리지 못했어? 추근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기뻐하신다. 함께 기뻐하신다. 열매와 성과의 크기가 하나님에겐 중요하지 않으신다. 사랑하는 이들의 그 분투하는 살아내는 삶을 기뻐하신다. 

 

어쩌면 한 달란트 받은 이는 '영적 나태'의 병에 걸렸을 수도 있겠다. 합리적 의심하는 습관이 굳어져 매사 부정적인 방어자가 된다. 뭐 하나 제대로 하지도 않으면서 뒤에서 수군대며 말은 잘한다. 이건 이래서 안돼, 저건 저래서 안돼 하며 결국 자신도 공동체도 한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한다. 

 

주님, 기뻐하는 자가 되고 싶습니다.
주어진 모든 것이 은혜인 줄 안다면,
그저 기뻐하며 살아내는 자가 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