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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나를 지나간 그 바람은 어떤 바람 됐을까

렉시오 디비나

마태복음 17:14-21 /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

신의피리 2024. 3. 9. 08:28

마태복음 17:14-21

 

14 그들이 무리에게 오니, 한 사람이 예수께 다가와서 무릎을 꿇고 말하였다. 15 “주님, 내 아들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간질병으로 몹시 고통받고 있습니다. 자주 불 속에 빠지기도 하고, 물 속에 빠지기도 합니다. 16 그래서 아이를 선생님의 제자들에게 데리고 왔으나, 그들은 고치지 못하였습니다.”
17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아! 믿음이 없고 비뚤어진 세대여, 내가 언제까지 너희와 같이 있어야 하겠느냐? 내가 언제까지 너희에게 참아야 하겠느냐? 아이를 내게 데려오너라.” 18 그리고 예수께서 귀신을 꾸짖으셨다. 그러자 귀신이 아이에게서 나가고, 아이는 그 순간에 나았다.
19 그 때에 제자들이 따로 예수께 다가가서 물었다. “우리는 어찌하여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습니까?”
20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너희의 믿음이 적기 때문이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이 산더러 ‘여기에서 저기로 옮겨가라!’ 하면 그대로 될 것이요, 너희가 못할 일이 없을 것이다.” (21절 없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으면 진짜 못할 일이 없을까? 그 믿음이 있으면 병든 자를 치유할 수 있을까? 암에 걸려 항암치료하는 이들을 낫게 할 수 있을까? 그런데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은 도대체 얼마나 큰 믿음인가? 나는 평생 교회에 다니면서 말씀을 배웠건만, 여태 믿음이 겨자씨 한 알만큼도 자라지 않는가?

 

내 믿음의 크기를 생각해본다.

 

나는 하나님을 믿는다. 이 세상을 창조하셨고, 섭리하시며, 인간과 세상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다. 보이는 이 세상 너머 보이지 않는 영이신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다. 의심하지 않는 건 아니다. 그러나 그 의심은 아무 쓸모가 없다. 믿지 않을 도리가 없다.

 

나는 예수님을 믿는다. 역사의 한 무대에 등장하여 파란을 일으키며 하나님 나라를 이곳에 가져오고 보여주셨던 예수님을 믿는다. 그는 놀라운 이적을 행하셨다. 그러나 당국 지도자들에 의해 모함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 그러나 그의 부활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목격자들이 많다. 신학적 의미도 분명하다. 역사에서 이런 일은 유일무의하다. 물론 나는 부활하신 예수를 만난 적은 없다. 그 역시 영이실 터, 말씀으로 말씀하시는 분이요 지혜로 나타나시는 분이시다. 장차 그분이 이 세상을 최종적으로 심판하실까? 그것은 명확하지 않다. 심판의 의미가 이 세상을 새롭게 하는 것일지, 아니면 내 개인 한 사람의 죽음을 의미하는 것인지, 그것은 진실로 모르겠다. 여하튼 죽음은 심판의 의미를 갖는다. 그때 나는 예수님과 만나게 되리라 믿는다. 정죄와 판단의 심판이 아니라, 환대와 격려의 자리일 것이다.

 

나는 성령님을 믿는다. 보이지 않는 영이 바람처럼 지나가신다. 말씀을 깨닫게 하신다. 말씀과 세상(상황과 사건)을 연결시켜 주신다. 조명하여 주신다. 인생의 의미를 발견하게 하신다. 낙심한 마음 안에 음성을 들려 주셔서 위로해 주시고 다시 일어나게 하신다. 온 몸에 생기가 돌게 하신다. 사랑하게 하시고, 용납하게 하시고, 하나되게 하시고, 소망하게 하신다. 이 작용은 내가 의지적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갈망과 예수의 은혜를 의지하려 할 때, 거저 주어지는 것이요, 그 모든 것을 성령님께서 하시는 일이라 믿는다.

 

나는 믿는다. 믿으려고 해서 믿은 것이 아니라, 믿어져서 믿는다. 이 믿음은 위로부터 주어졌다. 오늘도 나는 그 믿음으로 산다. 평범한 일상을 반복해서 산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경험하는 것들을 경험한다. 성 삼위 하나님을 믿는 나는 무엇이 다른가?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을 가진 자는 어떻게 다른가? 위기와 고난과 시련을 겪은 이들 속에서 성 삼위 하나님을 믿는 이는 기도한다. 위로부터 도움을 구한다. 하나님이 일하시기를 사모한다.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우선 구하며 사는 이들에게 하늘 아버지께서 나머지를 채워주실 줄 믿고 기도한다. 예수님께서 걸으셨던 그 길을 따라 나서 제자로 살기로 다짐할 때, 그분께서 나머지를 채워주실 줄 믿고 기도한다. 성령님께서 내 마음에 부어져서 그 힘으로 살아내고자 할 때 갈급한 심령 위에 단비같은 성령이 임하신다.

 

삼위 하나님께서 하늘에 거하신다. 나는 땅에 거한다. 그러나 하늘과 땅은 만나야 한다. 내 삶은 주의 역사의 현장이기를 원한다. 그러나, 여전히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내 속에 심겨져서 얼마나 자라고 있는지 알 길이 없다. 애통한 일이다.

 

"너희의 믿음이 적기 때문이다"

 

주님, 이 믿음 내게 주소서.
기도와 말씀, 금식과 단련을 통해 믿음을 자라게 할 수 있다면,
제게 그 농부의 마음을 주소서.
그냥 남들 사는대로 살면서 믿음은 믿음대로 구하는 자가 아니라,
간절히 사모하고 끈질기게 구하며,
모든 일에 믿음으로 살려 분투하게 하소서.